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기업의 인수합병(M&A) 등 경영상 판단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3~7일 국내 상장사 153곳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66.1%가 ‘상법 개정이 기업의 M&A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12일 발표했다.

대한상의는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 해석하면 기업이 겪을 곤란 중 하나로 M&A 전략을 꼽았다. 중장기 관점에서 반드시 해야 할 M&A지만 단기적 시각에선 불필요한 자금 지출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실패한 M&A에 대한 법적인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법적 분쟁으로 가지 않더라도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외부 세력이 경영에 개입할 빌미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행동주의펀드가 이사회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한국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소송가액이 회사의 방어 범위를 넘어설 경우 사외이사들은 경영진의 M&A 추진에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대한상의 설문에서 어느 정도 감지된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시 M&A에 미칠 영향을 객관식으로 물어본 결과 ‘M&A 계획을 재검토하겠다’는 의견이 44.4%, ‘철회 또는 취소하겠다’는 응답이 8.5%에 달했다.

기업들은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이사의 법적 책임 등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도입 시 주주대표소송과 배임죄 처벌 등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61.3%였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형법상 배임죄 등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사의 책임까지 가중되면 모험적인 투자 등을 꺼릴 수 있다”고 했다.

‘회사와 주주의 이익 구분 불가’(61.3%), ‘주주 간 이견 시 의사결정 어려움’(59.7%) 등 실무적 혼선을 우려하는 기업도 많았다.

상장사들은 기업가치 ‘밸류업’을 위해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등 규제보다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제도와 문화 정착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