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눈폭탄에 피해 속출…유례없는 설경에 관광지 '북적'
[르포] 계절 잊은 5월의 폭설…제철 산나물 피해 눈덩이
"한창 수확을 해야 할 판에 눈 폭탄을 맞았으니 믿어지지 않네요.

"
16일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안반데기 마을에서 만난 김봉래(58) 씨는 산나물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백두대간을 따라 이어진 고지대 산간마을은 하룻밤 새 지난 계절로 되돌아갔다.

유례없이 내린 눈은 누구에게는 색다른 절경이지만, 누구에게는 모진 오월로 기억된다.

안반데기 마을 주민에게 눈은 일상이지만 5월 폭설은 당혹스럽다.

주민들은 갈맷빛 산을 지운 새하얀 5월 풍경에 "무슨 조화냐"며 아연실색했다.

겨울철에는 눈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언덕길을 오가던 베테랑 주민들이지만, 5월 햇살에 펼쳐진 설경이 믿어지지 않는 듯 했다.

[르포] 계절 잊은 5월의 폭설…제철 산나물 피해 눈덩이
국내 최대 고랭지 채소단지인 안반데기는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 남쪽 고산지대다.

고루포기산(1천238m)과 옥녀봉(1천146m) 사이 남북 능선에 있는 이 마을의 해발은 해발 1천100m로 드넓은 배추밭이 약 200만㎡에 이른다.

봄철 산나물로 푸름이 가득할 시기이지만, 때아닌 눈 이불을 덮어썼다.

멀리 서쪽의 발왕산(1천459m)도 짙은 운무의 하늘과 새하얀 봉우리가 구분되지 않았다.

푸르름이 짙어가던 고랭지 밭은 지난 15일부터 이날 새벽까지 내린 눈이 약 15cm가 쌓여 눈밭으로 변했다.

수확이 한창인 눈개승마와 곰취 줄기가 무거운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군데군데 꺾였다.

절기상 입하(立夏)를 지나 여름에 들어섰는데, 생뚱맞은 폭설에 애써 기른 산나물 수확을 포기해야 할 처지가 됐다.

[르포] 계절 잊은 5월의 폭설…제철 산나물 피해 눈덩이
김씨는 7년 전 이곳에 정착해 3만4천㎡ 고랭지 밭에 눈개승마와 곰취 등 산나물을 재배 중이다.

하지만, 때아닌 폭설에 산나물 줄기가 꺾인 것은 물론 설상가상 냉해까지 피해는 눈덩이가 됐다.

김씨는 "다년생 산나물이라 내년까지 피해가 이어진다"며 "3년 전 5월 초에 눈이 내린 적이 있지만, 수확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산나물 피해뿐 아니라 다음 달 10일 전후해 심을 고랭지 배추밭 토사 피해도 적지 않다.

비탈진 밭에 올여름 농사를 위해 흙을 고르는 작업을 해놓았지만, 눈이 녹으면서 토사가 흘러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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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랑방에서 만난 주민 김모(69)씨는 "폭우가 내리면 경사면을 따라 계속 흘러가지만, 눈은 흙 속으로 파고 들어가 무거워지면서 한꺼번에 무너지게 된다"며 "30여가구 가운데 일부 주민이 이런 피해를 봐 황당하다"고 말했다.

토사 피해를 본 권모(57)씨는 "전날 밤 불안한 마음에 계속 밭으로 나가면서 노심초사했는데 새벽에 내린 많은 눈으로 배추밭 곳곳에 토사가 흘러내리는 피해가 났다"며 "24년 농사를 지으면서 20년 전쯤 5월에 눈이 내린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피해가 나기는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눈은 이날 오전 사이 구름 사이 떠오른 햇살에 녹아내렸지만, 푸른 농작물은 냉기에 푸석푸석 생기를 잃은 듯 해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르포] 계절 잊은 5월의 폭설…제철 산나물 피해 눈덩이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백두대간 고원지대는 한겨울 스키 시즌이 돌아온 듯 설국이었다.

[르포] 계절 잊은 5월의 폭설…제철 산나물 피해 눈덩이
기온이 1.2도까지 내려간 평창 발왕산 정상에는 계절을 뒤바뀐 이색 추억을 만들려는 관광객이 몰렸다.

태백산 주변 백두대간 두문동재 고갯길 등에도 한겨울이 연출돼 주민과 관광객이 때아닌 겨울 정취를 즐겼다.

기상청은 전날 오후 7시부터 해발고도 1천m 이상의 높은 산지에 10㎝ 이상의 눈이 쌓였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