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자의 심장을 뒤쫓다보면…나의 심장박동이 낯설어진다
우리는 ‘기억’을 어디에 간직하는가.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뇌가 아니라 심장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열아홉 살 시몽 랭브르가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 판정을 받고 그의 심장이 다른 사람에게 이식되기까지 24시간을 따라간다.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소설을 1인극으로 각색했다.

주인공과 화자가 계속 돌아가며 바뀌는 군상극이다. 뇌사에 빠진 시몽과 그의 죽음에 절망하는 어머니, 이식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그리고 심장을 기증받는 50대 여인 등 ‘시몽의 심장’이 만나는 16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흡입력 있는 연출이 강점이다. 감각적인 조명과 음향 디자인이 등장인물들의 감각을 관객에게 이입해준다.

강렬한 연출은 공연 시작부터 객석을 압도한다. 심장박동 소리가 극장에 울리며 막이 오른다. 심장이 뛰는 박자에 맞춰 조명이 하나둘 꺼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앉아 심장박동을 듣고 있으면 누군가의 몸속 장기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눈이 어둠에 적응한 것인지, 조명이 켜진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아주 천천히 무대가 밝아진다. 배우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파도 소리가 들리면서 무대 뒤를 가득 채운 화면에 바다가 보인다.

무대는 단출하다. 텅 빈 무대에 배우 한 명과 책상이 전부다. 관객이 직접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재료만 주어진다. 그럼에도 생동감 넘치는 소리와 연출 덕분에 관객은 각자의 머릿속에서 장면을 그리며 연극을 감상하게 된다.

삶과 죽음의 대비를 경험하게 하는 작품이다. 불과 몇 시간 전 서핑보드 위에서 파도를 가르던 시몽의 건강한 육체는 차가운 병원 수술실에 아무런 의식 없이 누워있다.

심장을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태도에서도 그 대비가 두드러진다. 시몽이 여자친구와 사랑에 빠진 순간 터질 듯이 뛰던 그의 심장은 어떤 의사에게는 모니터 속 숫자에 불과하다. 심장을 기증받는 환자에게는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이고 장기 운송 차량 운전사에게는 빨리 배달해야 하는 택배다.

이 대비를 통해 관객은 자신의 생명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인식하지 않아도 뛰고 있는 심장이 새삼스럽게 느껴지고 몸의 감각들이 낯설어지는 작품이다. 구체적인 메시지를 던지기보다는 관객이 각자의 신체와 생명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보는’ 연극보다 ‘느끼는’ 연극에 가깝다. 배우 한 명의 연기로 장면과 시점이 계속 전환돼 집중력이 필요하다. 다만 장면마다 느껴지는 감각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심장박동이 낯설어지는 신선한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연극은 서울 국립정동극장에서 오는 3월 10일까지 열린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