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작품을 해체한 韓 아티스트..."디지털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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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작가 겸 디렉터 인터뷰
2023년 한국 미술계의 주인공은 김환기였다. 삼성문화재단이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인 그의 일생을 아우르는 대규모 전시를 열면서 1974년 세상을 떠난 김환기를 50년만에 소환해서다. 9월 국내 최대 미술축제 '프리즈 서울'에 참가한 LG전자가 김환기의 작품을 재해석한 디지털 아트를 선보인 것도 한몫했다.
'김환기 열풍'에 힘을 보탠 사람 중에는 영국을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겸 기획자 김대환(33·영어 이름 제이슨 킴)도 있다. 서울대에서 동양화·디자인을 배운 뒤 영국왕립예술대학교(Royal College of Art & Design)를 거친 그가 2023년 선보인 대표작 중 하나가 김환기의 그림을 조각조각 해체하는 파격적인 작품이어서다.
김대환은 직접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인 동시에 굵직한 전시에 참여한 기획자다. 2019년 한국에서 인기를 끈 반 고흐 디지털 몰입형 전시와 같은 해 LG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활용한 아트 디스플레이 전시 '더 블랙 페이퍼'를 총괄 기획했다. 2021년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 런던'에선 데미안 허스트의 대체불가능토큰(NFT) 작품과 대표작을 아우르는 전시를 열기도 했다.
동양화를 전공한 한국인이 어떻게 '디지털 아트'로 유럽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29일 서면으로 만난 김대환은 "지난 수백년의 미술 역사를 되짚어보면 '신을 위한 예술'에서 '인간을 위한 예술'로, 인상파 회화에서 바나나 하나를 전시하는 개념미술로 진화했다"며 "디지털 역시 이런 역사의 발전의 최신 버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디지털 아트는 물리적·지리적 한계를 넘어 예술가의 철학을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 작가와의 일문일답. ▷디지털 아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8년 LG 디스플레이 본사와 미팅을 했을 때였습니다. 대학생 때 펴낸 책으로 본사에 초청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한 LG 디스플레이 임원 분이 '어떻게 하면 우리 OLED TV의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건 TV가 아니라, 빈 종이처럼 여러 가지 예술 작품을 담을 수 있는 '블랙 캔버스'라고.
이런 아이디어는 곧 2019년 LG의 '더 블랙 페이퍼' 전시로 이어졌습니다. OLED TV가 갖고 있는 선명한 색채 구현 기능을 통해 작품의 재료와 표현 기법을 생생하게 선보였죠. 이 전시를 시작으로 데미안 허스트, 쿠사마 야요이, 뱅크시, 이우환 등 세계적인 작가들과도 함께 협업하게 됐습니다."
▷세계적 아트페어인 런던 프리즈와도 함께 디지털 전시를 열었는데요.
"프리즈와의 협업 역시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했습니다. 2021년 영국 왕립예술대학교 학생이었을 때 코로나19가 한창 유행이었는데, 한국에 갈 수 없다 보니 밤만 되면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곤 했죠. 그 때 '차가운 스크린이 오히려 인간의 온기를 전달해줄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프리즈 본사에 찾아가 디지털 스크린의 중요성에 대한 발표를 했고, '디지털 파트너십'이란 새로운 분야를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데미안 허스트의 첫 NFT 전시를 총괄 기획·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직접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이기도 한데,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환기 작품을 디지털로 만들 땐 어떤 요소를 고려했나요.
"김환기 화백이 생전 말했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란 구절에서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얼핏 슬퍼보이지만, 제게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서도 우리는 다시 만날거야'라는 희망찬 구절로도 다가왔어요.
이를 바탕으로 김환기 화백의 작품 원본 속 모든 픽셀이 거대한 세상에서 떠돌면서 춤을 추고, 무한히 반복하는 컴퓨터 명령어를 만들었습니다. 김환기 화백의 철학적 가치와 원작의 형태를 지키면서도 그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서울대에서 배운 동양화가 글로벌 디지털 프로젝트를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동양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림과 철학을 함께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양에선 그림뿐 아니라, 시와 글도 뛰어나야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받았죠. 이런 전통은 현대 예술과도 닮아있습니다.
영국 왕립대학에 다닐 때 제가 자주 들었던 질문은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는지'가 아니라, '당신의 신화(mythology)는 무엇인지'였습니다. 방법은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작가가 머릿속에 담고 있는 근본적인 가치와 철학이 더 중요하다는 거죠. 이런 점에서 디지털 아트 역시 제한된 화폭을 넘어 작가의 철학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동양화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구상 중이신 프로젝트가 있나요.
