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베를린필, 바렌보임 … '세계 최고'들이 빛낸 BBC프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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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민선의 런던 리뷰 오브 뮤직
BBC 프롬스 2024 리뷰
130년 전통의 영국 클래식 축제
매년 여름 런던 로열 알버트홀에서 개최
임윤찬 공연 가장 빨리 전석 매진 '화제'
가디언 등 英언론도 극찬
BBC 프롬스 2024 리뷰
130년 전통의 영국 클래식 축제
매년 여름 런던 로열 알버트홀에서 개최
임윤찬 공연 가장 빨리 전석 매진 '화제'
가디언 등 英언론도 극찬
런던에 사는 가장 큰 기쁨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BBC 프롬스를 경험할 수 있는 거요.”
15년 전 클래식 담당 기자 시절, 유럽의 클래식 공연 열기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 BBC 프롬스와 만났다. 한여름, 런던의 쨍한 햇살과 단돈 8파운드(한화 1만4000원)로 즐길 수 있는 세계적인 클래식 축제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
“영국에 가면 프롬스라는 축제가 있는데, 정말 말도 안 돼. 사람들이 서서 클래식 공연을 보고, 앉아서 와인을 마시면서 음악을 듣는다니까. 관객들은 발을 구르고 쿵쿵 소리를 내서 환호해. 록 페스티벌 같아.”라고.
런던의 프롬스를 그렇게 그리워했는데, 어쩌다 15년 후에 가족과 함께 이곳에 살게 됐다. 마침 프롬스가 열리는 로얄 알버트홀 근처에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큰 행운인지. 2024년 런던의 여름도 프롬스의 낮과 밤의 기억으로 채색되고 있다. 클래식의 문턱을 낮춘 축제
클래식 음악은 엘리트 계층이 향유하는 ‘그들만의 음악’이라는 인식이 있다.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이라는 평가가 있고, 사실 일부 맞는 얘기기도 하다. 작곡가 브루크너나 말러 교향곡을 들으며 화성학, 대위법을 떠올린다면 훨씬 흥미로운 감상이 될 테니까. 하지만 음악을 듣는 행위는 인간 보편의 욕구이고, 계층과 무관하게 누구든 음악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 또한 존재한다.
BBC 프롬스는 이러한 정신에 기반하는 축제다. ‘프롬나드 콘서트(Promenade concerts)’의 줄임말로 '산책하듯 공연장을 찾아 음악을 즐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 드레스코드 맞춰 입고 각 잡고 오는 공연이 아니라, 누구든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을 즐기러 오라는 의미다.1895년 시작되어 130년을 이어왔다. 매년 7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런던의 로얄 알버트 홀에서 매일 개최된다. 올해 프롬스는 7월 19일 개막 공연을 시작으로 9월 14일까지 열린다. 매 공연마다 숫자를 붙이는데, 개막 공연은 prom 1, 올해 폐막 공연은 prom 73이다.
축제 취지에 맞게 티켓값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스탠딩 티켓은 무조건 8파운드. 무대 앞 아레나(arena)와 꼭대기 층의 갤러리(gallery) 중 고를 수 있다. 좌석도 최대 80파운드를 넘지 않는다(개막, 폐막 공연 제외). 올해 프롬스에서 공연을 10회 관람했는데, 베를린 필(70파운드), 임윤찬(46파운드), 그 외는 모두 스탠딩(8파운드)으로 공연을 관람했다. 10회 공연에 180파운드(한화 약 31만원)를 쓴 셈이니, 상상 초월의 가성비 높은 경험이다. 세계 최고를 끌어모으는 축제
티켓값은 이렇게 저렴한데, 프로그램은 세계 최고 수준. 프롬스는 여전히 세계적인 연주자, 지휘자, 오케스트라들을 끌어모았다.
브렉시트 이후 독일 시민권을 취득한 거장 사이먼 래틀도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로얄 알버트 홀을 찾았다. 세계 최고 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웨스트-이스턴 다이반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여제 안네 소피무터, 첼리스트 요요마,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 등이 무대를 빛냈다.
