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소개령에 연료·식품값 폭등…"당나귀 수레 1만7천원"
국제사회, 라파 공격계획 철회 요구…"소개령은 더 큰 전쟁·기아의 전조"
장대비 속 당나귀에 손수레…생지옥 내몰린 가자주민 피란행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후의 피란처인 라파에 끝내 소개령을 내리고 공습을 퍼부으면서 가까스로 천막촌으로 피신했던 주민들이 다시 고통스러운 피란길에 올랐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CNN 등에 따르면 라파 피란민 사이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가자전쟁 휴전 협상이 진전을 보인다는 소식에 한때 희망이 감돌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6일(현지시간) 라파에 공습을 감행하고, 지상군 투입을 통한 군사작전을 예고하며 약 11만명의 라파 주민과 피란민에게 소개령을 내리자 분위기는 곧바로 공포로 바뀌었다.

라파에는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째 이어진 전쟁으로 봉쇄와 폭격이 끊이지 않으면서 북부에서 떠밀려온 주민 140만명 정도가 천막촌 등에서 간신히 거처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이 지정한 피란처인 라파 인근 해안마을 마와시로 향하는 피란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의 현장 요원들은 이날 시간당 200명 정도가 주요 탈출 경로를 통해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장대비 속 당나귀에 손수레…생지옥 내몰린 가자주민 피란행렬
피란민들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텐트를 철거했고, 도로는 가재도구 등 짐이 잔뜩 실린 트럭과 승용차 등이 쏟아져나오면서 갈수록 혼잡해지고 있다.

당나귀가 끄는 수레가 목격됐고, 매트리스 등 짐을 실은 자전거를 끌고 가는 난민도 있었다.

아내와 함께 짐을 잔뜩 실은 손수레를 밀고 가던 모하메드 가넴씨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더 이상 집이 없다.

마와시로 가고 있다.

이스라엘에 의해 안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성과 아이들을 죽인다"고 했다.

이번이 4번째 피란길이라는 한 남성은 "뉴세이라트, 칸유니스, 라파에 이어 이제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CNN에 말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파이살 바르바크씨는 "미지의 세계로 가고 있다.

끔찍한 기분이며, 우리를 이렇게 만든 이들도 같이 걸어갔으면 좋겠다"며 "59년간 내 삶과 기억, 아이들의 사진, 집 계약서까지 모두 남겨두고 피난을 왔다"고 했다.

일부 피란민들은 라파에 계속 머무를지, 교전이 벌어지는 지역을 통과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피란길에 오를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라파에 머물던 니달 쿠하일(29) 씨는 현재 소개령이 적용되지 않은 지역에 머물고 있지만, 그의 가족은 여전히 불안에 떨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고 전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떠나야 한다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갈 곳을 찾을 수 있을까? 텐트를 세울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을까"라며 "어떤 사람은 '일찌감치 여기서 나가자'고 하고, 누구는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한다"고 말했다.

장대비 속 당나귀에 손수레…생지옥 내몰린 가자주민 피란행렬
설상가상으로 소개령 이후 연료와 음식값이 치솟았다.

연료는 리터당 8달러(1만800원)에서 12달러(1만6천원)로, 기본 식료품인 설탕은 킬로그램당 3달러에서 10달러로 급등했다.

이스라엘군이 최소 10마일(16㎞) 밖으로 이동하라고 경고한 가운데 외곽으로 이동하는 데 택시는 260달러(35만원) 이상, 소형 삼륜 트럭을 이용하면 그 절반이 소요된다고 한다.

당나귀가 끄는 수레는 13달러(1만7천원) 정도면 이용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녀 11명과 함께 온 무사 라마단 알-바합사(55)씨는 "전쟁으로 무일푼이 됐는데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대피하고 있다"며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에 라파 침공 계획을 비난하며 철회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조셉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스라엘의 소개령은 최악의 상황, 더 큰 전쟁과 기아의 전조"라고 적었다.

그는 이스라엘에 지상 공격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면서 "EU는 국제사회와 함께 그러한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행동할 수 있고 행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30㎢가 넘는 지역에서의 대규모 대피는 안전하게 수행하기가 불가능하다"며 "가자지구의 4분의 3 이상이 대피 명령을 받고 있으며, 전면적인 공격으로 확대되면 라파의 주민과 피란민들은 한계점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