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상영에 인파 몰리자 유리창까지 깨졌다…80년대 '에로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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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종 연구원 "에로방화는 3S정책 산물 아닌 진일보한 장르물"
신간 '에로방화의 은밀한 매력' 등 영진위 총서 4권 발간 1980년대는 대중 엔터테인먼트 문화가 급격히 발전한 시기였다.
박정희 정권 후 등장한 전두환 정부가 반정부 활동을 무마하기 위해 이른바 3S 정책을 내놓으면서다.
3S는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섹스(Sex)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정부가 주도한 대표적 우민화 정책으로 손꼽힌다.
이 같은 3S 정책에 힘입어 스크린과 섹스의 교집합인 에로방화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인엽 감독이 연출한 '애마부인'이 그 시발점이었다.
1982년 국내 첫 심야 영화로 상영한 '애마부인'은 개봉 당일 수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당시 상영관이었던 서울극장 유리창이 여러 장 깨지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4개월 동안 장기간 흥행하면서 당시로선 기록적이었던 31만명의 관객을 모으는 빅히트를 쳤다.
'애마부인'의 성공 이래로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3·이두용), '무릎과 무릎 사이'(1984·이장호), '깊고 푸른밤'(1985·배창호), '티켓'(1986·임권택), '변강쇠'(1986·엄종선), '물의 나라'(1989·유영진) 등 이른바 '야한 영화'들이 충무로에서 우후죽순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에로영화의 시조새 격인 '애마부인'은 1995년까지 12편의 시리즈가 제작되며 에로방화 붐을 이끌었다.
영화학자 이윤종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전임연구원은 3S 정책에 힘입어 에로방화가 성행했다는 주류 평론계의 시각에 반발한다.
그는 최근 출간된 '에로방화의 은밀한 매력'을 통해 1980년대 에로방화가 정부 정책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사회적으로 진일보한 장르영화라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에로방화는 영화 한 편당 적게는 세 장면에서, 많게는 일곱 장면 사이의 야한 장면들을 포함하는 1980년대 대중영화를 뜻한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아 성인만 볼 수 있었다.
성적 노출을 포함하지만 기이하게도 성적인 것을 기피하거나 은폐하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한국적 특수성'을 보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야한 영화라는 '외피'를 안고 있었지만, 이들 영화는 신군부의 발전주의, 특히 경제 성장제일주의 기조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빈부격차, 물질만능주의, 비윤리적 성공지상주의, 자본의 인간소외 등이 단골 소재였다.
가령 고영남의 '사랑의 노예'(1982)는 성공지상주의를, '티켓'은 남성중심주의 사회에 대한 복수를, '물의 나라' '불의 나라'(1989·장길수)는 물불을 안 가리고 위로 올라가려는 남성들을 조명하며 자본에 포획된 세태를 풍자했다.
일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기도 했다.
예컨대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씨받이' 같은 에로 사극은 지배 계급의 허위의식과 피지배계급에 대한 착취를 비판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이었다.
또한 가부장제하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부각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과 접점을 형성하기도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다만 "정권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만 에로티시즘을 표방"했다는 점에서, "대중영화로서 1980년대 진보적인 정치적 무의식을 담은 장르영화로 발전했으나 급진성을 누락했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라고 지적한다.
이 같은 진보와 퇴행을 오가는 "변증법적 운동" 속에서 "진보적 양면성"이 드러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연구원은 "3S 정책 덕택이 아니라 이 진보적 양면성 덕택에 에로방화가 당대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부연한다.
책은 영화진흥위원회 50주년 기념총서로 기획돼 출간됐다.
'소리를 보다: 영화 제작 현장 녹음의 모든 것'(강봉성), '근현대 한국영화의 마인드스케이프'(오영숙), '시네필의 시대'(이선주)도 총서에 묶여 함께 나왔다.
▲ 에로방화의 은밀한 매력 = 두두. 456쪽.
▲ 소리를 보다 = 두두. 272쪽.
▲ 근현대 한국영화의 마인드스케이프 = 두두. 272쪽.
