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국의 '테크 디스카운트' 원망만 할 건가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의 테크산업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잘 몰라요.”

미국 경제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출신인 윤지선 옥토버커뮤니케이션 대표가 최근 ‘스타트업 생태계 콘퍼런스’에서 한 얘기다. 윤 대표는 WSJ에서 근무하던 2022년 한국에 테크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 등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기사로 작성했다. 기사가 공개된 후 글로벌 투자업계에선 놀랍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윤 대표는 “해외 투자자들은 미국에 상장한 쿠팡 정도만 안다”며 “기사를 내보낸 뒤 한국이 언제 이렇게 디지털 쪽으로 발전했냐는 이메일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WSJ 테크 기자로 일하는 동안 한국 테크 기업들로부터 보도자료를 받은 적도, 먼저 연락이 온 적도 거의 없었다고 했다. WSJ를 비롯해 글로벌 유력 매체인 파이낸셜타임스(FT), 뉴욕타임스(NYT) 등에 한국 테크 기업이 소개되는 일 자체가 드물다. 테크크런치 등 해외 정보기술(IT) 매체에 펀딩 등 팩트 위주로 일부 언급되는 정도다. 윤 대표는 “한국 회사들이 글로벌 홍보에 소극적인 것 같다. 글로벌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한국 테크 생태계에 대한 글로벌 인식이 실제 역량보다 몇 단계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몇 달 전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 중심 AI 연구소(HAI)’가 발표한 AI 인덱스 보고서에 한국의 AI 파운데이션 모델이 집계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버X, LG AI 연구원의 엑사원, 삼성전자의 가우스 등이 모두 빠졌다. 네이버가 뒤늦게 HAI 측에 관련 논문을 보내며 수정을 요청했지만 이미 보고서는 발간된 뒤였다. 국내 테크업계에선 보고서의 부실을 지적했지만, 뒤집어보면 한국 기업의 글로벌 홍보가 그만큼 부족했다는 것일 수 있다.

글로벌 기업과 투자자들이 한국 테크 회사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테크 기업과 협업하고 싶어 한국에 온 한 해외 기업이 언어 장벽 때문에 시간 낭비만 하고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며 “모두가 ‘글로벌’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 글로벌로 나갈 준비가 돼 있는 곳은 드문 것 같다”고 했다.

최근 글로벌 테크 생태계는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한국 기업은 나서서 홍보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비영어권 기업을 무시한다고 원망만 할 게 아니라 테크 생태계에서 존재감을 확보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소버린(자주적인) AI’라는 구호만으로는 글로벌 테크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