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17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 방향에 불만을 나타내며 민간위원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부서울청사에 있는 저출산고령위 사무실.  /임대철 기자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17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 방향에 불만을 나타내며 민간위원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부서울청사에 있는 저출산고령위 사무실. /임대철 기자
우리나라의 인구정책 ‘컨트롤타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초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주요 부처 장관을 다 모아놨지만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지도, 조율하지도 못했다. 이런 가운데 민간위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정책 방향에 불만을 드러내며 사퇴 의사를 밝히자 저출산고령위의 정책 동력이 더욱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출산율이 반등할 정도의 효과적인 대책이 나오려면 ‘식물’이나 다름없는 저출산고령위의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장관 모였는데 정책 조율 안 돼

17일 한국경제신문이 인구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긴급 조사한 결과 7명의 전문가는 저출산고령위의 가장 큰 문제로 ‘예산과 정책 기능 부재’를 꼽았다. ‘공무원들의 전문성 부족’(1명)과 ‘위원장인 대통령의 무관심’(1명)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응답으로, 예산 권한이 없는 점이 부실한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005년 인구정책을 총괄하는 범정부 협의체로 출범한 저출산고령위는 구성만 보면 나무랄 게 없다. 대통령이 위원장이다. 저출산고령위를 끌고 나가는 부위원장은 장관급, 상임위원은 차관급이다. 예산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 장관,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 장관 등 양대 부총리가 모두 저출산고령위에 참여한다. 대통령과 장관, 각 분야의 민간 전문가까지 20여 명이 머리를 맞대 인구정책을 설계하고 조율한다는 것이 정부가 내세우는 저출산고령위 역할이다.

하지만 저출산고령위의 컨트롤타워 기능은 유명무실한 수준이다. 예산에 관한 아무런 권한이 없다. 저출산고령위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각 부처에 전달하고 부처 의견을 수합하긴 하지만 그뿐이다. 익명을 요구한 저출산고령위 민간위원은 “예산이 어찌 될지도 모르는데 저출산고령위 혼자 대책을 내놓을 수도 없고 부처들은 각자 다른 일이 더 급하니 ‘어렵다’고만 한다”며 “획기적인 대책도 돈이 있어야 나온다”고 토로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차라리 기재부 예산실이 책임지고 정책을 추진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파견 공무원으로 이뤄진 소규모 조직으론 제대로 된 정책을 개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저출산고령위 실무를 맡은 사무국에는 30명 내외의 소수 인원이 근무한다. 이마저도 각 부처에서 파견돼 1년~1년 반 정도 지나면 원래 부처로 돌아간다. 또 다른 저출산고령위 민간위원은 “지금의 저출산고령위는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전문성과 사명감이 생길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참석 회의 정기화해야”

저출산고령위가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으려면 위원장인 대통령이 좀 더 의지를 갖고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저출산고령위 회의를 주재했지만 그 이후 1년 가까이 대통령 없이 회의가 열렸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고 한 방향으로 나가도록 이끌 수 있는 것은 결국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가 정기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협의체로서 저출산고령위 기능과 역량을 본질적인 차원에서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출산고령위 민간위원인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제부터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가 결합한 저출산 대책을 특정 부처가 몰아서 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저출산고령위가 아젠다를 세팅하면 각 부처가 적시에 같은 위기감과 긴급성을 가지고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환/허세민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