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억압에도 꺾이지 않은 여성들 이야기…소설 '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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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소설가 이매자 작품…영어판 출간 11년 만에 한국어판 나와
한국전쟁 배경으로 펼쳐지는 성장소설…작가의 유년시절 짙게 담겨 재미 소설가 이매자(매자 리 디바인·81) 씨가 한국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여성들의 수난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음천'이 미국에서 출간된 지 11년 만에 한국어판이 나왔다.
장편 '음천'(문학세계사)은 한국전쟁의 와중에 가부장적 전통 가치와 질서가 붕괴하면서 여성들이 사회참여와 권리의식에 눈떠가는 과정을 어린 소녀의 눈으로 그린 성장소설이다.
결혼 15년차 부부인 음천과 귀용은 서로를 여전히 아끼고 사랑하며 입양한 딸 미나를 애지중지 키우지만,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결국 귀용은 아들을 낳아줄 첩 수양을 집에 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음천이 절망에 빠지면서 완벽해 보이던 가족에는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여주인공 음천을 비롯해 귀용, 미나, 수양 등 주요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인물 개개인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 내며 겪는 내적 갈등과 사랑과 증오, 집착, 질투 등 복잡다기한 감정들을 섬세한 필치로 그렸다.
소설엔 오랜 가부장적 전통과 동족상잔의 참화 속에서 당시 한국 여성들이 남아 선호와 성차별 등 사회적인 억압에 순종하거나 저항하는 모습, 또 사회참여와 여성의 권리 등에 서서히 눈 떠가는 과정 등이 핍진하게 펼쳐진다.
'음천'은 이매자 작가의 장편 데뷔작으로 2013년 미국에서 '하늘의 음성'(The Voices of Heaven)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소리 음'(音)에 '하늘 천'(天) 자를 합친 '음천'이라는 주인공 이름을 영어로 풀었다.
2013년 한미 양국에서 영어로 먼저 이 작품을 발표한 작가는 오랜 기간 한국어로 다시 고쳐 쓰면서 "한국어의 눈부신 아름다움과 그 언어의 고유하고 매혹적인 신비"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오랜 시간을 한인들과 접촉도 별로 하지 않은 채 살았다는 작가는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했지만, 소설은 마치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인 것처럼 문장과 표현이 자연스럽고 생생하다.
수양이 귀용의 첩으로 들어가기 직전 수양의 엄마는 딸에게 이렇게 타이른다.
"첩이 돼서 한이라고? 팔자 한탄이라고? 그래. 그렇고말고. 그래도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마음을 돌려야 한다.
'내 꼴이 상 위에 올라앉은 푹 삶아진 돼지머리 꼴 된 지 오래다.
그러니 뭐가 더 날 푹푹 삶겠느냐.'"(12쪽)
그런가 하면, 남편 귀용이 첩 수양을 들이기 전 음천은 가슴에 불이라도 난 것 같이 타들어 가는 심정을 주체할 수 없다.
모든 게 아들을 못 낳은 자기 탓인 것만 같다.
"소문대로 된다면 공산당이 남한으로 쳐들어와 풍비박산을 낼 게 오늘내일이었다.
서울 거리에 피홍수가 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이게 무슨 짓인가.
첩 얻는 남자가 하나둘인가.
그걸 가지고 울고 짜고 있지 않은가.
뭐? 가슴이 탄다고? 아들 못난 게 누구 잘못인데?" 16쪽).
이렇게 등장인물의 관점을 옮겨가면서 서술하는 방식 덕에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상반된 입장에 선 인물들의 감정의 결이 더 구체적으로 전달되는 것도 매력이다.
이 작품엔 일곱 살에 한국 전쟁을 겪은 작가의 실제 삶의 이야기가 짙게 담겼다.
쌍둥이로 태어난 뒤 입양됐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입양 사실을 몰랐던 작가는 겨울에 신발을 부뚜막에 올려놓고 학교 갈 때 신겨주던 양어머니의 사랑을 여전히 기억한다고 한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음천'은 제 유년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너는 왜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으로 내 삶이 시작된 때였습니다.
(중략) 이 모든 몸 안팎에서 지워지지 않는 멍을 지우려고 이 소설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모두의 멍이 서서히 녹아 없어져 숨을 시원히 쉬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이매자는 1966년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 후 미 세인트루이스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대학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이때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온 미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 후 1970년 다시 도미해 미주리주에 거주하고 있다.
자신의 첫 소설인 '음천'으로 그는 미국의 서평지 포어워드 리뷰즈가 선정하는 '2013 올해의 출판상'의 다문화와 군사·전쟁 부문에서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받고, 소프 멘 문학상 우수상, 미국 독립출판도서상을 수상했다.