클래식 외에도 연극, 뮤지컬, 오페라, 팝, OST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펼쳐졌다. BBC 드라마 ‘닥터 후(Doctor WHO)’나 셰익스피어의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을 모티브로 한 공연, 오페라 ‘카르멘’, 영화 ‘핑크팬더’ OST 공연 등 다채로운 기획으로 관객의 지평을 넓혔다. 축제 기간에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폭넓은 세대의 관객이 몰려드는 이유다. 타협 없는 레퍼토리
클래식의 높은 문턱을 낮춘 축제지만, 거장들은 수준 높은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올해 프롬스에서 키릴 파트렌코가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은 브루크너 교향곡 5번, 사이먼 래틀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브루크너 교향곡 4번과 말러 교향곡 6번을 택했다.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관객들에겐 난해할 수 있는 곡들이지만, 거장들은 관객들을 믿고 무대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대중에게 익숙한 곡들로 신규 관객을 유입하면서도, 전통의 클래식 애호가들의 눈높이에도 맞추는 전략이다.
8월 31일, 9월 1일 양일간 열린 베를린 필의 무대는 프롬스의 위상을 제대로 뽐낸 공연이었다. 첫날 베를린 필과 아이슬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비킹쿠르 올라프손이 합을 맞춘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관객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러브레터였다. 다음날 베를린 필은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선보였는데, 브루크너 특유의 복잡한 전개에도 세계 최고 악단의 내공은 빛을 발했다. 페트렌코는 손끝의 미세한 움직임과 진동만으로도 악단의 사운드를 컨트롤했다. 가디언은 “스튜디오에서 볼륨 1부터 10까지 디지털 기기가 컨트롤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정교했다”며 “베를린 필 공연은 다시 런던을 세계 최고의 클래식 무대로 끌어올렸다”고 평했다. 텔레그래프도 “이제 그 누구도, 프롬스가 예전처럼 최고를 끌어모으는 능력을 잃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클래식계에서 밀려났다는 평가를 넘어서려는, 영국 내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9월 5일 공연에서 사이먼 래틀은 영국의 현대 음악 작곡가 토마스 아데스의 곡 'Aquifer'를 영국 초연(UK premier)으로 선보였다. 인터벌에는 래틀이 직접 아데스에게 골드메달을 수여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이 메달은 클래식 음악계 최고의 영예 중 하나로 브람스, 엘가, 쇼스타코비치 등이 받았다. 래틀은 아데스에 경의를 표하며 “이 시대의 위대한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라며 “우리는 당신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BBC 라디오 3의 프로그램 진행자 린톤 스테판스는 “초연을 듣는 것은 평생 한 번 있는 일”이라며 “몇 년이 지나서도 그 곡의 초연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악단은 뒤이어 브루크너 교향곡 4번 ‘Romantic’을 선보였다. 래틀은 마치 소리를 빚는 마술사처럼, 정교한 손짓으로 악단의 사운드를 뽑아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은 수차례 발을 구르며 래틀과 악단에 환호했다. 다니엘 바렌보임과 안네 소피 무터의 조합도 거장들의 파워를 보여줬다. 좌석은 물론 입석까지 전석 매진됐고, 공연 후 빠져나가는 차량 행렬로 일대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화제의 슈퍼데뷔, 임윤찬
올해 프롬스는 아시아계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중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프롬스 데뷔 공연은 단연 화제. 공연장을 찾는 프로머들(Promer : 스탠딩 관객들)끼리는 줄 서서 기다리며 스몰토크하는 문화가 있는데 “올해 프롬스에서 최고의 무대”를 놓고 임윤찬 이름이 자주 등장했다.
영국 언론도 임윤찬을 최고의 스타로 조명했다. 가디언은 연달아 2개의 리뷰를 내놓으며,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춘 임윤찬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연주를 극찬했다. 통상 뜨거웠던 공연은 리뷰 1개, 평범한 공연은 아예 리뷰가 안 나오는데 말이다. 가디언은 되려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활기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임윤찬의 연주는 불가능할 정도로 섬세한 터치였고, 건반을 통해 결정체처럼 맑은 사운드를 빚어냈다”고 극찬했다.
