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부터 색감까지… 방구석 1열보단 극장이 어울리는 ‘전,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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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 란’ 리뷰
오는 11일 넷플릭스 공개
OTT 영화다운 박력 있는 전개
입체적 캐릭터로 뻔한 소재에 힘 더해
때마다 나오는 ‘평등’은 화려한 액션에 묻혀
오는 11일 넷플릭스 공개
OTT 영화다운 박력 있는 전개
입체적 캐릭터로 뻔한 소재에 힘 더해
때마다 나오는 ‘평등’은 화려한 액션에 묻혀
전란(戰亂)은 ‘전쟁으로 인한 난리통’을 말한다. 영화적으로는 뻔한 소재다. 특히 배경이 임진왜란이라면 기대감은 더욱 줄어든다. ‘명량’(2014)으로 시작한 이순신 3부작 등 왜적의 침략과 이에 맞서는 조선의 이야기는 수없이 봐 왔다. 그래서일까. 영화 제작은 물론 각본까지 맡은 거장 박찬욱은 글자 사이에 쉼표를 집어넣어 시나리오를 비튼다. 단순한 전쟁 시대극은 아니란 뜻이다.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작품인데도, 개막작으로 파격 선정한 이유다.
▶▶[관련기사] 박찬욱표 ‘웰메이드’가 첫 출항… ‘영화의 바다’로 닻 올린 BIFF
천영은 맞서 싸우고, 종려는 흔들린다
영화 ‘전, 란’은 두 차례 왜란을 겪으며 양반의 아들 이종려(박정민 분)와 몸종 천영(강동원 분)이 빚는 오해와 갈등을 그린다. 배부른 양반과 굶주린 노비, 백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치는 왕의 측근과 남쪽으로 내려가 맞서 싸우는 의병 등 영화 내내 이분적 대비가 드러나는 대결 국면이 전체적인 얼개다. 영화의 제목은 바로 이 지점에서 명징해진다. 두 사람이 전쟁 속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쉼표를 사이에 둔 글자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싸움’을 뜻하는 전(戰)은 목적성이 강하다. 맞서 쓰러뜨릴 외부의 적이 분명하다. 양인으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팔려가는 바람에 노비가 된 천영의 삶은 전(戰)에 가깝다. 살아가는 이유가 오직 ‘면천(免賤)’에 있어서다. 귀한 몸인 도련님의 ‘맞는 몸종’으로 회초리에 신음하면서도 밤새 검을 휘두르고 결국 대리수험생으로 나서 종려를 장원급제시키는 것도, 7년 동안 왜적을 격퇴하는 것도 결국 공을 세우면 주인님과 나랏님이 해방해 줄 것이란 기대감에서 나온 행위다. 종려와 신분을 초월한 우애를 쌓고, ‘청의검신’으로 불리며 조선 팔도에 명성을 떨치게 되는 건 이 과정에서 나온 부차적인 가치다. 오죽하면 함께 싸운 범동(김신록 분)이 “네 머릿속엔 면천뿐이더냐”고 성을 냈을까.
반면 ‘어지러운 상태’를 뜻하는 난(亂)은 흐릿하다.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난 터라 적이 분명치 않다. 종려의 삶에서 명확한 건 그의 신분과 가지런한 옷매무새뿐. 대대로 무과급제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검을 들기 싫고, 번번이 과거에 떨어져 몸종에게 맡겨야 할 만큼 실력에 자신도 없다. 면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아버지와 실망하는 천영 사이에서 한숨 쉬고, 친구로 여기는 노비를 개만도 못한 짐승이라 부르는 아내에게 씁쓸한 농담이나 던지는 게 전부다. 가족을 몰살한 주범을 천영으로 오해해 그를 쫓지만, 늘 분노와 우정 사이에서 번민한다. 천영, 종려와 모두 싸워 본 왜장 겐신(정성일 분)이 “너희는 결이 같으면서도 다르다”며 칼끝에 실린 분노의 무게가 다르다고 지적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화려한 액션 속 박찬욱표 디테일
영화는 돌고 돌아 종려와 천영이 재회하며 최종장에 돌입하지만, 왜장 겐신까지 함께 칼을 섞는 점은 그간 비슷한 작품에서 볼 수 없던 입체적인 장면이라 흥미롭다. 종려와 천영의 오해와 반목엔 신분제라는 구조적 병폐도 있지만,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적 상황도 엮여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종일관 강렬한 붉은색과 푸른색이 대비되던 것과 달리 최종장 무대가 회색 해무가 짙게 낀 해변인 점도 인상적이다. 바다와 땅의 경계가 흐릿한 모래사장에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등장인물들의 처지와 같다.
시원하고 박력 있는 전개가 강점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새지 않는다.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영화로, 극장과 달리 지루하면 언제나 시청을 그만둘 수 있는 OTT영화 특성이 반영됐다. 전작 ‘군도: 민란의 시대’(2014)에서 강동원이 보여줬던 화려한 장검 액션이 살아있고, 신분제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불평등과 무능함을 보여주는 선조를 연기한 차승원은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2010)에서 이몽학을 연기하며 평등한 세상을 외치던 모습과 오버랩돼 재밌다.
▶▶[관련 기사] 굶주린 몸종으로 돌아온 강동원… "노비 역할 처음이에요" 박찬욱표 디테일도 살아있다. 천영이 ‘장원 급제’를 말할 때 ‘장’자를 길게 늘어뜨리는데, 이는 “장원급제의 장은 장음(長音)”이라며 박 감독이 직접 강동원에게 조언하며 나온 일품 연기다. 다만 영화는 오프닝에서부터 “천하는 모두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정여립의 처형을 보여주는 등 줄곧 봉건 신분제의 모순을 지적하며 ‘평등’을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강조하지만, 쉴새 없이 이어지는 액션과 화려한 장치에 묻혀 잘 와닿지는 않는다.
