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미투자 관련 내용을 보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미투자 관련 내용을 보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막판 줄다리기 협상 끝에 얻어낸 가장 큰 성과는 ‘투자 안전판’ 확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천문학적인 투자금은 한국이 전부 대고, 수익은 미국과 반으로 나누는 투자 구조 자체가 한국에 불리하지만, 원리금 회수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는 쪽으로 미국 정부의 양보를 끌어냈다.

◇사업 청산 시 한국이 먼저 원리금 회수

22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여러 투자 사업을 상위 특수목적법인(SPV)으로 묶어 관리하는 ‘우산형 투자기구’ 형태로 대미투자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을 관철했다. 한 사업에서 손실이 나더라도 다른 사업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전체 투자의 수익률을 지켜낼 수 있는 구조다. 지난해 말 양국이 맺은 양해각서(MOU)에서 이런 방식으로 수익을 배분하기로 했지만, 미국 정부는 최근 돌연 프로젝트별 개별 정산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원리금 회수 가능성이 떨어질 우려가 크다는 주장을 펼친 끝에 미국 측의 양보를 얻어냈다.

양국 정부는 원리금을 회수할 때까지 수익을 5 대 5대로 나눈다는 내용을 MOU에 담기로 했다. 지난해 말 체결한 MOU에선 사업 개시 후 20년까지만 수익을 5 대 5로 나누고, 이후에는 미국이 9, 한국이 1을 가져가는 방식에 합의했다. 20년 내에 원리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한국에 크게 불리해지는 구조다. 한국 정부는 이를 독소 조항으로 보고 미국 정부를 마지막까지 설득해 원리금을 회수할 때까지 수익 구조 전환을 유예하는 방안을 이끌어냈다. 투자 한도는 총 2000억달러, 연간 200억달러 기준을 확실히 못 박았다.

기존 MOU엔 없던 투자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프로젝트의 수익성이 크게 훼손되거나 당초 책정한 사업비의 20%를 초과하는 등 예상대로 프로젝트가 흘러가지 않을 경우 양국 정부가 협의해 사업 계획과 예산을 수정할 수 있다. 원리금을 모두 회수하기 전 프로젝트를 청산할 시 한국이 먼저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권리도 챙겼다. 사업 진행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할 수 있고, 프로젝트 매니저를 추천할 권한도 확보했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해 말 맺은 MOU와 비교해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투자 안전장치가 대거 보강됐다는 게 이번 협상의 성과”라고 말했다.
韓, 줄다리기 끝에 안전판 챙겼다…원리금 회수까지 수익 5 대 5

◇알래스카 LNG, 금액 낮춰 투자 검토

정부는 대미투자 1호 프로젝트로 확정한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은 총 223억달러를 투자해 20년간 432억9000만∼454억300만달러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투자액의 1.9∼2.0배다. 정부는 2027년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맺고 2029년 4분기부터 단계적으로 상업운전을 시작해 2032년 4분기 최종 발전용량을 확보하는 일정을 전제로 사업성을 산정했다.

다만 정부는 미국 정부로부터 PPA 체결에 대한 확약을 받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PPA 체결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것 아니냐는 일부 야당 의원의 지적에 정부는 “체결 시기를 굳이 앞당길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 수요가 늘면서 발전용량 확보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2호 투자인 원전 프로젝트는 총 1200억달러를 투입해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2기는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을, 나머지 6기는 미국형 원전인 APR1000을 짓기로 했다. 언제, 어디에, 어떤 사업 구조로 원전을 지을지는 확정하지 않았다. 원전마다 상업적 합리성 검토 절차를 따로 밟기로 했다.

한국 정부는 그간 사업성을 이유로 참여를 꺼린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 대해선 한발 물러서 투자를 검토한다는 내용을 MOU에 담기로 했다.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알래스카 북부 가스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남부까지 운송할 약 1300㎞의 가스관과 액화시설 등을 건설하는 대형 에너지 사업이다. 높은 건설비용 때문에 미국 걸프만에서 생산되는 LNG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면서 정부는 투자에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다.

여권 관계자는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당초 미국이 제안한 규모(670억달러)에서 투자액을 상당폭 낮추는 대신 ‘투자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수준에서 ‘투자를 검토한다’로 수위를 한 단계 높였다”고 말했다.

하지은/이슬기/박종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