임윤찬 공연은 티켓 판매 속도로도 이미 화제였다. 올해 프롬스에서 가장 빨리 매진된 공연 중 하나였다. 좌석부터 아레나(1층 스탠딩), 갤러리(5층 스탠딩)까지 전석 매진된 공연으로, 당일 분위기도 매우 뜨거웠다. 다른 공연과 비교해 젊은, 아시아계 관객들이 많이 유입된 영향도 있다. 마치 록스타 무대를 보듯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가 쏟아졌고, 연주가 끝난 뒤에는 스마트폰을 높이 들고 그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프롬스 조직위는 올해 아시아계, 젊은 아티스트들을 많이 섭외했다. 지휘자도, 협연자도 유독 아시아계가 눈에 띄었다. 개막공연부터 아시아계 여성 지휘자가 등장했을 정도.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는 아시아, 특히 열광적이기로 이름난 한국 등의 젊은 관객을 의식한 행보일까. 프롬스 코리아, 프롬스 재팬 등이 기획된 배경과도 연결되는 흐름으로 보인다.
여전히, 프롬스가 아름다운 이유
브렉시트와 유럽 내에서 런던 클래식계의 위상이 많이 추락할 것이라고 했지만, 클래식 대중화라는 프롬스의 정신은 여전히 빛났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이렇게 썼다.
"England is the most class-ridden country under the sun.(영국은 세상에서 가장 계층 의식이 뿌리 깊은 나라다.)”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계급화된 나라라는 인식이 있다. 실제로 아직도 왕이 존재하는 국가니까. 이곳에서 사는 내 머릿속에도 늘 ‘클래시즘(Classism)’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프롬스 기간만은, 적어도 로열 알버트홀의 공연장과 바에서는 ‘소셜믹스(social mix)’가 활발했다. 갈라지고 찢어진 영국 사회가 끝내 쪼개지지는 않게 하는 예술의 힘이랄까.
한국에서도 올해 12월에 프롬스 코리아가 열린다고 하던데, 같은 이름만 붙이는 축제는 아니길.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프롬스의 기본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축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런던=조민선 아르떼 객원기자
“BBC 프롬스를 경험할 수 있는 거요.”
15년 전 클래식 담당 기자 시절, 유럽의 클래식 공연 열기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 BBC 프롬스와 만났다. 한여름, 런던의 쨍한 햇살과 단돈 8파운드(한화 1만4000원)로 즐길 수 있는 세계적인 클래식 축제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
“영국에 가면 프롬스라는 축제가 있는데, 정말 말도 안 돼. 사람들이 서서 클래식 공연을 보고, 앉아서 와인을 마시면서 음악을 듣는다니까. 관객들은 발을 구르고 쿵쿵 소리를 내서 환호해. 록 페스티벌 같아.”라고.
런던의 프롬스를 그렇게 그리워했는데, 어쩌다 15년 후에 가족과 함께 이곳에 살게 됐다. 마침 프롬스가 열리는 로얄 알버트홀 근처에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큰 행운인지. 2024년 런던의 여름도 프롬스의 낮과 밤의 기억으로 채색되고 있다. 클래식의 문턱을 낮춘 축제
클래식 음악은 엘리트 계층이 향유하는 ‘그들만의 음악’이라는 인식이 있다.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이라는 평가가 있고, 사실 일부 맞는 얘기기도 하다. 작곡가 브루크너나 말러 교향곡을 들으며 화성학, 대위법을 떠올린다면 훨씬 흥미로운 감상이 될 테니까. 하지만 음악을 듣는 행위는 인간 보편의 욕구이고, 계층과 무관하게 누구든 음악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 또한 존재한다.
