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롯데 감독님은 명장…하지만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이겨야"
"야구는 선수가, 선택은 감독이…책임지는 쪽도 감독이어야"
이승엽 감독 "내년 목표는 3위 이상…야유 아닌 박수 받는 시즌"
'국민타자'로 불리며 은퇴할 때까지 사랑받은 이승엽(47) 두산 베어스 감독이 먼 훗날 '국민감독'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이승엽 감독이 많은 한국 야구인의 바람대로 '국민감독'으로 불리는 날이 온다면 사령탑 부임 첫해 자책으로 보낸 불면의 밤과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받은 일부 팬들의 야유가 "성장의 자양분이었다"고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두산이 2023 마무리 훈련을 마친 23일 서울시 잠실구장에서 만난 이승엽 감독에게 조심스럽게 "팬들에게 야유받았던 날, 어떤 기분이었나"라고 물었다.

이 감독은 "당연히 충격받았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 감독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는 "내가 부족했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1년 차 감독이니까 부족할 수 있다'는 말은 나 자신도 용납할 수 없다"며 "내가 부족하다는 걸 느꼈고, 팬들이 올해 우리 팀 성적에 아쉬움을 느끼셨으니 다음 시즌은 더 철저하게 준비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내년에는 야유가 아닌 박수를 받으며 시즌을 끝낼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규시즌 144경기 74승 68패 2무(승률 0.521)와 포스트시즌 1경기 1패(와일드카드 결정전)가 2023년 두산과 이승엽 감독이 받은 성적표다.

이승엽 감독 "내년 목표는 3위 이상…야유 아닌 박수 받는 시즌"
코치 경험도 없었던 초보 사령탑이 지난해 9위였던 팀을 지휘해 5위로 올려놓은 건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하지만 3위를 노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5위로 정규시즌을 마쳐 포스트시즌도 단 한 경기만 벌인 걸 아쉬워하는 팬도 많았다.

올해 마지막 홈 경기가 된 10월 16일 잠실 SSG 랜더스전 뒤에는 이승엽 감독이 마이크를 잡자 아쉬움 섞인 야유를 보내는 팬도 있었다.

현역 시절 '국민타자'로 사랑받으면서도 겸손을 잃지 않았던 이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뒤에는 철저하게 몸을 낮췄다.

팀이 연승을 거두면 "선수들이 정말 잘했다"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고, 연패를 당할 때는 "감독의 경험, 실력이 부족해서 졌다"고 자책했다.

사령탑으로도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메리트'를 누리겠다는 안이한 마음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살면서 처음 받았던 팬들의 야유도, 이 감독은 몸을 낮춰 흡수했다.

이승엽 감독 "내년 목표는 3위 이상…야유 아닌 박수 받는 시즌"
선수단을 향해 비판의 화살이 날아들면, 이 감독은 온몸으로 이를 막았다.

아쉽게 경기가 끝나도 다음 날에는 밝은 표정으로 선수단을 독려하는 이 감독의 모습은 선수들의 마음을 훔쳤다.

이제 이 감독은 팬들이 인정하는 지도자로 한 단계 더 올라서고자 한다.

당연히 팬들이 가장 바라는 건, 성적이다.

이 감독은 "내년 목표는 '3위 이상'"이라고 밝혔다.

스토브리그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두산을 '3강'으로 꼽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이 감독은 베테랑의 반등과 젊은 선수들의 도약이 어우러지면 어려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무리 훈련 기간에 이 감독은 '왼손 거포' 김재환과 '일대일 맞춤 훈련'을 했다.

김재환은 올해 타율 0.220, 10홈런, 46타점에 그쳤다.

이 감독은 "팀의 중심 타자가 마무리 훈련에 참여해 정말 성실하게 훈련했다.

정말 고맙다"며 "좋아진 게 눈에 보인다.

마무리 캠프 때 힘들게 쌓은 걸, 비활동 기간 개인 훈련으로 유지하고 다시 스프링캠프에서 끌어 올리면 내년 시즌에는 분명히 올해의 부진을 씻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눈에 띄는 신예들도 있다.

이 감독은 "내야수 박준영이 기술적인 면에서 좋아졌다.

훈련 태도, 성장 가능성을 이번 마무리 캠프에서 또 한 번 확인했다.

박지훈, 신인 전다민도 기존 야수들을 긴장시킬 신예"라며 "최지강, 최준호, 김유성, 백승우 등 젊은 투수들의 성장도 반갑다"고 밝혔다.

이승엽 감독 "내년 목표는 3위 이상…야유 아닌 박수 받는 시즌"
이승엽 감독은 "야구는 선수가 하고, 감독은 선택만 한다.

비판받는 쪽은 선택을 하는 감독의 몫이어야 한다.

스포트라이트는 선수에게 향했으면 한다"고 자신의 '책임'만을 강조하지만, 감독이 되어서도 그는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피할 수 없다.

'두산 왕조'를 일군 김태형 감독이 롯데 자이언츠로 부임하면서, 두산과 롯데전은 2024시즌 KBO리그의 흥행카드로 부상했다.

김태형 감독은 이승엽 감독이 부임하기 전인 2015∼2022시즌, 8년 동안 두산 지휘봉을 잡아 7시즌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2015∼2021년), 3차례 우승(2015, 2016, 2019년)의 이정표를 세웠다.

이승엽 감독은 "김태형 감독님은 명장이다.

내가 배울 점이 많다"고 선배 사령탑을 예우하면서도 "팀과 팀의 대결에서는 지고 싶지 않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29년 만의 우승을 차지한 '잠실 라이벌' LG 트윈스를 상대로도 이 감독은 '승리욕'을 드러냈다.

이 감독은 "올해 우리가 LG에 5승 11패로 밀리는 등 상위권에 약했다"며 "내년에는 상위권 팀을 상대로 더 자주 웃겠다.

꼭 이기겠다"고 다짐했다.

이승엽 감독 "내년 목표는 3위 이상…야유 아닌 박수 받는 시즌"
'코리안 특급' 박찬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특별 고문은 시즌 종료 뒤 이승엽 감독에게 전화해 "지난 시즌 9위를 5위로 올려놨으니 정말 잘했다"고 격려했다.

이 감독은 "사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끝난 뒤 의기소침했는데 박찬호 선배의 격려로 힘을 얻었다"고 말하면서도 "이긴 경기보다는 진 경기, 후회되는 결정 등 올 시즌 좋지 않았던 때가 더 기억에 남는다.

그만큼 감독은 어려운 자리다.

어려운 자리인 걸 알고 시작했지만, 더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칭찬이 위로는 되지만, 이 감독은 현역 시절에도 반성과 노력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갔고,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타자가 됐다.

감독이 된 후에도 이승엽 감독은 반성하고 노력했다.

현역 시절처럼,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 감독은 "올해 더 높은 자리에서 시즌을 마칠 수 있었는데,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며 "내년에는 더 올라가야 하고, 올라갈 겁니다"라고 주문을 외듯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감독은 "우리 선수들 많이 응원해 달라. 우리가 잘할 땐 꼭 선수를 앞에 내세워달라"고 당부했다.

스포츠계에서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지도자로 성공하기 어렵고, 착한 지도자는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한국 야구 최고 스타였고,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사람'인 이승엽 감독은 이런 편견도 넘어서고자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