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 대로변에 있는 '어울림 빌딩'의 꼭대기층에 올라 어울림그룹 대표실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덩치 좋은 젊은이가 앉아 있다.

올해 31세인 박동혁 어울림그룹 대표.

어울림모터스, 어울림정보기술, 어울림네트웍스, 넷시큐어테크놀러지 등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스포츠카 제작까지 11개 계열사에 그의 땀이 묻지 않은 곳은 없다.

계열사 중 어울림정보기술 등 3개는 코스닥 등록업체다.

박 대표는 "여러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자동차 만드는 공장에서 직원들과 컵라면을 먹으며 밤을 지샐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 중국 베이징모터쇼에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슈퍼카이자 미드십(엔진을 차체의 중앙에 배치한 형태) 차량인 '스피라'를 내놓아 화제를 모았다.

지난달 23일부터는 국내에서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스피라는 연간 300대 한정 생산되는 수제 차량이다.

종류는 'S'와 '터보' 등 두 가지로 가격은 각각 1억900만원과 1억3000만원이다.

국산차 가운데 최고가다.

각종 선택사양(옵션)을 추가하면 최고 4억원까지 올라간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스피라의 가장 큰 장점은 국산 부품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부품값이 저렴하다는 점"이라며 "엔진이 고장나도 300만원이면 교체할 수 있어 스포츠카 애호가들이 마음껏 차를 몰 수 있다"고 자랑했다.

빈차 무게가 1000t에 불과할 정도로 가볍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카본 몸체를 사용해 몸무게를 낮췄다.

그래서 민첩하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제로백)은 S가 4.8초,터보가 3.8초에 불과하다.

V6 2700㏄ 엔진에 6단 수동변속기를 장착했다.

신생업체인 어울림모터스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나 될까.

박 대표는 60~70%를 자체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의 엔진을 구입해 정밀 튜닝과정을 거쳐 고성능 엔진으로 재탄생시킨다.

손이 많이 가는 수제 스포츠카여서 고객이 주문한 후 실제 차량을 인도하기까지 최소 2~3개월 걸린다는 예상이다.

박 대표는 국산 슈퍼카인 스피라를 해외로도 수출한다.

지난달 네덜란드 유통업체인 '크랄'과 향후 4년간 370대를 수출키로 계약을 맺었다.

그는 "전체적으로는 올해 70대 이상 계약고를 올리고 내년부터 연간 300대씩 안정적으로 판매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컴퓨터 관련된 일로 사업을 시작했다.

집안 형편상 그는 서울 용산고에 다닐 때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용돈을 스스로 벌어 썼다.

프로그램 개발 분야에서 타고난 재능을 보였던 그는 프로그래밍 외주일을 하다 19세이던 1996년 아예 사업자등록증을 냈다.

당시 그가 서초동 오피스텔에 차린 사무실에는 달랑 컴퓨터 한 대만 있었다.

주변 컴퓨터 엔지니어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1998년엔 그가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인기를 끌며 소위 '대박'이 났다.

직원 수도 30여명으로 불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그의 소프트웨어는 PC통신 기반이었던 것.그는 "직원들이 모두 떠나고 빈털터리가 됐지만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인터넷 기반의 원격관리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2002년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직원도 40~50명으로 늘었다.

코스닥 열풍을 타고 상장을 준비했으나 여의치 않자 2003년 말 코스닥회사인 넷시큐어테크놀러지를 인수했다.

이때 문제가 또 터졌다.

넷시큐어의 부채규모가 너무 컸다.

인수 이전에 실사를 제대로 못한 탓이었다.

직원 월급이 밀렸고,또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한 박 대표는 어울림정보기술을 기반으로 차근차근 일어섰다.

자회사를 하나씩 늘려갔다.

박 대표가 자동차사업에 뛰어든 것은 그룹화 작업이 한창이던 2006년.차량 내부 전자장비를 개발해 판매할 요량으로 어울림모터스를 설립했다.

자동차 정비소를 한 곳 인수해 차를 배우기 시작했다.

욕심이 생기자 엔진 튜닝업체와 디자인업체,레이싱팀,차량 설계업체를 차례로 인수했다.

이때 자동차를 내 손으로 한번 만들어 보자는 꿈이 생겼다고. 그래서 탄생한 게 국내 첫 토종 슈퍼카인 스피라다.

박 대표는 "우리도 페라리 같은 고급 슈퍼카를 생산하는 자동차 업체가 한 곳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요"라며 웃었다.

글=조재길/사진=강은구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