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지진 자료'日저자 "난징대학살처럼 간토대학살로 불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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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학살 정황 자료집 출간 시민단체 대표 야마모토 씨 "대지진과 학살을 확실히 구분해야"
"인종·민족 차이 집단 박해 '제노사이드'로 인식돼야…日정부, 사죄 피하려 학살 인정안해" "인정하면 힘들어지니까 그러는 거 아닐까요.
사죄, 배상, 명예 회복 같은 문제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조선인 학살은 정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일본에서 최근 출간된 책 '가나가와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관계 자료'를 쓴 야마모토 스미코(84) 씨는 지난 18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교사 생활을 마치고 시민단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실을 알고 추도하는 가나가와 실행위원회' 대표로 활동 중인 야마모토 씨는 "위안부, 강제 연행 다음에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가 올 것으로 알았다"며 "책에서 소개한 중요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부와 지자체에 책임을 묻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가 언급한 자료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연구에 천착했던 재일 역사학자 고(故) 강덕상 씨가 10년 전쯤 고서점에서 발견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해인 1923년 11월 21일에 가나가와현 지사가 내무성 경보국장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며, 제목은 '지진에 따른 조선인·중국인에 관한 범죄 및 보호 상황 기타 조사의 건'이다.
이 자료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이유는 당시 조선인 피해자 145명이 살해된 장소와 일시는 물론 당시 그들의 직업과 연령도 기록됐기 때문이다.
이 중 14명은 이름도 기재됐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헛소문을 믿은 일본인들이 불안감으로 격앙돼 조선인을 살해했다는 설명도 있어 조선인 학살이 사실(史實)임을 입증하는 사료라는 평가를 받는다.
야마모토 씨는 보고서에 나오는 학살 장소를 직접 답사하면서 연구해 왔고,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2021년 세상을 떠난 강씨와 공저 형태로 책을 내놨다고 말했다.
야마모토 씨는 "많은 조선인 학살 피해자는 이상할 정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는 학살을 은폐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달 하순부터 이달 초순까지 기자회견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진보 혹은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아사히·마이니치·도쿄 신문이 잇따라 조선인 학살을 인정하고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비판했지만, 일본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야마모토 씨는 간토대지진 50주년이었던 1973년에 요코하마 시내 학교 도서관을 찾았다가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대지진 직후 학생들이 쓴 글을 보고 학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조선인 학살은 부모님께 얼핏 들은 적은 있지만,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도서관에서 접한 글에는 어른이 학살되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대목이 있었어요.
태평양전쟁을 거치고도 타지 않은 여러 글에 학살 관련 기록이 있었죠."
야마모토 씨는 공부를 이어가면서 조선인 학살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과거에는 일본인들이 간토 지방을 덮친 규모 7.9의 강진 탓에 일시적으로 정신이 이상해져서 학살에 가담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 지배를 학살 배경으로 본다고 말했다.
야마모토 씨는 "일본에 저항하는 조선인들의 투쟁 흐름 속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죽여도 된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며 "이러한 경험 또는 체험이 있는 군인들이 간토대지진 전에 일본으로 돌아왔고, 당시 지진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정권이 학살하는 사람들을 제압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계기로 조선인과 중국인 학살이 인종·민족 등의 차이로 집단 박해당한 '제노사이드'였고, 대지진과 학살을 확실히 구분하는 인식이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야마모토 씨는 조선인 학살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표현인 '간토대학살'이 더 널리 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살의 직접적 원인은 지진이었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식민 지배와 일본인이 마음속으로 품었던 차별 의식이 학살을 촉발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야마모토 씨는 "난징대학살이라고 하면 학살의 이미지가 딱 떠오르지 않는가"라며 "몇 년 후에는 간토대학살이라는 말이 정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인종·민족 차이 집단 박해 '제노사이드'로 인식돼야…日정부, 사죄 피하려 학살 인정안해" "인정하면 힘들어지니까 그러는 거 아닐까요.
사죄, 배상, 명예 회복 같은 문제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조선인 학살은 정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일본에서 최근 출간된 책 '가나가와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관계 자료'를 쓴 야마모토 스미코(84) 씨는 지난 18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교사 생활을 마치고 시민단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실을 알고 추도하는 가나가와 실행위원회' 대표로 활동 중인 야마모토 씨는 "위안부, 강제 연행 다음에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가 올 것으로 알았다"며 "책에서 소개한 중요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부와 지자체에 책임을 묻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가 언급한 자료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연구에 천착했던 재일 역사학자 고(故) 강덕상 씨가 10년 전쯤 고서점에서 발견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해인 1923년 11월 21일에 가나가와현 지사가 내무성 경보국장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며, 제목은 '지진에 따른 조선인·중국인에 관한 범죄 및 보호 상황 기타 조사의 건'이다.
이 자료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이유는 당시 조선인 피해자 145명이 살해된 장소와 일시는 물론 당시 그들의 직업과 연령도 기록됐기 때문이다.
이 중 14명은 이름도 기재됐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헛소문을 믿은 일본인들이 불안감으로 격앙돼 조선인을 살해했다는 설명도 있어 조선인 학살이 사실(史實)임을 입증하는 사료라는 평가를 받는다.
야마모토 씨는 보고서에 나오는 학살 장소를 직접 답사하면서 연구해 왔고,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2021년 세상을 떠난 강씨와 공저 형태로 책을 내놨다고 말했다.
야마모토 씨는 "많은 조선인 학살 피해자는 이상할 정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는 학살을 은폐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달 하순부터 이달 초순까지 기자회견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진보 혹은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아사히·마이니치·도쿄 신문이 잇따라 조선인 학살을 인정하고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비판했지만, 일본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야마모토 씨는 간토대지진 50주년이었던 1973년에 요코하마 시내 학교 도서관을 찾았다가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대지진 직후 학생들이 쓴 글을 보고 학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조선인 학살은 부모님께 얼핏 들은 적은 있지만,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도서관에서 접한 글에는 어른이 학살되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대목이 있었어요.
태평양전쟁을 거치고도 타지 않은 여러 글에 학살 관련 기록이 있었죠."
야마모토 씨는 공부를 이어가면서 조선인 학살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과거에는 일본인들이 간토 지방을 덮친 규모 7.9의 강진 탓에 일시적으로 정신이 이상해져서 학살에 가담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 지배를 학살 배경으로 본다고 말했다.
야마모토 씨는 "일본에 저항하는 조선인들의 투쟁 흐름 속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죽여도 된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며 "이러한 경험 또는 체험이 있는 군인들이 간토대지진 전에 일본으로 돌아왔고, 당시 지진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정권이 학살하는 사람들을 제압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계기로 조선인과 중국인 학살이 인종·민족 등의 차이로 집단 박해당한 '제노사이드'였고, 대지진과 학살을 확실히 구분하는 인식이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야마모토 씨는 조선인 학살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표현인 '간토대학살'이 더 널리 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살의 직접적 원인은 지진이었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식민 지배와 일본인이 마음속으로 품었던 차별 의식이 학살을 촉발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야마모토 씨는 "난징대학살이라고 하면 학살의 이미지가 딱 떠오르지 않는가"라며 "몇 년 후에는 간토대학살이라는 말이 정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