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키예프가 이끈 빈 필하모닉…새로움과 자부심 가득한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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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예술의전당…피아니스트 랑랑, 강렬함과 반짝임 반씩 섞은 협연
수년간 주기적으로 내한한 빈 필하모닉이 프랑스 작곡가와 러시아 작곡가의 곡으로 구성한 색다른 프로그램을 자부심 가득한 연주로 선보였다.
지난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투간 소키예프가 이끄는 빈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
그동안 빈필은 내한 공연에서 주로 브루크너(2019년 지휘자 틸레만), 멘델스존(2021년 무티), 브람스(2022년 벨저 뫼스트) 등 독일-오스트리아 교향악의 정수를 선보여왔다.
하지만 이날 프로그램은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이었다.
러시아 출신의 소키예프는 오늘날 최고의 프로코피예프 해석자인 데다 프랑스 레퍼토리에도 정통하다.
협연자로는 '클래식계 슈퍼스타' 피아니스트 랑랑이 나섰다.
1부의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젊은 생상스의 패기와 다채로운 감수성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랑랑은 세 개의 악장 모두에서 압도적인 연주를 들려줬다.
1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의 표정은 무척 다채롭다.
카논풍의 움직임으로 바흐를 연상시키는 첫머리, 즉흥 연주풍의 기교적인 속주, 마치 오페라의 한 장면과도 같은 관현악의 격정적인 총주, 플루트 솔로와 함께 펼쳐지는 다정한 아르페지오 악구 등 서로 다른 성격의 음악이 유연하게 흐른다.
랑랑의 독주는 강렬함과 반짝임을 반씩 섞어 놓은 듯했다.
1악장 카덴차(악곡이나 악장 끝에 연주자가 기교를 발휘할 수 있도록 구성된 무반주 부분)에서는 꿈꾸는 듯한 몽상적인 아름다움을 소환해 내면서도 마치 리스트처럼 휘몰아치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소키예프가 이끄는 빈필 또한 단정하고도 견고하게 독주자와 앙상블을 이뤘다.
2악장 알레그로 스케르찬도는 마치 멘델스존을 연상시키는 산뜻한 목관 및 현악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랑랑의 피아노는 유희적인 가벼움을 지니면서도 우아하고 세련된 프랑스적 음향을 선보였다.
소키예프와 빈필은 아주 생동감 있고 질 좋은 음향을 들려줬다.
다만 너무 '완벽'해서 피아노의 장난스러운 면모까지도 단정하고 안정적으로 받아냈다.
악상이 가닥 가닥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프랑스풍의 연주와는 달리 조화로운 전체가 더 부각되는 연주였지만, 스타일의 문제일 뿐 음악적으로 풍성하고 만족스러웠다.
3악장에서 랑랑은 그야말로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보여줬다.
클라이맥스를 끌어내는 그의 놀라운 집중력과 스태미나에 1악장의 강렬한 속주를 모두 지워버릴 정도였다.
듣는 이를 몰입시키고, 놀라게 하며, 결국 즐겁게 해 주는 그의 명인기(전문가적인 면모)는 여전히 최고였다.
2부에서는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이 연주됐다.
1번 '고전'과 함께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다.
1악장 안단테는 고즈넉한 목가처럼 풍성한 울림으로 시작되지만, 프로코피예프 음악이 으레 그렇듯 어딘지 불편한 '낯선' 불협화음들이 끼어든다.
그의 음악은 전통적인 구조를 '낯설게 하는' 화성과 관현악법으로 어딘지 의뭉스럽고 어디로 튈지 모를 긴장감과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유머와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
소키예프의 빈필은 '불편한 요소'들보다는 전통적 아름다움에 해당하는 풍성하고 두터운 화음과 유려한 선율선을 보다 부각하는 연주를 들려줬다.
보다 날카로운 연주도 가능했겠지만 빈필은 자기들 본연의 음향을 올곧게 지켜가며 연주에 임했다.
그러나 빈필의 프로코피예프도 분명 프로코피예프였다.
악단의 기량은 정말이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현악기군의 정확한 트레몰로, 특히 선명한 베이스라인, 양감을 유지하면서도 중요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전체 오케스트라의 균형미 등은 곡이나 작곡가를 타지 않는 빈필의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반면 2악장 알레그로 마르카토에서는 익살스럽고 악동 같은 프로코피예프의 개성이 전면에 나오는데 소키예프는 더없이 생생하게 이 악장의 유머를 표현해냈다.
무궁동(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속도로 진행되는 기악곡)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악상은 듣는 이의 예상을 자꾸 빗나간다.
하이든과 요한 슈트라우스의 악단인 빈필은 이처럼 듣는 이의 기대를 조성하고 저버리는 데 능숙하다.
때로는 유행가처럼, 때로는 다정한 동요, 민속적인 춤곡처럼 악단은 탁월하게 표정을 바꿔가며 시종 듣는 재미를 줬다.
명상적이고 목가적이지만, 고음역이 강조돼 미묘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3악장 아다지오에서 소키예프는 유려한 선율의 움직임과 반주부의 규칙적인 박절의 대비를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4악장 알레그로 조코소에서도 소키예프와 빈필은 보다 자극적인 연주를 위해 자신들의 호흡을 버리는 법이 없었다.
여유롭고 서두름이 없으며 그리하여 버려지는 음 또한 없는 연주, '연출' 대신 '음악' 자체가 말하게 하는 연주였다.
한 마디로 오늘 공연은 새로움과 자부심이 가득한, 진귀한 무대였다.
소키예프와 빈필은 서로를 깊이 존중했고 프로코피예프와 생상스의 세계를 온전히 체화했다.
