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점심께 한산한 신진시장 보신탕 골목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15일 점심께 한산한 신진시장 보신탕 골목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개고기 금지된 거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식사하러 오신 것 아니면 할 말 없습니다."

15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신진시장 보신탕 골목에서 만난 한 개고깃집 사장은 "법으로 끝내겠다는 걸 뭐 어떡하냐"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이 가게 밖에 진열돼 있던 삶은 개고기는 온데간데없고, 모두 가게 안쪽에 들여놓은 상태였다. 이 일대 다른 식당 주인도 굳은 표정으로 점심 장사를 준비 중이었고, 내부에는 식사 중인 손님 1~2명이 전부였다.

이 일대에서 개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시민들도 변화를 실감하고 있었다. 60대 윤모 씨는 "일 때문에 신진시장을 자주 오니 한 달에 한 번씩 보신탕을 즐겨 먹었었는데, 최근엔 안 먹은 지 두어 달 됐다"며 "개고기가 하도 떠들썩하니까 괜히 눈치 보여서 (보신탕 가게에) 잘 안 가게 된다"고 털어놨다. 보신탕 가게에서 식사하고 나온 60대 이모 씨도 "몸이 피곤할 때마다 보신탕을 찾는데, 이제는 먹을 때도 유쾌하지 않다"고 푸념했다.

서울 보신탕집 거리는 폐업을 고민하는 이들과 업종 전환을 준비하는 이들로 '카오스'(혼돈) 상태였다.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증식에 관한 특별법인 '개 식용 금지법'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손님들의 발길이 완전히 뚝 끊겼기 때문이다.

곳곳에 '임대' 붙은 '3대 개 시장'…개고기 숨기는 상인들

개고기를 두던 진열대가 텅 비어있는 모습. /사진=김세린 기자
개고기를 두던 진열대가 텅 비어있는 모습. /사진=김세린 기자
이날 찾은 경기 성남시 모란 전통시장 개고기거리는 신진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모란시장은 한때 대구 칠성 개 시장, 부산 구포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 시장'으로 불려온 곳이다. 현재 이곳에서 개고기를 판매하는 가게는 건강원과 일반 음식점 등 20여곳에 불과하다. 원래는 40여곳에 달했으나 반토막 난 것이다. 이날 장사를 하는 가게는 5곳 남짓, 점심시간을 맞았음에도 매장 내부는 한산했다.

가게마다 큰 글씨로 적어낸 '보신탕' 등 단어를 지운 모습도 여러 곳 포착됐다. '탕'이라는 글자만 남겨두고 영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곳을 지나던 시민들 사이에서는 "예전엔 가게마다 앞에 개고기를 진열해놨는데 지금은 텅텅 비어있다"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활력을 잃어버린 시장 거리에는 '임대'가 적힌 채 빈 식당만 남은 건물이 곳곳에 보였다.

인근의 한 건강원 원장은 "평소 개고기를 먹던 사람들은 '우리들한텐 전통음식인데 왜 먹는 음식 가지고 그러냐'고 난리"라며 "감춰놓고 팔던 사람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개고기를 주로 팔던 가게가 여러 곳 폐업한 상태고, 남아있는 상인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적절한 보상 좀" vs "신중한 검토 필요"

이날 만난 개고기 가게 업주들은 40~50년간 이어온 생계 터전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면서도, 대책으로 "흑염소 거리로 확장하고 싶다"는 반응도 내놨다. 적절한 보상을 받으면 장사를 아예 그만둘 의향이 있다고 밝힌 상인들도 있었다.

신진시장의 한 보신탕 가게 직원은 "사장님은 '개고기 식당만 40년 해서 다른 음식은커녕 된장찌개도 못 끓이겠다'는 입장"이라며 "보신탕 가게가 생업인 사람들은 당장 먹고살 길 찾아야 하는데, 폐업을 시킬 거면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한 달 전에는 동물 단체의 신고를 받아 냉장고에 붙어 있던 가게 간판과 모두 뗐다"면서 "장사를 이어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15일 찾은 경기 성남 모란시장 개고기 거리가 한산한 모습. /사진=김세린 기자
15일 찾은 경기 성남 모란시장 개고기 거리가 한산한 모습. /사진=김세린 기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업계의 전업·폐업 등 준비 기간을 고려해 3년간 처벌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법안에는 관할 행정당국이 이와 관련한 업자의 폐업·전업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유예기간 이후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사육·증식·유통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지자체와의 충돌을 우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앞서 성남시와 모란가축시장 상인회는 2016년 12월 '모란시장 환경정비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시장 내 개 진열·도축 시설을 철거한 바 있다. 이에 이어 시는 이번 법안 통과를 계기로 5억을 들여 만든 이동식 도축장도 오는 3월 2일부로 폐쇄한다. 이에 업주들은 지자체의 실질적 대책이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지원 계획은 있으나, 보상 의무화에는 선을 긋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전·폐업이 불가피한 관련 업계 등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합리적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며, 이와 관련하여 국회 및 육견단체 등과도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면서도 "보상 의무화는 과도한 측면이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일부 시장에서는 아예 시장 차원에서 '업종 변경'을 추진하는 분위기다. 김용북 모란 전통시장 상인회 회장은 "우리가 이제 팔 수 있는 것 중엔 닭, 오리, 염소뿐이다. 흑염소 판매는 현재 위법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거리를 깔끔하게 조성해서 흑염소 거리로 만들고 싶은 게 상인들의 입장"이라며 "업종 변경을 위한 실질적 도움이 제공되면 우리는 어떻게든 바꿔나갈 의지가 있다. 흑염소 거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도축장을 구축해 생계유지를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수의사회 "개들 일괄적 도살" 우려도 제기

수의사업계에서는 이번 법안 통과를 반기는 한편, 이미 식용으로 길러진 개들이 일괄적으로 도살되는 등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우려도 제기하고 나섰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 회장은 "우리나라의 경제 여건이나 문화 수준을 고려했을 때는 진작 개 식용 금지가 법제화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이라도 (개 식용이) 금지된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련 업계에 종사해 오신 분들에 대한 전업 문제나 보상에 대해선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식용으로 길러졌던 개들이 일괄적으로 도살될 우려도 있다"며 "지방자치단체와 동물보호단체 등이 함께 식용견 구조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세린·김영리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