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결렬 위기 속 美·카타르 등, 이·하마스 양보 끌어내
합의 이후에도 인질교환 방식 등 세부내용 놓고 11시간 씨름
정상들 설득·압박, 정보수장 급파…긴박했던 이·하마스 협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나흘간 일시 휴전과 인질 교환 합의가 타결 전후로 계속해서 결렬 위기를 겪으며 밀고 당기는 치열한 협상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 직접적인 대화 통로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과 카타르, 이집트가 개입한 복잡한 중재와 협상 끝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대 역사상 가장 복잡했던 이번 협상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정치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뿐 아니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군주, 미 중앙정보국(CIA), 이집트 정보기관 등이 관여했다.

미국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하마스와 지난달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1천200명 이상의 목숨을 잃은 이스라엘이 협상 당사자이고 서로 적개심이 강해 살얼음판과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WSJ은 수주간 지속된 비밀 협상에 관여한 12명 넘는 미국과 중동 지역 관리를 인터뷰한 결과를 종합해 이번 협상이 치열하면서도 지난하고 극적인 과정이었다고 전했다.

초기에는 미국, 카타르, 이집트, 가자지구의 고위 관리들이 인질 협상의 일환으로 비밀 회담을 갖기 시작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인과 외국인 인질 240여명을 억류하고 있다.

카타르 관리들은 하마스 정치지도자들을 압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이집트 정보기관은 과거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을 성공적으로 중재한 경험이 있었다.

하마스 군사 지도부와도 유일하게 연락 채널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마스 정치지도자 신와르에게 인질과 수감자 맞교환은 낯설지 않은 일이었다.

2011년 이스라엘에 수감된 1천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과 하마스가 억류한 이스라엘 군인 1명을 교환 석방이 이뤄졌다.

하마스가 지난달 20일 인질 가운데 처음으로 모자 관계인 미국인 여성 2명을 석방한 것이 '시험 케이스'가 됐다.

정상들 설득·압박, 정보수장 급파…긴박했던 이·하마스 협상
WSJ에 따르면 하마스는 같은 달 21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 침공 계획을 취소하면 더 많은 여성과 어린이를 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미국 관리들은 이스라엘에 지상전 계획을 보류할지 물었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인질들의 자세한 신원을 제공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이틀 뒤 카타르 총리는 브렛 맥거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북아프리카 조정관에게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과 가자지구 추가 구호 및 연료 공급 대가로 하마스가 많은 여성과 어린이 인질을 석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자 카타르와 이집트가 성사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달 26일 하마스와 접촉했다.

하마스는 여성과 어린이 인질 50명의 석방을 보장하겠지만 전체 신원정보는 없다며 10명의 명단만 제공했다.

미국은 10명으로 불충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이스라엘이 그다음 날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자 하마스 정치지도자 신와르는 이집트 협상가들과 연락을 끊었다.

며칠 후 협상이 재개됐고, 이집트 정보당국은 하마스에 50명의 명단을 제공하라고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10월 31일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지역을 공습해 100명 이상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집트와 카타르, 하마스는 항의의 뜻으로 협상을 중단했다.

협상이 부진하자 윌리엄 번스 CIA 국장과 다비드 바르니아 모사드 국장이 카타르로 가서 협상의 동력을 살릴 방안을 모색했다.

이들은 지난 9일 카타르 관리들을 만나 협상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이는 대략적인 합의문 초안을 만들었다.

정상들 설득·압박, 정보수장 급파…긴박했던 이·하마스 협상
하마스는 가자지구 최대 의료시설인 알시파 병원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포위되자 지난 12일 결국 더 많은 인질 정보를 제공했다.

하지만 알시파 병원에 대한 작전 취소를 이스라엘군에 요구하며 또다시 상대 협상가들과 접촉을 끊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이 카타르 군주에게 전화를 걸어 하마스가 석방 대상 인질 50명의 나이와 성, 국적 등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협상은 실패할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카타르 군주는 하마스 설득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답변했다.

며칠 뒤 이스라엘군이 알시파 병원을 장악했다.

협상이 이달 16일 재개됐고, 협상가들은 하마스가 석방할 인질 50명의 상세한 명단을 확보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다음 날 카타르 군주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카타르의 역할을 높게 사면서 "이번이 (협상 타결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 맥거크 백악관 NSC 조정관이 카타르에 가서 6쪽 분량의 합의문 초안을 짜냈고, 번스 CIA 국장은 원격으로 협상에 참여했다.

맥거크 조정관은 이집트 정보국장과도 이 초안을 검토했다.

하마스는 초안 대부분에 동의했지만 난관이 있었다.

이스라엘인 인질과 팔레스타인인 수감자의 교환 비율을 놓고 이견이 있었다.

정상들 설득·압박, 정보수장 급파…긴박했던 이·하마스 협상
하마스는 무인기를 이용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감시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하마스 지도자들을 추적하는 것으로 막으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하마스의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요청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난색을 보이다가 결국 수용했다.

하마스에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인 가족들의 압박도 작용했다.

하마스는 지난 21일 합의안을 공개적으로 받아들였고, 이스라엘 전시내각은 다음날 합의안을 승인했다.

애초 23일 오전 합의가 이행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인질 교환 방식, 1차 석방자 명단 명단 제공 등을 놓고 막판 이견이 생겨 하루 지연됐다.

WSJ은 양측의 합의 이후에도 세부 내용을 놓고 11시간의 씨름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나흘간 일시 휴전이 24일 오전 7시(이하 현지시간, 한국시간 오후 2시)부터 시작되고, 하마스가 인질 50명을 석방하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수감자 150명을 풀어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