"제 좌우명을 한 단어로 하면 'BESIGN'이에요. '존재 그 자체'를 뜻하는 'BE'와 '시그니처'를 뜻하는 'SIGN'을 합친 단어죠. 사람들에게 본질적인 존재의 의미를 전달하는 디자인과 기획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년엔 유명 아티스트의 철학과 메시지를 디지털로 재해석해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다양한 국제적 아트페어에서 선보일 계획입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김환기 열풍'에 힘을 보탠 사람 중에는 영국을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겸 기획자 김대환(33·영어 이름 제이슨 킴)도 있다. 서울대에서 동양화·디자인을 배운 뒤 영국왕립예술대학교(Royal College of Art & Design)를 거친 그가 2023년 선보인 대표작 중 하나가 김환기의 그림을 조각조각 해체하는 파격적인 작품이어서다.
김대환은 직접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인 동시에 굵직한 전시에 참여한 기획자다. 2019년 한국에서 인기를 끈 반 고흐 디지털 몰입형 전시와 같은 해 LG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활용한 아트 디스플레이 전시 '더 블랙 페이퍼'를 총괄 기획했다. 2021년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 런던'에선 데미안 허스트의 대체불가능토큰(NFT) 작품과 대표작을 아우르는 전시를 열기도 했다.
동양화를 전공한 한국인이 어떻게 '디지털 아트'로 유럽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29일 서면으로 만난 김대환은 "지난 수백년의 미술 역사를 되짚어보면 '신을 위한 예술'에서 '인간을 위한 예술'로, 인상파 회화에서 바나나 하나를 전시하는 개념미술로 진화했다"며 "디지털 역시 이런 역사의 발전의 최신 버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디지털 아트는 물리적·지리적 한계를 넘어 예술가의 철학을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 작가와의 일문일답. ▷디지털 아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8년 LG 디스플레이 본사와 미팅을 했을 때였습니다. 대학생 때 펴낸 책으로 본사에 초청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한 LG 디스플레이 임원 분이 '어떻게 하면 우리 OLED TV의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건 TV가 아니라, 빈 종이처럼 여러 가지 예술 작품을 담을 수 있는 '블랙 캔버스'라고.
이런 아이디어는 곧 2019년 LG의 '더 블랙 페이퍼' 전시로 이어졌습니다. OLED TV가 갖고 있는 선명한 색채 구현 기능을 통해 작품의 재료와 표현 기법을 생생하게 선보였죠. 이 전시를 시작으로 데미안 허스트, 쿠사마 야요이, 뱅크시, 이우환 등 세계적인 작가들과도 함께 협업하게 됐습니다."
▷세계적 아트페어인 런던 프리즈와도 함께 디지털 전시를 열었는데요.
"프리즈와의 협업 역시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했습니다. 2021년 영국 왕립예술대학교 학생이었을 때 코로나19가 한창 유행이었는데, 한국에 갈 수 없다 보니 밤만 되면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곤 했죠. 그 때 '차가운 스크린이 오히려 인간의 온기를 전달해줄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프리즈 본사에 찾아가 디지털 스크린의 중요성에 대한 발표를 했고, '디지털 파트너십'이란 새로운 분야를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데미안 허스트의 첫 NFT 전시를 총괄 기획·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직접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이기도 한데,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환기 작품을 디지털로 만들 땐 어떤 요소를 고려했나요.
"김환기 화백이 생전 말했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란 구절에서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얼핏 슬퍼보이지만, 제게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서도 우리는 다시 만날거야'라는 희망찬 구절로도 다가왔어요.
이를 바탕으로 김환기 화백의 작품 원본 속 모든 픽셀이 거대한 세상에서 떠돌면서 춤을 추고, 무한히 반복하는 컴퓨터 명령어를 만들었습니다. 김환기 화백의 철학적 가치와 원작의 형태를 지키면서도 그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서울대에서 배운 동양화가 글로벌 디지털 프로젝트를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동양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림과 철학을 함께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양에선 그림뿐 아니라, 시와 글도 뛰어나야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받았죠. 이런 전통은 현대 예술과도 닮아있습니다.
영국 왕립대학에 다닐 때 제가 자주 들었던 질문은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는지'가 아니라, '당신의 신화(mythology)는 무엇인지'였습니다. 방법은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작가가 머릿속에 담고 있는 근본적인 가치와 철학이 더 중요하다는 거죠. 이런 점에서 디지털 아트 역시 제한된 화폭을 넘어 작가의 철학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동양화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구상 중이신 프로젝트가 있나요.
"제 좌우명을 한 단어로 하면 'BESIGN'이에요. '존재 그 자체'를 뜻하는 'BE'와 '시그니처'를 뜻하는 'SIGN'을 합친 단어죠. 사람들에게 본질적인 존재의 의미를 전달하는 디자인과 기획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년엔 유명 아티스트의 철학과 메시지를 디지털로 재해석해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다양한 국제적 아트페어에서 선보일 계획입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