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출범 이후 44년간 기업인 출신 비상임위원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법상 ‘경력 15년 이상 기업 경영자’라면 비상임위원 자격이 되지만 공정위는 단 한 차례도 기업 출신에게 빗장을 열지 않았다. ‘기업 저승사자’로 불려온 공정위의 위상이 새 정부 들어 더욱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비상임위원 구성을 다양화해 기업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변호사·교수로 양분된 공정위
29일 국회 정무위원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 출범 이후 비상임위원에 기업인을 임명한 전례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이후 지난 5년간 임명된 비상임위원의 경우 8명 중 4명이 변호사 출신이었고, 나머지 4명은 교수 출신이었다. 2005년부터 지난 10년간을 기준으로 해도 17명 중 변호사 출신은 7명, 교수 출신은 8명이고, 1명은 변호사 겸 교수 출신이었다. 나머지 1명은 공정위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비상임위원도 교수 출신(조성진·신영수)과 법조인 출신(신영수·오규성)이 절반씩으로, 이 중 조성진 위원(2026년 3월)을 제외하면 모두 임기가 2027년 이후여서 당분간 이 같은 구성이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상임위원은 공정위의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전원회의를 구성하는 인원으로 총 4명이다.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한 상임위원 5명과 함께 기업에 대한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 등 제재 수준을 정한다. 상임위원은 관행상 공정위 내부 출신이 맡고, 비상임위원은 외부 인사로 임명한다. 공정거래법 37조에는 비상임위원 자격 요건을 △2급 이상 고위 공무원 △15년 이상 경력 법조인(판사·검사·변호사) △15년 이상 근무 경력이 있는 교수나 부교수 △경력 15년 이상 기업 경영 경력이 있는 자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출범 이후 기업인 출신이 단 한 차례도 임명되지 않은 것은 공정위 내부에서 입맛에 맞는 인사를 임명하는 관행이 고착화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공정위는 외부 추천이나 검증 기구 없이 내부에서 비상임위원을 추천해 뽑아 왔다.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비상임위원 17명 중 최소 12명이 친공정위 인사로 분류된다. 고동수·김봉석·양세정·이정희·정재훈·최윤정·조성진·신영수·오규성 위원 등은 비상임위원으로 선임되기 전 공정위 관련 업무를 담당하거나 자문을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임위원이 모두 공정위 출신으로 채워지는 것을 고려하면, 기업의 위법 여부를 심사하고 최종 제재 수위를 정하는 합의체가 모두 친공정위 인사로 채워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 거래 분야는 고도의 법률적·경제학적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자문 경력자를 임명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지 친공정위 성향인지를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더 세진 공정위…구성 다양화해야”
과도한 ‘기업 때리기’를 막고 공정위 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하려면 전원회의 참여 인사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공정위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구에 ‘친정 인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기업인 출신을 포함해 인적 구성의 스펙트럼을 넓힌 사례가 많다. 프랑스 경쟁위원회는 몇 년 전부터 비상임위원의 20%가량을 기업인으로 채우고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직전에 조사를 담당한 내부 출신은 뽑지 않는다.
윤 의원은 “‘친공정위 밀실 인사’에서 벗어나 다양한 배경을 갖춘 전문가에게 빗장을 열어 전원회의를 구성해야 더 공정하고 균형감 있는 심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