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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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시골에서 살던 뿌반낍(Vu Van Giap) 씨는 가족들을 괴롭히던 가난을 벗어나겠다는 목표로 한국행 꿈을 키웠다. 한국의 고용허가제(E-9)를 알게 된 뿌반낍 씨는 시간을 쪼개 한글을 공부해 한국어 능력 시험을 통과했고 결국 2006년 어업 근로자 자격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전남 여수 지역의 낙지잡이 어선에서 일을 시작한 뿌반낍 씨는 추위에 익숙하지 않아 고생이 심했지만, 고향에 계신 할머니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버텼다.

1년 후엔 경남 통영의 굴 양식 업체에 입사했다. 일이 생기면 퇴근 후여도 달려갔고, 점심시간에도 생산량 개선 방법에 골몰했다. 이런 뿌반낍 씨를 눈여겨본 한국인 사장님은 아예 공장 기계를 담당하는 업무를 맡겨줬다.

기계를 관리하면서 연구를 거듭한 뿌반낍씨는 3명의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굴 세척기를 발명하는 등 회사의 핵심 인력이 됐다. 월급도 올랐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베트남에 있는 부모님에게 새집을 지어드리고 동생들을 공부시켰다.

"사장님 부부는 저를 양아들로 대해 주시고 한국 국적 취득을 도와주셨습니다. 거주 기간이 부족해 국적을 취득하진 못했지만, 한국에서의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뿌반낍 씨는 2011년 귀국 후 산업기계를 만드는 한국 기업에서 기술팀장으로 일하다 특유의 손재주를 이용해 2019년 '베트남 CLC 트레이딩 생산 및 서비스'라는 제조업체를 창업했다. 한국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루 2시간만 자면서 5년간 사업에 몰입한 끝에 결국 회사를 삼성, LG에 납품하는 협력 업체로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뿌반낍 씨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에 갔던 제가 이제는 사장이 됐다"며 "더 많은 베트남 근로자가 한국에 가서 취업하고, 한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근로자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2일 서울 동대문구 노보텔 앰배서더에서 고용허가제(E-9)로 입국해 일하다 본국으로 귀국한 외국인 근로자를 초청하는 ‘고용허가제 귀국근로자 초청 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내년 고용허가제 시행 20주년을 앞두고 열린 이번 행사는 성실하게 근무한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가 본국으로 귀국한 후 재정착에 성공한 모범사례를 공유하고, 고용허가제의 성과를 알리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고용부와 공단은 현지 고용허가제(EPS) 센터와 송출국가 협조를 통해 국가별 우수사례 16명을 수집했다. 이후 지난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심사를 거쳐 대상 1인, 최우수상 2인, 우수상 2인 등 총 5인의 수상자를 선정했다.

개회식 후 이 장관은 대상으로 선정된 베트남 국적의 근로자 뿌반낍(Vu Van Giap)씨에게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수여했다. 대상을 받은 뿌반낍(베트남)씨와 우수상을 받은 삼팟(스리랑카)씨는 귀국 이후 창업해서 회사를 운영 중이다.

최우수상을 받은 쑨(캄보디아)씨는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또 다른 최우수상 수상자 카스노(인도네시아)씨는 현지 기업 이사로, 우수상을 받은 아본(필리핀)씨는 필리핀 소르소곤(Sorsogon)시의 부시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인력공단은 "귀국 근로자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은 물론 적극적인 자세·태도·일하는 방식 등이 귀국 후 성공에 큰 배경이 됐다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수상 외국인 근로자들은 현재 한국에서 근무 중인 근로자들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며, 입국을 희망하는 근로자들에게는 미래의 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국내 외국인 취업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고용허가제 단순 외국인력(E-9) 쿼터를 대폭 확대했다.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 도입 규모는 연간 5만~6만명 수준이었다. 올해는 당초 11만명으로 계획했다가 12만명으로 확대했으며 내년에는 12만명보다 훨씬 더 늘릴 전망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