BBC 프롬스는 이러한 정신에 기반하는 축제다. ‘프롬나드 콘서트(Promenade concerts)’의 줄임말로 '산책하듯 공연장을 찾아 음악을 즐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 드레스코드 맞춰 입고 각 잡고 오는 공연이 아니라, 누구든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을 즐기러 오라는 의미다.1895년 시작되어 130년을 이어왔다. 매년 7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런던의 로얄 알버트 홀에서 매일 개최된다. 올해 프롬스는 7월 19일 개막 공연을 시작으로 9월 14일까지 열린다. 매 공연마다 숫자를 붙이는데, 개막 공연은 prom 1, 올해 폐막 공연은 prom 73이다.
축제 취지에 맞게 티켓값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스탠딩 티켓은 무조건 8파운드. 무대 앞 아레나(arena)와 꼭대기 층의 갤러리(gallery) 중 고를 수 있다. 좌석도 최대 80파운드를 넘지 않는다(개막, 폐막 공연 제외). 올해 프롬스에서 공연을 10회 관람했는데, 베를린 필(70파운드), 임윤찬(46파운드), 그 외는 모두 스탠딩(8파운드)으로 공연을 관람했다. 10회 공연에 180파운드(한화 약 31만원)를 쓴 셈이니, 상상 초월의 가성비 높은 경험이다. 세계 최고를 끌어모으는 축제
티켓값은 이렇게 저렴한데, 프로그램은 세계 최고 수준. 프롬스는 여전히 세계적인 연주자, 지휘자, 오케스트라들을 끌어모았다.
브렉시트 이후 독일 시민권을 취득한 거장 사이먼 래틀도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로얄 알버트 홀을 찾았다. 세계 최고 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웨스트-이스턴 다이반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여제 안네 소피무터, 첼리스트 요요마,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 등이 무대를 빛냈다.
클래식 외에도 연극, 뮤지컬, 오페라, 팝, OST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펼쳐졌다. BBC 드라마 ‘닥터 후(Doctor WHO)’나 셰익스피어의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을 모티브로 한 공연, 오페라 ‘카르멘’, 영화 ‘핑크팬더’ OST 공연 등 다채로운 기획으로 관객의 지평을 넓혔다. 축제 기간에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폭넓은 세대의 관객이 몰려드는 이유다. 타협 없는 레퍼토리
클래식의 높은 문턱을 낮춘 축제지만, 거장들은 수준 높은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올해 프롬스에서 키릴 파트렌코가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은 브루크너 교향곡 5번, 사이먼 래틀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브루크너 교향곡 4번과 말러 교향곡 6번을 택했다.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관객들에겐 난해할 수 있는 곡들이지만, 거장들은 관객들을 믿고 무대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대중에게 익숙한 곡들로 신규 관객을 유입하면서도, 전통의 클래식 애호가들의 눈높이에도 맞추는 전략이다.
8월 31일, 9월 1일 양일간 열린 베를린 필의 무대는 프롬스의 위상을 제대로 뽐낸 공연이었다. 첫날 베를린 필과 아이슬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비킹쿠르 올라프손이 합을 맞춘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관객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러브레터였다. 다음날 베를린 필은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선보였는데, 브루크너 특유의 복잡한 전개에도 세계 최고 악단의 내공은 빛을 발했다. 페트렌코는 손끝의 미세한 움직임과 진동만으로도 악단의 사운드를 컨트롤했다. 가디언은 “스튜디오에서 볼륨 1부터 10까지 디지털 기기가 컨트롤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정교했다”며 “베를린 필 공연은 다시 런던을 세계 최고의 클래식 무대로 끌어올렸다”고 평했다. 텔레그래프도 “이제 그 누구도, 프롬스가 예전처럼 최고를 끌어모으는 능력을 잃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클래식계에서 밀려났다는 평가를 넘어서려는, 영국 내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9월 5일 공연에서 사이먼 래틀은 영국의 현대 음악 작곡가 토마스 아데스의 곡 'Aquifer'를 영국 초연(UK premier)으로 선보였다. 