그 결과 모든 것이 음악적으로 놀라운 생명을 얻었다.
그리고 앙코르, 빈필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서곡과 폴카로 축제의 장을 선사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투간 소키예프가 이끄는 빈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
그동안 빈필은 내한 공연에서 주로 브루크너(2019년 지휘자 틸레만), 멘델스존(2021년 무티), 브람스(2022년 벨저 뫼스트) 등 독일-오스트리아 교향악의 정수를 선보여왔다.
하지만 이날 프로그램은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이었다.
러시아 출신의 소키예프는 오늘날 최고의 프로코피예프 해석자인 데다 프랑스 레퍼토리에도 정통하다.
협연자로는 '클래식계 슈퍼스타' 피아니스트 랑랑이 나섰다.
1부의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젊은 생상스의 패기와 다채로운 감수성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랑랑은 세 개의 악장 모두에서 압도적인 연주를 들려줬다.
1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의 표정은 무척 다채롭다.
카논풍의 움직임으로 바흐를 연상시키는 첫머리, 즉흥 연주풍의 기교적인 속주, 마치 오페라의 한 장면과도 같은 관현악의 격정적인 총주, 플루트 솔로와 함께 펼쳐지는 다정한 아르페지오 악구 등 서로 다른 성격의 음악이 유연하게 흐른다.
랑랑의 독주는 강렬함과 반짝임을 반씩 섞어 놓은 듯했다.
1악장 카덴차(악곡이나 악장 끝에 연주자가 기교를 발휘할 수 있도록 구성된 무반주 부분)에서는 꿈꾸는 듯한 몽상적인 아름다움을 소환해 내면서도 마치 리스트처럼 휘몰아치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소키예프가 이끄는 빈필 또한 단정하고도 견고하게 독주자와 앙상블을 이뤘다.
2악장 알레그로 스케르찬도는 마치 멘델스존을 연상시키는 산뜻한 목관 및 현악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랑랑의 피아노는 유희적인 가벼움을 지니면서도 우아하고 세련된 프랑스적 음향을 선보였다.
소키예프와 빈필은 아주 생동감 있고 질 좋은 음향을 들려줬다.
다만 너무 '완벽'해서 피아노의 장난스러운 면모까지도 단정하고 안정적으로 받아냈다.
악상이 가닥 가닥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프랑스풍의 연주와는 달리 조화로운 전체가 더 부각되는 연주였지만, 스타일의 문제일 뿐 음악적으로 풍성하고 만족스러웠다.
3악장에서 랑랑은 그야말로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보여줬다.
클라이맥스를 끌어내는 그의 놀라운 집중력과 스태미나에 1악장의 강렬한 속주를 모두 지워버릴 정도였다.
듣는 이를 몰입시키고, 놀라게 하며, 결국 즐겁게 해 주는 그의 명인기(전문가적인 면모)는 여전히 최고였다.
2부에서는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이 연주됐다.
1번 '고전'과 함께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다.
1악장 안단테는 고즈넉한 목가처럼 풍성한 울림으로 시작되지만, 프로코피예프 음악이 으레 그렇듯 어딘지 불편한 '낯선' 불협화음들이 끼어든다.
그의 음악은 전통적인 구조를 '낯설게 하는' 화성과 관현악법으로 어딘지 의뭉스럽고 어디로 튈지 모를 긴장감과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유머와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
소키예프의 빈필은 '불편한 요소'들보다는 전통적 아름다움에 해당하는 풍성하고 두터운 화음과 유려한 선율선을 보다 부각하는 연주를 들려줬다.
보다 날카로운 연주도 가능했겠지만 빈필은 자기들 본연의 음향을 올곧게 지켜가며 연주에 임했다.
그러나 빈필의 프로코피예프도 분명 프로코피예프였다.
악단의 기량은 정말이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현악기군의 정확한 트레몰로, 특히 선명한 베이스라인, 양감을 유지하면서도 중요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전체 오케스트라의 균형미 등은 곡이나 작곡가를 타지 않는 빈필의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반면 2악장 알레그로 마르카토에서는 익살스럽고 악동 같은 프로코피예프의 개성이 전면에 나오는데 소키예프는 더없이 생생하게 이 악장의 유머를 표현해냈다.
무궁동(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속도로 진행되는 기악곡)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악상은 듣는 이의 예상을 자꾸 빗나간다.
하이든과 요한 슈트라우스의 악단인 빈필은 이처럼 듣는 이의 기대를 조성하고 저버리는 데 능숙하다.
때로는 유행가처럼, 때로는 다정한 동요, 민속적인 춤곡처럼 악단은 탁월하게 표정을 바꿔가며 시종 듣는 재미를 줬다.
명상적이고 목가적이지만, 고음역이 강조돼 미묘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3악장 아다지오에서 소키예프는 유려한 선율의 움직임과 반주부의 규칙적인 박절의 대비를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4악장 알레그로 조코소에서도 소키예프와 빈필은 보다 자극적인 연주를 위해 자신들의 호흡을 버리는 법이 없었다.
여유롭고 서두름이 없으며 그리하여 버려지는 음 또한 없는 연주, '연출' 대신 '음악' 자체가 말하게 하는 연주였다.
한 마디로 오늘 공연은 새로움과 자부심이 가득한, 진귀한 무대였다.
소키예프와 빈필은 서로를 깊이 존중했고 프로코피예프와 생상스의 세계를 온전히 체화했다.
그 결과 모든 것이 음악적으로 놀라운 생명을 얻었다.
그리고 앙코르, 빈필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서곡과 폴카로 축제의 장을 선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