▲ 시네필의 시대 = 두두. 336쪽.
/연합뉴스
신간 '에로방화의 은밀한 매력' 등 영진위 총서 4권 발간 1980년대는 대중 엔터테인먼트 문화가 급격히 발전한 시기였다.
박정희 정권 후 등장한 전두환 정부가 반정부 활동을 무마하기 위해 이른바 3S 정책을 내놓으면서다.
3S는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섹스(Sex)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정부가 주도한 대표적 우민화 정책으로 손꼽힌다.
이 같은 3S 정책에 힘입어 스크린과 섹스의 교집합인 에로방화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인엽 감독이 연출한 '애마부인'이 그 시발점이었다.
1982년 국내 첫 심야 영화로 상영한 '애마부인'은 개봉 당일 수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당시 상영관이었던 서울극장 유리창이 여러 장 깨지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4개월 동안 장기간 흥행하면서 당시로선 기록적이었던 31만명의 관객을 모으는 빅히트를 쳤다.
'애마부인'의 성공 이래로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3·이두용), '무릎과 무릎 사이'(1984·이장호), '깊고 푸른밤'(1985·배창호), '티켓'(1986·임권택), '변강쇠'(1986·엄종선), '물의 나라'(1989·유영진) 등 이른바 '야한 영화'들이 충무로에서 우후죽순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에로영화의 시조새 격인 '애마부인'은 1995년까지 12편의 시리즈가 제작되며 에로방화 붐을 이끌었다.
영화학자 이윤종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전임연구원은 3S 정책에 힘입어 에로방화가 성행했다는 주류 평론계의 시각에 반발한다.
그는 최근 출간된 '에로방화의 은밀한 매력'을 통해 1980년대 에로방화가 정부 정책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사회적으로 진일보한 장르영화라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에로방화는 영화 한 편당 적게는 세 장면에서, 많게는 일곱 장면 사이의 야한 장면들을 포함하는 1980년대 대중영화를 뜻한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아 성인만 볼 수 있었다.
성적 노출을 포함하지만 기이하게도 성적인 것을 기피하거나 은폐하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한국적 특수성'을 보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야한 영화라는 '외피'를 안고 있었지만, 이들 영화는 신군부의 발전주의, 특히 경제 성장제일주의 기조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빈부격차, 물질만능주의, 비윤리적 성공지상주의, 자본의 인간소외 등이 단골 소재였다.
가령 고영남의 '사랑의 노예'(1982)는 성공지상주의를, '티켓'은 남성중심주의 사회에 대한 복수를, '물의 나라' '불의 나라'(1989·장길수)는 물불을 안 가리고 위로 올라가려는 남성들을 조명하며 자본에 포획된 세태를 풍자했다.
일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기도 했다.
예컨대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씨받이' 같은 에로 사극은 지배 계급의 허위의식과 피지배계급에 대한 착취를 비판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이었다.
또한 가부장제하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부각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과 접점을 형성하기도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다만 "정권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만 에로티시즘을 표방"했다는 점에서, "대중영화로서 1980년대 진보적인 정치적 무의식을 담은 장르영화로 발전했으나 급진성을 누락했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라고 지적한다.
이 같은 진보와 퇴행을 오가는 "변증법적 운동" 속에서 "진보적 양면성"이 드러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연구원은 "3S 정책 덕택이 아니라 이 진보적 양면성 덕택에 에로방화가 당대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부연한다.
책은 영화진흥위원회 50주년 기념총서로 기획돼 출간됐다.
'소리를 보다: 영화 제작 현장 녹음의 모든 것'(강봉성), '근현대 한국영화의 마인드스케이프'(오영숙), '시네필의 시대'(이선주)도 총서에 묶여 함께 나왔다.
▲ 에로방화의 은밀한 매력 = 두두. 456쪽.
▲ 소리를 보다 = 두두. 272쪽.
▲ 근현대 한국영화의 마인드스케이프 = 두두. 272쪽.
▲ 시네필의 시대 = 두두. 33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