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아버지를 이기려면 열정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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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아버지가 47세 생신을 맞았다. 군에서 휴가받아 집에 온 다음 날이다. 아침 생신상을 받은 아버지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만큼 살았구나”라며 탄식했다. 상을 물린 아버지가 처음으로 밝힌 가족사다. 내 고조부는 96세, 증조부는 79세로 장수했다. 두 분과 달리 조부는 47세로 단명했다. 내 조부는 고조부가 81세, 증조부가 41세 때 태어났다.
남들이 고손자를 얻을 나이에 손자를 본 고조부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젖 뗀 뒤부터는 방을 같이 쓰고 밥 먹을 땐 겸상했다. 고조부는 손자를 서당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쳤다. 친구를 사귀거나 바깥출입도 막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케 했다. 그랬던 고조부는 내 조부가 14살 때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한 훈육을 계속했다. 소학, 사서삼경(四書三經)이 아니라 당신이 좋아하는 글자만 비판적으로 가르쳤다. ‘내 후손들은 벼슬길에 나서지 말라’는 집안 유훈 때문에 과거에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는 “그러니 네 조부는 동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만큼 할 줄 아는 게 오직 학문뿐이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네 조부가 형님과 내게 당신의 할아버지가 가르친 방법대로 살아가며 필요한 글자를 모두 직접 가르쳤다. 우물이 떠오르면 관련된 모든 문장을 일일이 써가며 가르쳤다. 당신이 싫어하는 글자는 가르치지 않았을뿐더러 쓰지도 못하게 했다”라고 술회했다. 아버지는 이어 “네 조부는 군에서 다리를 다친 나한테는 집을 떠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라며 더 오래 사시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해준 그 말씀이 나를 살렸다. 내가 아버지 덕에 이만큼 살았다”라며 “아버지가 살아온 시간만큼 살았다. 이제 아버지의 빚을 갚았다. 지금부터의 삶은 아버지가 사시지 못한 날들이다. 아버지 몫까지 살아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라고 47세 생신의 의미를 새겼다.
그날 아버지는 조부가 자주 인용한 말을 가르쳐줬다. 고사성어 ‘불초[不肖]’다. ‘닮지 않았다’라는 뜻이다. ‘불초 소생’이라고 자주 썼지만, 의미는 그날 처음 알았다.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낮출 때 쓰는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편(萬章篇) 상(上)에 나온다.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丹舟)는 불초하고, 순(舜)임금의 아들 역시 불초하며, 순임금이 요 임금을 도운 것과 우 임금이 순임금을 도운 것은 오래되었으며, 요와 순임금이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은혜를 베푸셨다.” 요임금과 순임금의 두 분 아들이 똑똑하지 못해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요임금은 아들 단주가 현명하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에 비록 자식이 억울해할지라도 백성에게는 이익이 되므로 순에 물려준 것이다.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단지 친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요와 순임금의 성군(聖君)다운 깊은 뜻이 담긴 고사성어다.
아버지는 “네 조부는 네 증조부의 학문을 높이 샀다. 원래 싫어하셔서 비록 저작은 남기지 않았지만 따라가기 어려웠다고 하셨다. 얼굴이나 행동은 닮았을지 몰라도 학문은 불초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조부의 유언도 처음 말씀했다. 유언은 ‘열정(熱情)’이다. 아버지는 “네 조부가 불초하지 않으려면 열정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열정은 오래지 않아 식는 게 흠이다’라며 식지 않게 간직하라고 유언하셨다”라고 했다. 불초를 ‘아버지를 이기는 일’이라고 해석한 아버지는 “네 할아버지 열정은 끓어올랐지만 끝내 펴보지는 못한 불행한 열정이었다”라며 아쉬워했다. 아버지는 “열정은 자신에게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깊은 관심과 몰입을 뜻한다. 열정은 타고난 기질도 있어야지만, 애써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정을 식지 않게 하는 불씨는 동기다. 동기는 올바른 가치관이나 뚜렷한 신념에서 나온다. 꺼지지 않게 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걸 배우고, 그걸 스스로 조금씩 성취해가는 것이다. 이루고 싶은 목표를 먼저 세우고 달성하기까지의 과정에 온통 집중해야 한다. 자칫 과정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열정이 꺼지거나 식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성취감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런 요소들이 결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열정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지만, 열정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열정은 노력, 실력, 기회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해 성공을 만들어낸다. 