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현지시간) 2004 파리모터쇼가 열린 파리 베르사이유 국제전시장 제1관.포드계열의 재규어(Jaguar)가 이날 오전 예정된 언론발표회를 돌연 취소했다. 재규어는 이틀 전 영국내 공장 한 곳을 폐쇄하는 대규모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한 터여서 언론발표회에서 회사의 생존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쏟아질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 현지의 분석이다.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이 유럽시장에서 본격적인 생존경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폭스바겐 PSA(푸조시트로엥) 오펠 피아트 등 유럽 메이커들은 고비용 구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안방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기업들이 바로 한.일 메이커들이다. 현대.기아 마쓰다 혼다 스쯔키 등은 올해 성장률이 두자리수에 이를 정도다. 유럽 메이커들은 물론 현지에 대규모 자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포드 GM 등 미국 업체들은 이미 초긴장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한·일업체,유럽 대공략 유럽 자동차시장은 올들어 8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가 성장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한국 메이커의 판매증가율은 무려 22.4%에 달했다. 일본업체도 평균 8.7%의 판매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마쓰다가 24.6%로 전체 브랜드 중 판매증가율 1위를 기록한 가운데 현대·기아차 혼다 도요타 등 한·일업체가 1∼4위를 휩쓸었다. 도요타의 경우 내년중 유럽 내에서만 1백만대 판매달성이 확실시 되는 가운데 이번 파리모터쇼에서 '프리우스'와 'RX400h' 등 도요타와 렉서스 브랜드로 최첨단 '하이브리드 카'를 선보이며 유럽 메이커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단행했다. 혼다자동차도 유럽형 시장을 겨냥한 미니밴 'FR-V'의 양산 컨셉트카를 출시,유럽 대공세가 임박했음을 알렸다. ◆유럽메이커,대대적 구조조정 유럽차 메이커들은 한·일 업체들의 거센 안방 공략에 고심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한·일 메이커들의 원가경쟁력이 더욱 좋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다. 독일 영국의 생산직 임금은 시간당 35달러로 미국의 1.5배 수준.한·일 메이커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 수준이다. 게다가 유럽 내에만 연 2백만대의 과잉생산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유럽 메이커들은 전면적인 라인폐쇄와 생산 효율화 전략을 통해 시장방어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폭스바겐은 오는 2011년까지 20억유로의 비용절감을 목표로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당장 3만명의 대량해고가 불가피하다는 압박전략을 펼치며 향후 2년간 임금 동결을 노조에 요청한 상태다. 최근 3년간 23억달러라는 기록적인 적자에 시달린 GM유럽은 자회사인 사브와 오펠의 체질개선에 착수했다. 사브의 스웨덴 공장 한 곳을 폐쇄,생산을 집약시키는 한편 오펠의 미니밴 '자피라'의 생산라인은 폴란드로 이전키로 결정했다. 피아트도 자국 내 공장은 결코 건드리지 않는다는 원칙에서 한 발 물러나 토리노의 엔진공장을 아르헨티나로 이전키로 결정했다. 포드유럽도 자회사인 볼보 랜드로버 재규어의 관리지주회사인 프리미엄 오토모티브 그룹(PGA)의 합리화를 위해 칼을 빼들었다. 1인당 생산대수가 12대로 업계 평균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재규어의 일부 공장을 폐쇄하고 포뮬러 원 사업도 매각키로 결정했다. PSA도 도요타와 합작으로 체코에 40만대의 소형차 생산공장을 설립하고 르노는 닛산과 헝가리에 공동물류센터를 설립하는 등 프랑스 업체들도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다. ◆벤츠·BMW,소형차시장 진출 게다가 그동안 럭셔리 세단시장에 안주하던 벤츠와 BMW마저 소형차 시장에 속속 진출,다른 업체를 긴장시키고 있다. BMW는 이번 파리모터쇼에서 1시리즈 신형 모델을,벤츠는 R,B클래스 등을 대거 선보이면서 'D세그먼트(소형차)' 경쟁에 합류했다. 현지 관계자들은 "유럽차 시장 경쟁은 각 업체의 생존과 직결되는 만큼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한·일 업체들도 품질 가격 브랜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리=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