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 조건
일본을 벤치마킹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10년 전 최경환 경제팀을 연상시킨다. 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4년 7월 취임과 함께 “이대로 가다간 한국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겪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한국판 아베노믹스, 이른바 ‘초이노믹스’를 폈다. 대표적인 게 기업소득환류세제였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이 가계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배당이나 투자를 유도하는 세제 지원책이다.

일본에선 아베 신조 총리가 경제 성장 전략으로 제시한 세 개의 화살(금융·재정·성장)이 구체화하던 시기다. 아베 내각의 경제 책사인 이토 구니오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세 번째 화살인 성장 전략을 자본시장에서 찾았다. 그해 8월 ‘주주권을 강화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의 130쪽짜리 ‘이토 보고서’를 발표했다. 돌이켜보면 일본 증시 부활의 신호탄이 쏘아진 순간이다.

10년 준비한 아베노믹스 화살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이토 보고서를 교과서로 삼아 중장기적으로 증시 부양책을 가동했다. 단기 주가 부양에 매몰되지 않고 일본 경제 활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프로젝트로 삼았다. 철저하게 시장을 활용해 주주 권익을 높였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아베 총리는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일본 진출을 공개적으로 독려하기도 했다. 이런 중장기 프로젝트는 지난해 3월 일본거래소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하의 저평가 기업을 대상으로 개선안을 요구하면서 결실을 봤다. 기업들은 엔저를 타고 사상 최대 이익을 얻자 주주 환원 규모를 대폭 늘렸다. 닛케이지수가 잃어버린 30년 불황을 딛고 사상 최고가를 달리고 있는 배경이다. 10년 전 수준인 2000선에서 묶여 있는 코스피지수와 대조적이다. 초이노믹스가 아베노믹스와 달리 중장기적인 성장을 제대로 유도하지 못하고 파편화한 영향이 크다.

일본의 증시 부양책을 모방한 밸류업 프로그램은 급조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부가 1월 초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도 관련 내용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 새해 미국 일본과 달리 한국 증시가 유독 뒷걸음질 치던 상황에서 불쑥 등장한 게 밸류업 프로그램이다. 한 달 전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다.

역발상 초강력 대책 나올까

시장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초이노믹스의 재탕으로 총선용이라는 시각이 많다. 오는 26일 정책이 발표되면 실망 매물이 쏟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저PBR 종목이 정책 기대로 급등하자 개인투자자가 지난 한 달여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10조원 가까이 차익을 실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쉽고 갑작스럽게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겠냐는 냉소가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역발상의 시각도 의외로 많다. 정부도 이제 시장 무서운 줄 안다는 것이다. 총선을 넘어 3년 뒤 대선을 바라보고 깜짝 대책을 쏟아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패스트 팔로(fast follow) 전략이 성공하려면 시장에 진정성을 증명해야 한다.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에 따른 법인세 감면, 배당 분리과세 정도로는 어림없다. 주가를 짓누르는 상속·증여세의 구조적 문제를 어떤 식으로라도 건드려야 한다. 기업에는 경영권 보호 장치를 마련해주는 대신 이사회가 주주를 위해 운영될 수 있도록 지배구조도 파격적으로 손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