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벤처 혼란 부르는 중기부의 '관료 화법'
“그래서 감액 비율이 80%라는 겁니까, 20%라는 겁니까?”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15일 충남 천안에서 연 연구개발(R&D)비 감액 기업 대상 설명회. 벤처기업 대표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정부의 R&D 효율화 기조에 따라 협약 변경을 요청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중기부의 설명이 끝난 뒤에도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기업 관계자는 드물었다. “예산 반영 비율이 80%”라는 정부 관계자의 답변 직후 다른 스타트업 대표가 손을 들었다. “그럼 80%를 못 받는다는 거죠?”

중기부가 ‘감액’이라는 단어를 배제하고 ‘예산 반영’이라는 말로 대체하는 바람에 벌어진 촌극이다. 이번 협약 변경의 골자는 중기부 소관 24개 R&D 과제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의 올해 사업비를 최소 20%에서 최대 50% 깎는 것이다. 중기부는 ‘20% 삭감’ 대신 ‘80% 예산 반영’이라는 표현을 택했다. 삭감이나 감액이라는 단어가 불러올 벤처업계의 반발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협약 변경의 핵심인 ‘감액’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빼면서 설명은 완전히 꼬였다. 똑같은 질문이 몇 번이나 반복됐고, 그때마다 정부 관계자는 답변을 빙빙 돌렸다. 두 시간 걸려 이날 설명회를 찾았다는 충남 지역의 한 벤처기업 대표는 “사람이 아니라 AI(인공지능) 챗봇이 답변하는 것 같았다”며 “그냥 유튜브로 찍어서 배포하지 그랬냐”고 꼬집었다.

16~17일 서울과 수도권에서 이어진 설명회에서도 상황은 반복됐다. “작년에 받아야 했던 사업비인데 아직 못 받은 것도 삭감 대상이냐”는 기업 관계자의 질문에 정부 관계자는 “2023년도 예산 부족분은 2024년도 예산 기준 내에서 집행한다”고 아리송하게 답했다. 아직 지급 안 된 지난해 사업비도 삭감 대상이라는 답을 한참 돌려 말한 것이다.

두루뭉술한 설명에 기업 관계자들의 궁금증은 끝까지 풀리지 못했다. 설명회 종료 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래서 작년 건 받을 수 있다는 뜻이냐”고 동료에게 묻는 사람도 보였다. 한 스타트업 재무담당자는 “당연한 질문에도 회피하기 급급한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좀비 과제’를 막고 R&D를 효율화하겠다는 정부 방향 자체는 바람직스럽다. 불필요하게 쓰인 예산이 있다면 과감한 삭감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정책 변경 대상자에게 정확하고 충실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당장의 비난이 두려워 말 돌리기만 일삼아선 곤란하다. 현시점에서 중기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관료 화법’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정확한 설명과 안내로 업계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