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를 사랑한 슈만·브람스의 마지막 교향곡, 빈 필과 서울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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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로
빈 필하모닉 11월 19일 내한
음악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사제관계'
서로를 인정하고 격려했던 두 천재
두 영혼의 뮤즈였던 클라라
슈만 마지막 교향곡 '라인'
브람스 마지막 교향곡 4번 E단조
빈 필의 황금 사운드로 한 무대에
빈 필하모닉 11월 19일 내한
음악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사제관계'
서로를 인정하고 격려했던 두 천재
두 영혼의 뮤즈였던 클라라
슈만 마지막 교향곡 '라인'
브람스 마지막 교향곡 4번 E단조
빈 필의 황금 사운드로 한 무대에
“나는 생각했다, 미네르바처럼 완벽하게 무장한 누군가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한 걸음씩 나오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고 말 것이라고.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젊은 독수리와 같은 그가 나온 요람을, 음악의 요정들과 영웅들이 지켜보았다. 그의 이름은 요하네스 브람스다.” - 1853·새 음악신문Neue Zeitschrift für Musik
작곡가이자 음악평론가로 독일 음악계의 중심에 있던 로베르트 슈만이 23살 아래의 작곡가에 대해 바친 찬사다. 이런 빛나는 상찬을 받으며 자신이 꿈꿔온 세계의 중심에 출현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브람스가 슈만으로부터 작곡 수업을 받은 적은 없지만, 이들의 관계는 음악사상 가장 인상적인 사제관계 또는 선후배 관계의 하나로 꼽힌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이들의 영원한 뮤즈였던 클라라 슈만이 있었다.
1853년, 갓 스무 살의 야심 있는 작곡가였던 브람스를 슈만에게 소개한 사람은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이었다. 청년 작곡가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던 그는 소개장을 써주었다. 이해 10월 1일 브람스는 뒤셀도르프에 있는 슈만의 집을 찾아갔고 슈만과 클라라 부부는 브람스가 자신의 피아노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을 들은 뒤 이를 극찬하며 젊은 작곡가의 재능을 확신했다.
서로를 격려하고 경모하며 이상적으로 이어질 것 같았던 두 작곡가의 교류는 다음 해인 1854년 갑자기 깨졌다.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여러 해 동안 그를 괴롭혀 온 정신이상이 중증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클라라와의 행복한 결합 이후 크게 신경 쓰지 않던 정신이상이 슈만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1853년, 브람스가 그의 집을 찾아와 머물렀다가 간 직후였다. 귀에 한 음이 길게 들리는 이명(耳鳴)이 시작되더니 이내 머릿속에 음악이 들렸다. 슈만은 “천사가 내 귀에 음악을 불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가 바뀌면서 그의 상태는 한층 악화됐다. 환상 속에 나오는 천사들이 순식간에 악마로 바뀌곤 했다. 그는 아내 클라라에게 “내가 당신을 해칠지 몰라 걱정이야”라고 말했다. 2월 27일, 그는 라인강의 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내렸다. 지나가던 배의 선원들이 그를 발견하고 배로 끌어올렸다. 슈만은 “정신병원에 나를 가두어 주오”라고 말했다. 그는 본 근교의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3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클라라의 면회가 허용됐다. 오랜만에 아내를 만난 슈만은 불분명한 발음으로 “나는 알아”라고 웅얼거렸다. 이틀 뒤, 그는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클라라, 사랑하는 클라라,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 속에서 나는 점점 더 행복하고 평화로워집니다. 매번 당신이 더 그리워지지만, 거의 기쁨으로 당신을 갈망합니다. 바로 이렇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이 감정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따뜻한 적은 없었습니다.” 문맥만으로는 불붙는 사랑에 붙들린 연인의 편지와 구분할 수 없다.
그다음 해인 1856년 슈만은 세상을 떠났다. 브람스는 23세의 혈기왕성한 나이, 8명의 자녀를 둔 클라라 슈만은 37세였다. 두 사람의 교류는 이후 1896년 클라라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편지로, 지인의 집에서 열리는 소규모 콘서트 참석으로. 브람스는 중요한 곡을 쓸 때마다 클라라에게 의견을 구했다.
연정이라고 불릴 만한 열정은 브람스 쪽의 일방적인 것이었을까. 클라라가 1858년 브람스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다. “나의 요하네스, 또 다른 편지를 기다립니다. 당신처럼 갈망을 달콤하게 느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갈망은 나에게 고통만을 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으로 내 마음을 채웁니다. 안녕! 당신의 클라라를 좋게 생각해 주세요.”
평생 독신이었던 브람스는 클라라가 세상을 떠난 뒤 1년도 못 되어 클라라를 따라갔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틸레만 지휘 빈 필이 첫 곡으로 연주할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은 그의 교향곡 중에서 브람스의 영향이 가장 짙게 드러나는 곡으로 꼽힌다. 브람스의 교향곡 3번 시작부에 나타나는 ‘F-A-F’ 동기는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를 나타내는 요아힘의 ‘F-A-E’(Frei aber froh) 동기를 변형한 것으로 ‘자유롭게 그러나 기쁘게(froh)’를 뜻한다. 이 음형 또는 동기는 슈만의 ‘라인’ 교향곡 1악장 재현부에도 모습을 보인다.
브람스가 교향곡 3번의 2년 뒤인 1885년 작곡한 교향곡 4번은 3번에 비해 한결 만년의 고독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브람스 교향곡 중 유일하게 단조로 쓰였으며 많은 평자가 이 곡에서 ‘부인할 수 없는 비극적 성격’이 보인다고 말했다. 브람스 자신은 출판업자에게 이 작품이 연주되기 전 자신에게 ‘가장 인간적인 일’, 곧 죽음이 닥칠 경우에 이러저러하게 처리해 달라는 지침을 남기기도 했다.
브람스는 지휘자 한스 폰 뷜로에게 “이 교향곡에서 이 곳(작곡 작업을 한 뮈르츠슐라크) 의 기후가 느껴질까 봐 두렵습니다. 이곳의 체리는 써요. 당신 같으면 먹지 않을 겁니다!”라며 이 곡의 텁텁한 느낌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이후 음악적 유언이라고 할 수 있는 ‘네 개의 엄숙한 노래’(1896)에서 이 교향곡 4번의 시작 음형(B-G-E-C)을 인용하며 ‘오 죽음이여! 오 죽음이여!’라는 가사를 붙였다.
클라라 슈만이라는 뮤즈를 두었던 슈만과 브람스의 영혼은 공통적으로 ‘자유롭지만 고독’했으며 ‘자유롭지만 기쁜’ 세계를 창조했다.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손에서 그 영혼의 불꽃들은 어떤 화면으로 펼쳐질까. 빈 필의 정통 사운드와 함께 하는 그 무대가 이제 눈앞에 열린다.
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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