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마음에도 응급처치가 필요합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감염병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안겨줬다. 최근 대한적십자사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의 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해 재난 심리상담 건수는 1만7268건으로 전년보다 67% 늘었다. 이 중 코로나19 등 감염병 관련 상담 내용이 절반 이상인 1만710건을 차지했다. 과거에는 재난이나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물질적 구호가 우선시됐으나 갈수록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해지는 재난 유형으로 인해 재난 경험자의 심리 지원도 강조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2016년부터 행정안전부와 함께 전국 17개 시·도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를 운영하며 재난 경험자의 심리 회복에 앞장서 왔다. 국내뿐 아니라 2021년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를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실시한 바 있다. 루마니아에 체류 중인 우크라이나 피란민과 튀르키예 지진 이재민을 위해 현지 적십자·적신월사와 협력해 심리 지원을 제공 중이다.

지난 10월 지진 피해를 본 주민과 시리아 난민 아이들을 대상으로 심리사회적 지지 활동을 하는 튀르키예적신월사 봉사센터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전쟁으로 가족과 삶의 터전을 떠나 국경을 넘은 아이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덜어주려는 많은 이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본 아이들의 천진하고 선한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물질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상처까지 보듬을 수 있는 심리적 지원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재난과 같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 직후에 제공되는 심리적 응급처치(PFA: psychological first aid)는 재난 경험자의 초기 고통을 경감하고 장기적 기능 회복을 도모하는 활동이다. 여기엔 보기, 듣기, 연결하기의 세 가지 행동 원칙이 있다. ‘보기’ 단계에서는 정보를 파악하고 피해자의 필요사항과 정서적인 반응을 살피고 ‘듣기’에서는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고 상호 해결책을 모색한다. 마지막 ‘연결’에서는 대상자가 보다 나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연계 작업을 한다. 일련의 활동은 재난 경험자의 일상 회복을 돕고 심리적인 반응을 안정화할 기회를 제공한다.

심리 회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반복적이고 중장기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인도적 지원기관 간 상임위원회(IASC: Inter-Agency Standing Committee)에서 발간한 ‘재난 시 정신건강 및 심리·사회적 지원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재난 시 심리 지원은 약물치료 없이 지원해야 하며 모든 구호요원은 기본적인 심리적 응급처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태원 참사 이후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진 것처럼 심리적 응급처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 역시 필요한 때다. 정부·학계·의료계 등이 합심해 재난 심리회복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강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