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 후 3개월간 물가상승 71%…월급이 물가 못 따라가
피폐해진 경제에 대한 불만에도 밀레이 지지율은 50% 안팎 유지
아르헨, 잇단 개혁조치에도…"물가는 유럽, 월급은 아프리카"
"현재 아르헨티나는 물가는 유럽, 월급은 아프리카 수준이다"
아르헨티나 야당 소속인 에밀리아노 에스트라다 의원이 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의 현 경제 상황에 대해 평가한 말이다.

작년 12월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가 출범한 이후 110여일간 과감한 경제 개혁 조치를 잇따라 발표했지만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는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에스트라다 의원은 이어 "에너지 가격과 다른 가격들을 달러화하면(국제 평균가격까지 올린다는 뜻) 시민들 지갑은 이를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현지 언론 이프로페시올날은 전했다.

이에 앞서 또 다른 현지 언론 페르필도 지난달 31일 '밀레이(대통령)의 아르헨티나는 물가는 유럽 수준이고 월급은 아시아 수준: 생필품 사는 데 런던보다 비싼 부에노스아이레스'란 제하의 기사에서 고공 행진하는 물가를 월급 인상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르헨티나 시민의 월급은 영국의 10분의 1 수준인데, 생필품 가격은 거의 같거나 30% 정도 높다고 이 매체는 지적했다.

엄밀히 말하면 언론에서 인용해 보도하는 현재 아르헨티나 국민의 평균 월급 수준도 정확하지는 않다.

정부 공식 통계 자료가 3개월마다 발표되기는 하지만 연간 276%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이전에 발표된 월급 통계를 적용하면 실제로는 턱없이 적은 수치가 나오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과 미국 CNN, 스페인 언론 등 외신이 비교한 아르헨티나, 미국, 스페인의 기본 생필품 가격을 보면 우유, 식빵, 국수, 요구르트, 쌀 등 여러 품목에서 아르헨티나 가격이 월등히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스페인, 아르헨티나의 최저임금을 비교하면 아르헨티나는 두 나라의 거의 5분의 1 수준에서 10분의 1 수준이라면서 아르헨티나 물가는 유럽 수준인데 월급은 비교할 수 없이 낮다고 현지 언론들은 지적했다.

지난 12월 극우 성향 정치인인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취임 후, 2월 말까지 3개월간 누적 물가상승률은 71%를 기록했다.

수십년간 고물가에 시달려온 아르헨티나의 전임 정권들은 만성적인 고물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물가안정 프로그램인 '공정한 가격 프로그램'을 통해 인위적으로 물가 상승을 억제해왔다.

이와 달리 극단적 자유시장 신봉자인 밀레이 대통령은 수요와 공급이 결정하는 시장가격은 언제나 공정하다면서 취임 직후 '공정한 가격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또 기업이 가격을 올려도 소비자가 구매하지 않으면 가격은 떨어질 것이라는 신념으로 정부의 시장개입은 없다고 천명했다.

그 결과 밀레이 대통령 취임 110일이 지나면서 물가는 오히려 이전 정부보다 더 가파르게 올랐다.

반면에 아르헨티나 페소화에 대한 과감한 평가절하를 거치면서 달러 환율이 안정세를 보였고, 그로 인해 아르헨티나는 달러를 기준으로 할 때 불과 수개월 전까지 물가가 싼 국가였으나 갑자기 몇 달 사이에 물가가 비싼 국가가 됐다.

전임 정부의 인플레이션은 정부 재정 적자를 이유로 무분별하게 통화량을 늘렸기 때문이라는 밀레이 정부의 설명이 무색할 정도다.

결국 밀레이 대통령과 카푸토 경제장관까지 나서서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으로 식료품 수입을 발표했다.

고물가에 월급 인상률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국민들의 구매력은 크게 떨어졌고, 이는 소비 급감으로 이어져 제약품, 의류, 자동차 등의 판매가 30% 줄어드는 등 극심한 불경기를 우려해야 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유리 지갑'인 월급쟁이뿐만 아니라 소상공인들도 전기세·가스세 보조금 중단에 이어 가격 급등으로 인한 소비 급락까지 겹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소규모 상업용 전기세는 최대 600% 이상 급등하면서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밀레이 정부는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정책은 아직 단 한 개도 발표하지 않았다.

소규모 편의점을 운영하는 50대 호르헤 씨는 연합뉴스에 "물가만큼은 아니지만 직원 월급이 매달 오르고, 월세도 오르는 등 모든 게 오르는데 매상은 불경기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좋아진다는데 어제까지 버틸지는 모르겠다"라고 푸념했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국민들의 비판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취임 넉달째인 밀레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저 43%에서 최고 53%에 이르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