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헌 개인전 '戒'
민병헌 개인전 '戒'
민병헌(69)은 흑백의 스트레이트 사진을 고집하며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사진작가다. 포토샵과 첨단 촬영기법이 쏟아져 나오던 지난 40년동안,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질서와 통제로 ‘戒律(계율)’을 만들었다. 촬영부터 인화까지 모든 과정엔 타인의 개입이 없다. 오직 아날로그 방식의 젤라틴 실버 프린트만으로 세밀하게 작품을 완성한다. “흑백 사이에 있는 회색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단계의 색이 있다”는 그의 말처럼 작품들은 때론 쓸쓸하고, 때론 화려하다. 거칠면서 담백하고, 웅장하면서 소박하다.

그의 미적 세계는 구도자의 그것과 닮았다. 그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는 전시 ‘戒(계)’가 서울 성수동 갤러리 구조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대표 작품 중 '스노우 랜드' '딥 포그' '리버' '바디' 등에서 34점을 엄선했다. 뮤지션 선종표는 작품에 헌정곡들을 더했다.

사진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간 '손의 사진가'

민병헌 개인전 '戒'
민병헌 개인전 '戒'
민 작가는 ‘손의 사진가’라고도 불린다. 손으로 셔터를 누르고 손으로 인화하는 모든 과정에 시간의 층과 온기를 새겨 넣는다. 극도의 섬세함으로 완성한 은은한 회색조와 부드러운 질감은 관객들에게 시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때론 잔잔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흔적을 담아 잊고 있던 감성들을 떠오르게 한다. 사진 속 아스라한 풍경과 인물들은 그 숨결마저 세세하게 전해진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새벽녘 입안에 남는 전날 밤 꿈의 맛과 닮았다.”고 표현한다.

민병헌은 자신만의 직관적인 감성과 시선을 은은한 회색조의 프린트를 통해 표현하며 ‘민병헌 그레이(grey)’라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작가다. 인류의 대다수가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진의 시대를 살고 있는 때여서 그의 작품은 더 귀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시카고 현대 미술관, 휴스턴 미술관, 프랑스 국립조형예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길바닥 찍으며 '빛의 미학' 포착한 20대


그는 20대에 아마추어 사진가로 시작했다. 군 제대 후 뒤늦게 사진을 독학했다. 그저 사진에 반해 서울 곳곳을 돌며 풍경들을 찍었다. 1987년 길바닥만 찍은 ‘별거 아닌 풍경’은 독특한 시선과 빛의 미학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흑백사진을 고집하게 된 건 사진 작업을 하는 모든 과정에 남의 손이 닿는 게 싫어서였다. 그는 카메라 렌즈로 그 순간 자신이 본 장면을 사각의 프레임 안에 잘라 넣고, 현상과 인화 과정에서 온도와 시간을 통제하는 것까지를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온전히 혼자 할 수 있는 게 흑백사진이었다.

고독과 인내의 시간을 살다

그의 두 뺨은 늘 발갛다. 설경을 찍느라, 안개 낀 숲을 헤매고 다니느라, 암실에서 평생을 화학물질과 씨름하느라 그랬으리라. 민 작가는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는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걸 알려주는 매개체다. 디지털 작업처럼 있는 걸 지우고,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늘 본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는 같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40년을 살았다.
민병헌 작가
민병헌 작가
그의 작품들에는 어느 곳에서 찍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일련번호와 프린트 사이즈, 언제 찍었는지에 대한 정보만 있다. 사진에 특정한 메시지를 주기보다 그 순간에 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게 작가의 말이다.

타협하지 않았다, 암실이 싫어질까봐


일흔을 앞둔 그는 지금도 군산의 작업실을 기반으로 홀로 사진을 찍으러 나가고, 홀로 암실에 들어간다. 보조 스태프 없이 대형 롤링 인화지에 현상하는 작업은 ‘죽을 것처럼 힘든 노동’이라고 했다. 요즘은 인화지를 구하기도 어려워 사진을 찍어놓고 1~2년씩 기다렸다 작업하기도 한다. 필름 작업을 위해 온갖 약품들 사이에서 밤샘 작업을 하고 나면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다.
'누드'
'누드'
그의 작품에는 길이 123㎝를 넘는 대형작이 없다. 약품 속에 몇 번 들어갔다 오면 이리저리 구겨지고 말려 들어가기 때문에 홀로 작업할 수 있는 최대 사이즈가 지금의 작품 크기다. 해외 전시와 페어 등에서 주목받으면서 여러 유혹도 있었다. 호텔이나 대형 건물 로비에 걸 수 있게 이미지만 산 뒤 대형 사이즈로 특수 인화해 로열티를 주겠다는 제안도 여러 번 받았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으며 편안하게 경제적 여유를 얻을 기회여서 고민했지만, 그의 대답은 항상 ‘노’였다.

“왜 고민하지 않았겠어요. 부와 명예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길인데요. 근데요, 한번 받아들이면 죽을 때까지 암실에 다신 안 들어가고 싶을 것 같았어요. 한순간 눈이 멀어 모든 걸 멈추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