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질곡의 현대사를 포착한 사람들
“‘탕, 탕, 탕’ 페퍼포그는 물론 전경들이 최루탄 직격탄을 쏘기 시작했어…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교내로 달아나는 학생 중 한 학생이 손을 뒷머리에 올리다가 푹 쓰러지는 걸 목격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지.”

여든이 넘은 사진가 정태원이 37년이 넘게 지난 1987년의 여름을 떠올리며 말한다. 비슷하게 머리가 희끗희끗한 후배 사진기자 김연수가 이를 받아 적는다. 이날 카메라 필름에 남은 건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던 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모습. 교과서부터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반복해 인용되는 기념비적인 사진의 탄생 순간에 관한 생생한 증언이 이어진다.

<찰나의 승부사>는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을 포착해온 사진기자들을 후배들이 찾아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이다. 전 로이터 사진기자 정태원을 비롯해 이의택, 임희순, 황종건 등 19명의 ‘찰나의 승부사’가 당시의 시대상과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는 항상 사진가들이 있었다. 카메라는 불의에 저항하는 수단이자 사라져가는 사회의 단면을 기록하는 창구였다. 지금처럼 영상과 사진이 왕성하게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격동의 현장을 모아놓은 다큐멘터리 같은 책이다.

굵직한 ‘특종’을 연달아 터뜨린 배경에는 순발력과 운, 무엇보다 땀 흘리며 발로 뛴 노력이 있었다. 구순을 앞둔 이들은 아직도 사진작가로 남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송영학 기자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기록이라는 사진의 역사성은 영원히 유지돼야 할 것 같아.”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