성공하려면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다함 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손주가 제 아버지만 못하다는 말을 듣지 않게 하려면 서둘러 일러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 열정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남들이 고손자를 얻을 나이에 손자를 본 고조부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젖 뗀 뒤부터는 방을 같이 쓰고 밥 먹을 땐 겸상했다. 고조부는 손자를 서당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쳤다. 친구를 사귀거나 바깥출입도 막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케 했다. 그랬던 고조부는 내 조부가 14살 때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한 훈육을 계속했다. 소학, 사서삼경(四書三經)이 아니라 당신이 좋아하는 글자만 비판적으로 가르쳤다. ‘내 후손들은 벼슬길에 나서지 말라’는 집안 유훈 때문에 과거에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는 “그러니 네 조부는 동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만큼 할 줄 아는 게 오직 학문뿐이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네 조부가 형님과 내게 당신의 할아버지가 가르친 방법대로 살아가며 필요한 글자를 모두 직접 가르쳤다. 우물이 떠오르면 관련된 모든 문장을 일일이 써가며 가르쳤다. 당신이 싫어하는 글자는 가르치지 않았을뿐더러 쓰지도 못하게 했다”라고 술회했다. 아버지는 이어 “네 조부는 군에서 다리를 다친 나한테는 집을 떠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라며 더 오래 사시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해준 그 말씀이 나를 살렸다. 내가 아버지 덕에 이만큼 살았다”라며 “아버지가 살아온 시간만큼 살았다. 이제 아버지의 빚을 갚았다. 지금부터의 삶은 아버지가 사시지 못한 날들이다. 아버지 몫까지 살아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라고 47세 생신의 의미를 새겼다.
그날 아버지는 조부가 자주 인용한 말을 가르쳐줬다. 고사성어 ‘불초[不肖]’다. ‘닮지 않았다’라는 뜻이다. ‘불초 소생’이라고 자주 썼지만, 의미는 그날 처음 알았다.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낮출 때 쓰는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편(萬章篇) 상(上)에 나온다.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丹舟)는 불초하고, 순(舜)임금의 아들 역시 불초하며, 순임금이 요 임금을 도운 것과 우 임금이 순임금을 도운 것은 오래되었으며, 요와 순임금이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은혜를 베푸셨다.” 요임금과 순임금의 두 분 아들이 똑똑하지 못해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요임금은 아들 단주가 현명하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에 비록 자식이 억울해할지라도 백성에게는 이익이 되므로 순에 물려준 것이다.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단지 친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요와 순임금의 성군(聖君)다운 깊은 뜻이 담긴 고사성어다.
아버지는 “네 조부는 네 증조부의 학문을 높이 샀다. 원래 싫어하셔서 비록 저작은 남기지 않았지만 따라가기 어려웠다고 하셨다. 얼굴이나 행동은 닮았을지 몰라도 학문은 불초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조부의 유언도 처음 말씀했다. 유언은 ‘열정(熱情)’이다. 아버지는 “네 조부가 불초하지 않으려면 열정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열정은 오래지 않아 식는 게 흠이다’라며 식지 않게 간직하라고 유언하셨다”라고 했다. 불초를 ‘아버지를 이기는 일’이라고 해석한 아버지는 “네 할아버지 열정은 끓어올랐지만 끝내 펴보지는 못한 불행한 열정이었다”라며 아쉬워했다. 아버지는 “열정은 자신에게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깊은 관심과 몰입을 뜻한다. 열정은 타고난 기질도 있어야지만, 애써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정을 식지 않게 하는 불씨는 동기다. 동기는 올바른 가치관이나 뚜렷한 신념에서 나온다. 꺼지지 않게 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걸 배우고, 그걸 스스로 조금씩 성취해가는 것이다. 이루고 싶은 목표를 먼저 세우고 달성하기까지의 과정에 온통 집중해야 한다. 자칫 과정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열정이 꺼지거나 식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성취감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런 요소들이 결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열정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지만, 열정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열정은 노력, 실력, 기회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해 성공을 만들어낸다. 성공하려면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다함 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손주가 제 아버지만 못하다는 말을 듣지 않게 하려면 서둘러 일러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 열정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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