인터벌에는 래틀이 직접 아데스에게 골드메달을 수여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이 메달은 클래식 음악계 최고의 영예 중 하나로 브람스, 엘가, 쇼스타코비치 등이 받았다. 래틀은 아데스에 경의를 표하며 “이 시대의 위대한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라며 “우리는 당신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BBC 라디오 3의 프로그램 진행자 린톤 스테판스는 “초연을 듣는 것은 평생 한 번 있는 일”이라며 “몇 년이 지나서도 그 곡의 초연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악단은 뒤이어 브루크너 교향곡 4번 ‘Romantic’을 선보였다. 래틀은 마치 소리를 빚는 마술사처럼, 정교한 손짓으로 악단의 사운드를 뽑아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은 수차례 발을 구르며 래틀과 악단에 환호했다. 다니엘 바렌보임과 안네 소피 무터의 조합도 거장들의 파워를 보여줬다. 좌석은 물론 입석까지 전석 매진됐고, 공연 후 빠져나가는 차량 행렬로 일대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화제의 슈퍼데뷔, 임윤찬
올해 프롬스는 아시아계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중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프롬스 데뷔 공연은 단연 화제. 공연장을 찾는 프로머들(Promer : 스탠딩 관객들)끼리는 줄 서서 기다리며 스몰토크하는 문화가 있는데 “올해 프롬스에서 최고의 무대”를 놓고 임윤찬 이름이 자주 등장했다.
영국 언론도 임윤찬을 최고의 스타로 조명했다. 가디언은 연달아 2개의 리뷰를 내놓으며,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춘 임윤찬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연주를 극찬했다. 통상 뜨거웠던 공연은 리뷰 1개, 평범한 공연은 아예 리뷰가 안 나오는데 말이다. 가디언은 되려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활기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임윤찬의 연주는 불가능할 정도로 섬세한 터치였고, 건반을 통해 결정체처럼 맑은 사운드를 빚어냈다”고 극찬했다.
임윤찬 공연은 티켓 판매 속도로도 이미 화제였다. 올해 프롬스에서 가장 빨리 매진된 공연 중 하나였다. 좌석부터 아레나(1층 스탠딩), 갤러리(5층 스탠딩)까지 전석 매진된 공연으로, 당일 분위기도 매우 뜨거웠다. 다른 공연과 비교해 젊은, 아시아계 관객들이 많이 유입된 영향도 있다. 마치 록스타 무대를 보듯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가 쏟아졌고, 연주가 끝난 뒤에는 스마트폰을 높이 들고 그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프롬스 조직위는 올해 아시아계, 젊은 아티스트들을 많이 섭외했다. 지휘자도, 협연자도 유독 아시아계가 눈에 띄었다. 개막공연부터 아시아계 여성 지휘자가 등장했을 정도.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는 아시아, 특히 열광적이기로 이름난 한국 등의 젊은 관객을 의식한 행보일까. 프롬스 코리아, 프롬스 재팬 등이 기획된 배경과도 연결되는 흐름으로 보인다.
여전히, 프롬스가 아름다운 이유
브렉시트와 유럽 내에서 런던 클래식계의 위상이 많이 추락할 것이라고 했지만, 클래식 대중화라는 프롬스의 정신은 여전히 빛났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이렇게 썼다.
"England is the most class-ridden country under the sun.(영국은 세상에서 가장 계층 의식이 뿌리 깊은 나라다.)”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계급화된 나라라는 인식이 있다. 실제로 아직도 왕이 존재하는 국가니까. 이곳에서 사는 내 머릿속에도 늘 ‘클래시즘(Classism)’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프롬스 기간만은, 적어도 로열 알버트홀의 공연장과 바에서는 ‘소셜믹스(social mix)’가 활발했다. 갈라지고 찢어진 영국 사회가 끝내 쪼개지지는 않게 하는 예술의 힘이랄까.
한국에서도 올해 12월에 프롬스 코리아가 열린다고 하던데, 같은 이름만 붙이는 축제는 아니길.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프롬스의 기본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축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런던=조민선 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