'기술의 혼다'란 말이 있다. 세계 최초의 인간형 로봇 아시모를 개발할 정도로 정교한 기술을 갖고 있어서 생겨난 표현이다. 혼다 기술의 결정체가 바로 레전드다. 미국에선 프리미엄 브랜드인 아큐라로 출시된 모델이다. 레전드는 2006년 6월 국내에 선보였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혼다는 지난달 디자인과 주행성능을 대폭 강화한 뉴 레전드를 2년 만에 다시 내놓았다. 가격은 종전 모델과 같다.


◆남성적인 디자인


구형 레전드를 처음 봤을 땐 근육을 잘 가꾼 남성이 연상됐다. 뉴 레전드는 근육을 더 키웠다는 느낌을 줬다. 앞쪽 그릴 디자인이 종전보다 힘있고 단단해진 듯했다. 전장이 4985㎜로 55㎜ 커졌고,전폭은 1850㎜로 5㎜ 늘어났다. 울퉁불퉁한 근육만 강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람을 가르는 파이터가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에어로다이내믹 디자인을 채택한 덕분이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와이퍼까지 안으로 숨겨졌다.

외관과 달리 차량 내부는 뜻밖에도 여성스럽다. 운전자 편의를 최대한 배려했다. 윈드실드에는 적외선 투과량을 감소시켜 실내온도 상승을 완화시켜주는 기술이 적용됐다. 운전자가 한눈에 평균연비와 속도 등을 볼 수 있는 멀티 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가 설치됐다. 오디오 시스템은 더욱 예술적이다. 실내 형태와 소재까지 계산,음향 특성을 철저히 튜닝했기 때문이다. 360도 원음으로 둘러싸인 듯한 균형 잡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307마력의 주행성능


뉴 레전드의 배기량은 3.7ℓ다. 종전보다 0.2ℓ 늘어났다. 최고 출력이 종전 295마력에서 307마력(rpm은 6300대)으로 향상됐다. 최대토크 역시 36㎏.m에서 37.7㎏.m(5000rpm)으로 높아졌다. 고속 주행 때 흔들림없이 괴력을 발휘하는 배경이다.

또 다른 특징은 4륜구동 자유제어 시스템인 'SH-AWD'다. 전.후륜의 구동력 배분 뿐만 아니라 후륜의 좌우 구동력까지 자유롭게 배분하는 장치다. 앞뒤 바퀴에 70 대 30에서 30 대 70으로 구동력을 배분할 수 있고,뒷바퀴 역시 좌우로 0 대 100에서 100 대 0까지 배분할 수 있다. 엔진의 rpm(분당 회전수)과 흡기 압력,기어 비율,바퀴회전 속도,스티어링 앵글 값,노면 상태 등의 정보를 수집해 각 바퀴의 구동력을 최적으로 제어하는 것이다.

예컨대 차가 왼쪽으로 선회하는 상황에서 오른쪽으로 접지 하중이 늘어날 때 오른쪽 뒷바퀴에 가장 많은 구동력을 배분해 차체 앞머리를 코너 안쪽으로 유도하는 식이다. 원심력의 간섭을 최소화해 쏠림 현상을 줄일 수 있다.

종전에 수동변속 상태에서만 가능했던 간편변속(패들 시프트)을 자동변속 상태에서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달라진 점이다. 최대 단점으로 지적됐던 연비가 종전의 ℓ당 8.1㎞에서 8.6㎞로 향상됐다.


◆종전과 같은 가격


뉴 레전드의 가격은 6780만원이다. 엔진 배기량이 커지면서 주행성능이 개선됐고,각종 편의사양이 추가된데다 연비까지 높아졌지만 가격이 동결된 것이다. 내비게이션도 기본으로 장착된다. 구형 레전드 구입고객은 억울할 성 싶다.

새 고객 입장에서 보면 이 가격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새 모델 출시와 함께 가격 인하를 기대해온 사람이 적지 않아서다. 경쟁모델인 BMW 528i 가격이 뉴 레전드보다 30만원 저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다른 차와 달리 내비게이션을 켠 상태에서 라디오를 들을 수 없는 점도 아쉬웠다. 2006년 미국고속도로교통안전국에서 실시한 충돌테스트에서 가장 안전한 차 1위를 차지했던 점은 평가할 만하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