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미 경제 생태계 흔드는 멕시코 정치
이달 초 치러진 멕시코 선거는 북미지역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미국 정부와 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좌파 여당이 예상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까닭에 그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국가재건운동(MORENA)과 노동당, 녹색당 등으로 구성된 멕시코 집권 좌파연합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 후보는 59.3%의 지지를 얻어 소치틀 갈베스 우파연합 후보를 득표율(27.9%)에서 두 배 이상 앞섰다. 이는 1982년 이후 최고 득표율이다. 상·하원 선거는 재검표 작업이 끝나지 않았지만, 여권은 하원에서 헌법 개정에 필요한 정족수인 3분의 2 선을 훨씬 넘는 의석을 확정 지었고, 상원에서는 이에 불과 2~3석 부족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최근 멕시코 외환시장과 증권시장은 여권 정치인들의 발언에 따라 수시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달러화 대비 멕시코 페소화 가치는 선거 2주 전 대비 13.3% 하락했고, 멕시코 주식시장의 IPC지수는 지난달 고점 대비 11.2% 빠졌다. 멕시코에 대거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멕시코 정치와 경제의 향방에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향후 멕시코 정세가 어떻게 움직일지 전망해보고자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현 대통령이 개헌을 강행하는 경우다. 멕시코에서는 새로 구성된 의회가 9월 1일 개원하고, 신임 대통령은 10월 1일 취임한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자신이 지난 2월 발의한 개헌안의 9월 상정, 상·하원 통과를 호언하고 있다. 상원에서 부족한 의석은 야당 의원의 이탈표나 당적 변경 등 최후 수단이라도 동원할 태세다.

개헌안의 핵심은 전임 대통령 때 개방한 에너지산업을 국가 주도로 되돌려놓고 관련 기구와 독립기관을 해체하며, 법원 판사와 선거관리위원을 국민투표로 선출한다는 것이다. 그간 최저임금 116% 인상 등 선심정책을 펴온 덕에 확보한 압도적인 지지를 토대로 반민주, 반기업적 헌법 아래에서 MORENA 장기 집권 시대를 열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그는 “시장보다 나라가 더 중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시장 혼란을 외면한다. 헌법 개정안이 양원을 통과해 32개 주의회로 보내져 17개 주 이상이 가결하면 확정된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번 선거에서 여권 연합은 22개 주 의회를 장악했다.

또 다른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셰인바움 당선자는 당선 이후 지금까지 민주주의 수호, 미국과의 협조, 친기업적 입장을 수시로 밝히는가 하면 유세 때와는 달리 개헌 언급을 피하는 등 시장의 반응을 살피는 언행을 보이고 있다. 환경공학 박사인 그는 멕시코시장 재임 시절 기업들과 많은 협업을 했고, 유세 중 미국의 니어쇼링정책에 편승해 연간 5% 경제성장을 달성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당선자가 이임하는 대통령과 차별된 입장을 취한다면, 9월 상·하원 처리는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멕시코, 캐나다와의 3국 간 자유무역협정(USMCA)의 6년 차(2026년) 평가 및 갱신 결정을 앞두고 지난달부터 통상장관협의회를 통해 분쟁해결 사례 등을 점검하며 멕시코를 압박하는 한편 미국 의회는 미·멕시코 의원포럼을 통한 의견 조정을 준비하고 있다. 즉, 중국과의 무역 및 기술 전쟁을 위해 북미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려는 미국으로서는 멕시코 투자환경 악화를 막고, 필요할 경우 USMCA 상실 위협 카드를 쓸 것으로 보인다.

셰인바움 당선자가 독자 행보를 취할지,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