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으로 이주한 자메이카 소년…할렘가 쓰레기에서 희망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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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워드 개인전 '온고잉(ongoin')
리만머핀 서울에서 10월 19일까지
할렘에서 수집한 사물로 전하는
치유, 공동체, 자유의 메시지
리만머핀 서울에서 10월 19일까지
할렘에서 수집한 사물로 전하는
치유, 공동체, 자유의 메시지
미국 뉴욕 맨해튼 북부의 할렘은 역설적인 동네다. 빈민가의 대명사이면서도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의 아메리칸드림이 서려 있고, 불안정한 치안에도 공동체 의식으로 엮여 있다. 역설은 예술가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 중 하나. 시인 랭스턴 휴스, 음악가 루이 암스트롱 등 재능있는 작가들이 할렘에서 '흑인 르네상스'를 꽃피운 이유가 여기 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나리 워드(61·사진)는 할렘의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가다. 폭력을 상징하는 방망이가 치유의 도구로, 죽음을 암시하는 촛농은 생명의 메시지로 뒤바뀐다. 할렘의 길거리에서 수집한 사물을 재활용한 결과다. 이런 그가 신작 10여점을 들고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을 찾았다. 1963년 자메이카 세인트 앤드루에서 태어난 작가는 12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뉴욕과 뉴저지를 전전하다가 할렘가에 정착했다. 30대부터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일상적인 사물로 할렘의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디아스포라와 인종차별, 민주주의, 공동체까지 다양하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할렘의 모습을 담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장례식장마저 문을 닫았던 시절이다. 할렘의 주민들은 길거리에 추모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작가는 매일 아침 양초를 들고 집을 나섰다. 세상을 떠난 이를 애도하기 위해 새로운 초를 놓고, 버려진 양초와 빈 병, 꽃다발을 수집했다. 일반적인 시선에선 상처로 얼룩진 거리였겠지만, 예술가의 눈은 달랐다. 작가는 꺼져가는 촛불에서 치유의 희망을, 그리고 전염병도 갈라놓지 못한 공동체 의식을 발견했다. "제가 전하려던 메시지는 슬픔과 상실이 아닙니다. 조각조각 깨진 유리일수록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반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싶었죠."
작가는 전시의 부제로 '치유(Healing)'를 꼽았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메디슨 배트(Medicine Bats)'(2011)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유리 방망이 속을 솜으로 채운 작품으로, 때론 사람을 해치는 무기를 치유의 도구로 재해석했다. 작가가 일주일 동안 매일 할렘의 거리를 관찰했다는 의미에서 총 7점이 걸렸다. 작가가 대표작으로 꼽은 '레스팅 릴리스(Restin' Release)'(2024)도 이러한 사연을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인다. 푸른빛으로 녹이 슬어가는 동판에 입힌 구리 선이 찬란한 광채를 내뿜는다. 작품 가장자리를 따라 들어선 구리 선은 할렘의 보도블록을 형상화한 장치다. 구리 못으로 새긴 다이아몬드 형태의 장식은 콩고의 우주론을 패턴화한 것으로, 아프리카의 기도문과 기독교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스틸 리빙(Still Livin')' 연작은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놓은 술병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가가 거리에서 수거한 빈 병을 조각내 동판에 입혔다. 제목의 '스틸(Still)'은 영어로 정물화를 뜻하면서도,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다른 작품과 가장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건 '언타이틀드 워닝(untitled warnings)'(2024)이다. 새장 창살에 낡은 신발 혀가 박힌 모습의 설치작품이다. 각각의 신발 혀에는 매장에서 도난 방지를 위해 부착하는 태그가 달려있다. 태그에는 '경고(Warning)'란 문구가 적혀있다. 자유를 억압하는 창살이 점점 죄어오는 세태를 경고하는 의미를 담았다.
