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레터> 스틸컷 ©네이버 영화
영화 <러브레터> 스틸컷 ©네이버 영화
‘이 추억은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 이와이 슌지 감독 영화 러브레터 중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항상 안고 살아가는 감정이 있다. 그 모습은 다양하지만 우리는 그 감정을 ‘그리움’이라고 부른다. 그리움은 사물, 공기, 바람, 날씨, 음식, 음악 등 우리 주변의 모든 것과 함께하고 그 모든 것은 우리의 가슴속 깊은 곳의 그리움을 끄집어 내주는 매개체이다.
경상도식 정구지 지짐
경상도식 정구지 지짐
어렸을 적 할머니 집은 작은 암자를 품고 있는 시골 길가의 옛날집이었다. 작은 한옥집이었는데 온 가족이 모여 있던 방 앞에는 작은 툇마루가, 툇마루에서 앉으면 작은 중정이 보이고 중정 한가운데는 석류나무가 한그루 서있었다. 옆을 돌아서 주방에는 아궁이가 두 개가 있었고 그 중 한 아궁이 위에서는 밥이 익는 향기가 다른 한 아궁이 위에서는 할머니가 손으로 눌러가며 부치고 있는 정구지 지짐(부추전)이 차르르륵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가 부치는 정구지 지짐은 아빠랑 나의 최애 할머니 음식 중 하나였다. 정구지가 빽빽하고 그러면서도 얇고 바삭한 지짐이 입안에 들어오면 입안을 향긋하게 휘감고 퍼지는 방아의 향이 너무나도 행복했다.(경남지방에서는 주로 방아를 넣어 먹는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2년 뒤 유학생 시절에 결혼을 하였다. 어느 날 한국에 와서 처갓집에서 지내는데 그날 저녁 장인어르신과 한 잔씩 들이키고 있을 때 장모님께서는 정구지 지짐을 해주셨다. 너무나도 익숙한 모양새의 지짐을 한입 먹는 순간 퍼지는 은은한 방아의 향에 그만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히려 장모님과 장인어르신은 내가 방아를 먹을 줄 아는지 궁금해 하셨는데 나에게 그 방아가 들어갔던 오랜만의 정구지 지짐은 나를 매우 아꼈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음식이었다. ‘맛’은 언제까지나 기억속에서 그리고 몸 속에서 변하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아있고 그 그리움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음악도 음식 못지않게 우리의 몸속에 그리움으로 녹아든다.
할머니의 부추지짐이 그리운 날, 드보르작의 이 가곡을 듣는다
세월이 지나 아이가 태어나고 이제 나도 부모가 되어 내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어렸을적 8살 터울 나는 동생을 재울 때 엄마가 항상 불러준 노래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자랐고 엄마는 내가 아기 때도 그 노래를 불러줬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다. 성인이 되며 잊고 살던 그 노래가 자연스럽게 딸아이에게 불러주고 있는 내 모습에 그 노래를 불러주었을 엄마의 젊은 시절이 그려지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엄마를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조금 큰 딸아이는 내손을 잡아다가 자기 가슴 위에 올리고 이야기한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수아~ 해줘”.
우리들의 어머니가 해준 노래, 자장가는 우리의 기억에는 없지만 우리의 몸속과 가슴속에 온전히 살아있다. 가장 첫 번째로 저장된 그리움이다. 그리고 가장 첫 번째로 배운 노래이다.
할머니의 부추지짐이 그리운 날, 드보르작의 이 가곡을 듣는다
내가 좋아하고 즐겨 연주하는 작곡가 드보르작은 세 아이를 잃고 한 가곡을 작곡한다. <내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 주신 노래> 정작 드보르작이 노래를 가르쳐 줘야 할 아이들은 세상을 떠났다. 드보르작의 그리움 속 어머니는 슬픔에 잠긴 아들을 안고서 말없이 함께 울어준다. 드보르작의 기억 저편 속 슬픈 그리움이 치유가 되었고 용기가 되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그리움이지만 그리움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항상 안고 살아간다.

/지휘자 지중배

늙으신 어머니가 내게 이 노래 가르쳐 주실 때
두 눈에 눈물이 곱게 맺혔었네.

이제 내 어린 아이들에게 이 노래 들려주려니
내 그을린 두 뺨 위로 한없이 눈물 흘러내리네.

안토닌 드보르작 [집시의 노래 중 네 번째 곡 ‘내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 주신 노래’]



메조 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제나가 부른 '내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 주신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