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배우 정선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배우 정선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인터뷰 장소에 도착하자 테이블 위에 흑임자 인절미가 놓여있었다. 제8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이프덴'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뮤지컬배우 정선아는 감사의 의미로 준비한 거라며 환하게 웃었다. 평소 좋아하는 떡집에서 직접 주문한 거라며 "정말 맛있으니 꼭 드시라"고 살가운 멘트를 던졌다.

최근 서울 모처에서 만난 정선아는 "수상을 기대하긴 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감개무량하다"면서 "관객분들이 '정선아 옛날 같지 않네?'라는 말을 하면 어떡하나 싶었다. 그럼 너무 상처받을 것 같았다. 이렇게 빨리 복귀하는 게 맞을까 싶기도 하고, 대사와 노래가 많은 작품인데 머리가 나빠진 것 같았다. 참 두렵고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늘 당차고 자신감 넘치던 그녀에게서 걱정이라는 단어가 나온 게 다소 생소했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본업으로 복귀하는 건 정선아에게도 숱한 고민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2022년 딸을 낳은 정선아는 그해 바로 뮤지컬 '이프덴'으로 복귀했다. 이후 '멤피스', 그리고 현재 '드라큘라'까지 잇달아 출연하며 변함없는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시원시원한 발성에 단단한 무대 위 에너지까지 흐트러짐이 없지만, 그는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계속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연 때 참여했던 '드라큘라'를 10년 만에 다시 선택한 것 또한 도전이라고 했다. 정선아는 "10년 동안 많은 관객이 '드라큘라'를 사랑하지 않았느냐. 내가 초연은 함께 했지만 그간 바뀐 것도 있어서 누가 되진 않을까, 다시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드라큘라' 정선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드라큘라' 정선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드라큘라'에서 정선아는 드라큘라 백작이 400년 동안 사랑한 여인 미나 머레이 역을 맡았다. 드라큘라는 미나가 옛 아내의 환생임을 직감하고 구애에 나서고, 약혼자가 있는 미나는 이성을 붙잡으려 노력하지만 끝내 드라큘라의 강렬한 이끌림에 마음을 빼앗긴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미나에 대해 정선아는 "초연 때는 '미나가 여기서 왜 이럴까?'라면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제는 미나의 마음이 다 이해되더라. 예전에는 조나단을 버리고 가는 게 너무 나쁜 사람인 것 같았다. 배우로서 그걸 표현하는 데 있어서 내 안의 자아끼리 싸웠다. 그런데 지금은 미나를 알 것 같고,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겠더라. 그런 마음으로 공연하니까 재밌다. 10년 전에는 재미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재밌다"며 웃었다.

결혼과 출산을 겪고 난 뒤 만나니 이 작품의 매력을 더 잘 알게 됐다고 했다. 정선아는 "결혼하니까 전생에 대한, 판타지적인 부분으로 들어가기가 쉽더라. 예전에는 잘 안 들어가졌는데 나의 연기적인 부족함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젠 미나와 드라큘라의 전생 얘기가 내게도 크게 다가온다. 이게 관객분들이 좋아하시는 판타지이지 않냐. 그 느낌을 더 잘 살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드라큘라'를 향해 "나의 판타지 속에 꼭꼭 숨겨둔 나의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실제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떨까.

먼저 김준수에 대해 "무대에서 믿음이 가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배우"라고 했다. 이어 "김준수 배우랑 공연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게 프로페셔널하게 장점을 잘 알고 있다는 거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많이 기대곤 한다"면서 "'드라큘라'도 모든 시즌을 한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무대 위에서 내일이 없이 다 쏟아내지 않냐. 갈수록 업그레이드되는 '드라큘라'를 보면서 자기는 평생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사랑이 크다"고 전했다.

신성록과는 이번에 처음 만났다면서 "작품을 많이 봐서 기대가 컸고, '드라큘라'에 정말 잘 어울리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화 속 주인공 같은 드라큘라다. 관객분들이 너무 행복해할 것 같다. 옆에 있는 파트너인 내가 봐도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사람이다. 디테일도 대단하더라. 어떻게 하면 멋있는지 잘 알더라. 관객들의 마음을 콩닥거리게 할 줄 아는 멋진 배우였다"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합이 잘 맞아서 다른 작품 할 때도 파트너로 같이 공연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진짜 열심히 연습하는 배우다. 노래 연습뿐만 아니라 대사도 많이 맞춰보자고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노력파"라고 덧붙였다.

전동석을 향해서는 "'모차르트'에서 봤던 친구 동석이가 이렇게 멋진 드라큘라가 되고, 최고의 멋짐을 뽐내고 있더라. 대견하고 서로 기특해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이어 "작품 속 디테일을 많이 살리는 배우다. 노인에서 젊은 드라큘라로 바뀔 때의 목소리나 몸동작을 확연히 다르게 하는 게 인상적이더라. 같이 연기할 때 이입이 되더라. 너무 멋있다"고 칭찬했다.
뮤지컬배우 정선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배우 정선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이프덴', '멤피스'에 이어 '드라큘라'까지 정선아는 "인생 2막을 잘 열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게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연차가 차고, 아이를 낳았어도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22년째 뮤지컬을 하고 있어요. 연차가 좀 됐잖아요. 뮤지컬에서 쭉 주인공을 하면서 여배우로서 자리를 잡았는데 아이를 낳고 복귀도 했죠. 저를 보며 따라오는 후배들에게 운동하고 레슨받으며 노력하면 열심히 하면 그 전보다 기량이 좋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그들도 '그래.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갖게 하고 싶었어요."

물론 이전과는 조금 색다른 정선아도 만나볼 수 있다. 변화라기보다는 '업그레이드'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정선아는 "예전에는 '위키드' 속 글린다처럼 블링블링한 게 좋았다. 그때는 '난 글린다야'라고 생각했다. '아이다' 암네리스 같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평범해진 것 같다. 오히려 '이프덴'의 엘리자베스 같다. 예전과는 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는 작품 선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정선아는 "음악이 좋으면 마음이 끌리게 돼 있다. 예전에는 내가 하려는 캐릭터의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 아리아가 얼마나 예쁜지, 내가 불렀을 때 관객들이 노래가 좋다고 생각할지가 선택의 첫 번째였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역할이어도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역할이나 작품이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나쁘지 않아요. 물론 편하게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지만 안 가본 길, 해보고 싶었는데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을 가보고 싶어요. '어? 정선아 저런 걸 할 수 있나?'라고 얘기하실지언정 항상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복귀에 성공하고 자신감이 생겨서 '멤피스'도 하고, '드라큘라' 미나도 했거든요. 앞으로도 자신감이 반 이상일 것 같아요. 제가 저를 사랑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지 않으면 누가 해주겠어요. 계속 도전하고 싶습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