전시 제목은 '온고잉(ongoin')'. 우리말로 '계속된다'는 의미다.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날 할렘을 응원하는 작가의 메시지이자, 앞으로도 할렘의 거리를 살피겠다는 작가의 다짐이 반영된 제목이다. 이번에 전시된 '언타이틀드 워닝'에선 이전 작품들과 달리 금박담요가 활용됐다. 작가의 재료 폭이 한층 더 확장했다는 얘기다. "금박 담요는 환자의 저체온증을 막기 위한 의료 도구입니다. 난민의 입장에서 봤을 땐 생존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죠. 제가 준비하는 다음 전시에는 금박담요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작가는 오는 9월 6~8일 미국 뉴욕의 국제 현대미술전인 아모리 쇼 참가를 앞두고 있다. 리만머핀 서울에서의 전시는 10월 19일까지다. 안시욱 기자
뉴욕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나리 워드(61·사진)는 할렘의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가다. 폭력을 상징하는 방망이가 치유의 도구로, 죽음을 암시하는 촛농은 생명의 메시지로 뒤바뀐다. 할렘의 길거리에서 수집한 사물을 재활용한 결과다. 이런 그가 신작 10여점을 들고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을 찾았다. 1963년 자메이카 세인트 앤드루에서 태어난 작가는 12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뉴욕과 뉴저지를 전전하다가 할렘가에 정착했다. 30대부터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일상적인 사물로 할렘의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디아스포라와 인종차별, 민주주의, 공동체까지 다양하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할렘의 모습을 담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장례식장마저 문을 닫았던 시절이다. 할렘의 주민들은 길거리에 추모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작가는 매일 아침 양초를 들고 집을 나섰다. 세상을 떠난 이를 애도하기 위해 새로운 초를 놓고, 버려진 양초와 빈 병, 꽃다발을 수집했다. 일반적인 시선에선 상처로 얼룩진 거리였겠지만, 예술가의 눈은 달랐다. 작가는 꺼져가는 촛불에서 치유의 희망을, 그리고 전염병도 갈라놓지 못한 공동체 의식을 발견했다. "제가 전하려던 메시지는 슬픔과 상실이 아닙니다. 조각조각 깨진 유리일수록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반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싶었죠."
작가는 전시의 부제로 '치유(Healing)'를 꼽았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메디슨 배트(Medicine Bats)'(2011)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유리 방망이 속을 솜으로 채운 작품으로, 때론 사람을 해치는 무기를 치유의 도구로 재해석했다. 작가가 일주일 동안 매일 할렘의 거리를 관찰했다는 의미에서 총 7점이 걸렸다. 작가가 대표작으로 꼽은 '레스팅 릴리스(Restin' Release)'(2024)도 이러한 사연을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인다. 푸른빛으로 녹이 슬어가는 동판에 입힌 구리 선이 찬란한 광채를 내뿜는다. 작품 가장자리를 따라 들어선 구리 선은 할렘의 보도블록을 형상화한 장치다. 구리 못으로 새긴 다이아몬드 형태의 장식은 콩고의 우주론을 패턴화한 것으로, 아프리카의 기도문과 기독교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스틸 리빙(Still Livin')' 연작은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놓은 술병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가가 거리에서 수거한 빈 병을 조각내 동판에 입혔다. 제목의 '스틸(Still)'은 영어로 정물화를 뜻하면서도,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다른 작품과 가장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건 '언타이틀드 워닝(untitled warnings)'(2024)이다. 새장 창살에 낡은 신발 혀가 박힌 모습의 설치작품이다. 각각의 신발 혀에는 매장에서 도난 방지를 위해 부착하는 태그가 달려있다. 태그에는 '경고(Warning)'란 문구가 적혀있다. 자유를 억압하는 창살이 점점 죄어오는 세태를 경고하는 의미를 담았다.
전시 제목은 '온고잉(ongoin')'. 우리말로 '계속된다'는 의미다.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날 할렘을 응원하는 작가의 메시지이자, 앞으로도 할렘의 거리를 살피겠다는 작가의 다짐이 반영된 제목이다. 이번에 전시된 '언타이틀드 워닝'에선 이전 작품들과 달리 금박담요가 활용됐다. 작가의 재료 폭이 한층 더 확장했다는 얘기다. "금박 담요는 환자의 저체온증을 막기 위한 의료 도구입니다. 난민의 입장에서 봤을 땐 생존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죠. 제가 준비하는 다음 전시에는 금박담요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작가는 오는 9월 6~8일 미국 뉴욕의 국제 현대미술전인 아모리 쇼 참가를 앞두고 있다. 리만머핀 서울에서의 전시는 10월 19일까지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