화제성과 대중성 면에서 눈길을 사로잡지만, 극장에선 만날 수 없다. 오는 11일부터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감상할 수 있다. 액션 등 연출이나 미술, 음악 요소를 고려하면 아무래도 스트리밍 환경보단 스크린이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지점이다. 김태원 넷플릭스 코리아 디렉터는 “BIFF 개막작에 선정돼 영광”이라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서비스를 넷플릭스 구독자가 향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유승목 기자
▶▶[관련기사] 박찬욱표 ‘웰메이드’가 첫 출항… ‘영화의 바다’로 닻 올린 BIFF
천영은 맞서 싸우고, 종려는 흔들린다
영화 ‘전, 란’은 두 차례 왜란을 겪으며 양반의 아들 이종려(박정민 분)와 몸종 천영(강동원 분)이 빚는 오해와 갈등을 그린다. 배부른 양반과 굶주린 노비, 백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치는 왕의 측근과 남쪽으로 내려가 맞서 싸우는 의병 등 영화 내내 이분적 대비가 드러나는 대결 국면이 전체적인 얼개다. 영화의 제목은 바로 이 지점에서 명징해진다. 두 사람이 전쟁 속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쉼표를 사이에 둔 글자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싸움’을 뜻하는 전(戰)은 목적성이 강하다. 맞서 쓰러뜨릴 외부의 적이 분명하다. 양인으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팔려가는 바람에 노비가 된 천영의 삶은 전(戰)에 가깝다. 살아가는 이유가 오직 ‘면천(免賤)’에 있어서다. 귀한 몸인 도련님의 ‘맞는 몸종’으로 회초리에 신음하면서도 밤새 검을 휘두르고 결국 대리수험생으로 나서 종려를 장원급제시키는 것도, 7년 동안 왜적을 격퇴하는 것도 결국 공을 세우면 주인님과 나랏님이 해방해 줄 것이란 기대감에서 나온 행위다. 종려와 신분을 초월한 우애를 쌓고, ‘청의검신’으로 불리며 조선 팔도에 명성을 떨치게 되는 건 이 과정에서 나온 부차적인 가치다. 오죽하면 함께 싸운 범동(김신록 분)이 “네 머릿속엔 면천뿐이더냐”고 성을 냈을까.
반면 ‘어지러운 상태’를 뜻하는 난(亂)은 흐릿하다.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난 터라 적이 분명치 않다. 종려의 삶에서 명확한 건 그의 신분과 가지런한 옷매무새뿐. 대대로 무과급제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검을 들기 싫고, 번번이 과거에 떨어져 몸종에게 맡겨야 할 만큼 실력에 자신도 없다. 면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아버지와 실망하는 천영 사이에서 한숨 쉬고, 친구로 여기는 노비를 개만도 못한 짐승이라 부르는 아내에게 씁쓸한 농담이나 던지는 게 전부다. 가족을 몰살한 주범을 천영으로 오해해 그를 쫓지만, 늘 분노와 우정 사이에서 번민한다. 천영, 종려와 모두 싸워 본 왜장 겐신(정성일 분)이 “너희는 결이 같으면서도 다르다”며 칼끝에 실린 분노의 무게가 다르다고 지적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화려한 액션 속 박찬욱표 디테일
영화는 돌고 돌아 종려와 천영이 재회하며 최종장에 돌입하지만, 왜장 겐신까지 함께 칼을 섞는 점은 그간 비슷한 작품에서 볼 수 없던 입체적인 장면이라 흥미롭다. 종려와 천영의 오해와 반목엔 신분제라는 구조적 병폐도 있지만,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적 상황도 엮여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종일관 강렬한 붉은색과 푸른색이 대비되던 것과 달리 최종장 무대가 회색 해무가 짙게 낀 해변인 점도 인상적이다. 바다와 땅의 경계가 흐릿한 모래사장에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등장인물들의 처지와 같다.
시원하고 박력 있는 전개가 강점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새지 않는다.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영화로, 극장과 달리 지루하면 언제나 시청을 그만둘 수 있는 OTT영화 특성이 반영됐다. 전작 ‘군도: 민란의 시대’(2014)에서 강동원이 보여줬던 화려한 장검 액션이 살아있고, 신분제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불평등과 무능함을 보여주는 선조를 연기한 차승원은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2010)에서 이몽학을 연기하며 평등한 세상을 외치던 모습과 오버랩돼 재밌다.
▶▶[관련 기사] 굶주린 몸종으로 돌아온 강동원… "노비 역할 처음이에요" 박찬욱표 디테일도 살아있다. 천영이 ‘장원 급제’를 말할 때 ‘장’자를 길게 늘어뜨리는데, 이는 “장원급제의 장은 장음(長音)”이라며 박 감독이 직접 강동원에게 조언하며 나온 일품 연기다. 다만 영화는 오프닝에서부터 “천하는 모두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정여립의 처형을 보여주는 등 줄곧 봉건 신분제의 모순을 지적하며 ‘평등’을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강조하지만, 쉴새 없이 이어지는 액션과 화려한 장치에 묻혀 잘 와닿지는 않는다.
화제성과 대중성 면에서 눈길을 사로잡지만, 극장에선 만날 수 없다. 오는 11일부터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감상할 수 있다. 액션 등 연출이나 미술, 음악 요소를 고려하면 아무래도 스트리밍 환경보단 스크린이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지점이다. 김태원 넷플릭스 코리아 디렉터는 “BIFF 개막작에 선정돼 영광”이라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서비스를 넷플릭스 구독자가 향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