문학세계사. 328쪽. /연합뉴스
한국전쟁 배경으로 펼쳐지는 성장소설…작가의 유년시절 짙게 담겨 재미 소설가 이매자(매자 리 디바인·81) 씨가 한국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여성들의 수난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음천'이 미국에서 출간된 지 11년 만에 한국어판이 나왔다.
장편 '음천'(문학세계사)은 한국전쟁의 와중에 가부장적 전통 가치와 질서가 붕괴하면서 여성들이 사회참여와 권리의식에 눈떠가는 과정을 어린 소녀의 눈으로 그린 성장소설이다.
결혼 15년차 부부인 음천과 귀용은 서로를 여전히 아끼고 사랑하며 입양한 딸 미나를 애지중지 키우지만,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결국 귀용은 아들을 낳아줄 첩 수양을 집에 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음천이 절망에 빠지면서 완벽해 보이던 가족에는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여주인공 음천을 비롯해 귀용, 미나, 수양 등 주요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인물 개개인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 내며 겪는 내적 갈등과 사랑과 증오, 집착, 질투 등 복잡다기한 감정들을 섬세한 필치로 그렸다.
소설엔 오랜 가부장적 전통과 동족상잔의 참화 속에서 당시 한국 여성들이 남아 선호와 성차별 등 사회적인 억압에 순종하거나 저항하는 모습, 또 사회참여와 여성의 권리 등에 서서히 눈 떠가는 과정 등이 핍진하게 펼쳐진다.
'음천'은 이매자 작가의 장편 데뷔작으로 2013년 미국에서 '하늘의 음성'(The Voices of Heaven)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소리 음'(音)에 '하늘 천'(天) 자를 합친 '음천'이라는 주인공 이름을 영어로 풀었다.
2013년 한미 양국에서 영어로 먼저 이 작품을 발표한 작가는 오랜 기간 한국어로 다시 고쳐 쓰면서 "한국어의 눈부신 아름다움과 그 언어의 고유하고 매혹적인 신비"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오랜 시간을 한인들과 접촉도 별로 하지 않은 채 살았다는 작가는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했지만, 소설은 마치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인 것처럼 문장과 표현이 자연스럽고 생생하다.
수양이 귀용의 첩으로 들어가기 직전 수양의 엄마는 딸에게 이렇게 타이른다.
"첩이 돼서 한이라고? 팔자 한탄이라고? 그래. 그렇고말고. 그래도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마음을 돌려야 한다.
'내 꼴이 상 위에 올라앉은 푹 삶아진 돼지머리 꼴 된 지 오래다.
그러니 뭐가 더 날 푹푹 삶겠느냐.'"(12쪽)
그런가 하면, 남편 귀용이 첩 수양을 들이기 전 음천은 가슴에 불이라도 난 것 같이 타들어 가는 심정을 주체할 수 없다.
모든 게 아들을 못 낳은 자기 탓인 것만 같다.
"소문대로 된다면 공산당이 남한으로 쳐들어와 풍비박산을 낼 게 오늘내일이었다.
서울 거리에 피홍수가 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이게 무슨 짓인가.
첩 얻는 남자가 하나둘인가.
그걸 가지고 울고 짜고 있지 않은가.
뭐? 가슴이 탄다고? 아들 못난 게 누구 잘못인데?" 16쪽).
이렇게 등장인물의 관점을 옮겨가면서 서술하는 방식 덕에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상반된 입장에 선 인물들의 감정의 결이 더 구체적으로 전달되는 것도 매력이다.
이 작품엔 일곱 살에 한국 전쟁을 겪은 작가의 실제 삶의 이야기가 짙게 담겼다.
쌍둥이로 태어난 뒤 입양됐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입양 사실을 몰랐던 작가는 겨울에 신발을 부뚜막에 올려놓고 학교 갈 때 신겨주던 양어머니의 사랑을 여전히 기억한다고 한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음천'은 제 유년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너는 왜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으로 내 삶이 시작된 때였습니다.
(중략) 이 모든 몸 안팎에서 지워지지 않는 멍을 지우려고 이 소설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모두의 멍이 서서히 녹아 없어져 숨을 시원히 쉬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이매자는 1966년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 후 미 세인트루이스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대학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이때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온 미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 후 1970년 다시 도미해 미주리주에 거주하고 있다.
자신의 첫 소설인 '음천'으로 그는 미국의 서평지 포어워드 리뷰즈가 선정하는 '2013 올해의 출판상'의 다문화와 군사·전쟁 부문에서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받고, 소프 멘 문학상 우수상, 미국 독립출판도서상을 수상했다.
문학세계사. 32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