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부' 사우디, 땅 팠더니 구리·니켈도 나오네 [원자재 이슈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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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땅에 1700조 광물있다" 개발 추진
돈가방 들고 아프리카, 남미 광산에 투자 러쉬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서쪽으로 약 200㎞ 떨어진 크나이구이야 지역에선 아연·구리 노천 광산 건설이 한창이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5년엔 아연 10만t과 구리 1만t 등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 사업에 대해 "이 광산 연간 생산량이 칠레의 하루 구리 생산량의 3분의 2 남짓한 양이지만, 이는 사우디에서 진행 중인 수 많은 프로젝트 중에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19세기까지 오스만제국 변방의 찢어지게 가난한 작은 토후국이었다. 1차 세계대전을 기회로 독립에 성공했고, 1938년 미국 기업들이 석유를 발견하면서 쓸모없는 사막이 '노다지'가 됐다. 석유 덕분에 10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부자 나라가 되면서, 외국인 노동자에게 일을 맡기고 국민들은 사실상 놀고먹어도 되는 수준이 됐다. 그러나 미국에서 셰일 혁명이 일어나고, 유럽에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석유 사용 중단을 추진하며 위기가 시작됐다. 사우디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광물자원을 확보하고 관련 산업에 투자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부족한 탐사·채굴 기술력은 돈으로 따라잡고 있다. 올해 초 중국 자연자원부와 207억달러(약 27조6000억원) 규모의 10년 계약을 맺고 기술을 제공받아 아라비아 쉴드 지역 자원 종합적인 탐사에 나서기로 했다. 사우디는 지난 7월 일본 미쓰이와 카타르 투자청 등을 물리치고 브라질 광산기업 발레의 구리·니켈 사업부 등 비철금속 부문의 지분 13%를 인수하기도 했다. 국부펀드인 공공투자기금(PFI)과 사우디 광업회사(Ma'aden)은 입찰에서 34억달러(약 4조5000억원)를 내질렀다.
탐사를 시작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도 파격적이다. 사우디 정부는 산업개발펀드를 통해 프로젝트 자금의 최대 75%를 대주기로 했다. 세제 혜택도 주기로 했고, 사업이 대성공해도 '횡재세'는 걷지 않기로 했다. 광물 자원에서 나오는 국가 수입은 특별기금으로 조성해 재투자하기로 했다.
사우디 기업 아일란앤드브라더스는 영국 광산기업 '멕시코 리소스'와 손잡고 사우디 서부의 크나이구이야 등 지역에 140억달러를 투자해 광산을 개발하고, 광물 가공시설을 짓기로 했다. 사우디 서부 해안 얀부 지역에 짓는 아연·구리 가공 공장은 중동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파하드 알레네즈 아일란앤드브라더스의 금속 및 광산 그룹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중국 이외의 유력한 광물·희토류 공급원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우디는 석유를 팔아 부자가 됐으나 낙후된 인권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경제적 영향력에 비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과거 부동산 등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이른바 '졸부'로 치부됐던 상황과 비슷하다. 사우디는 소프트파워를 키우려고 남자프로골프 LIV 리그를 창립해 거액의 상금을 걸고 선수들을 끌어모았으나, 결국 미국프로골프(PGA)와 합병하기로 했다. 사우디가 골프계를 접수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일각에선 "재주는 곰(사우디)이 넘고 돈은 왕서방(미국)이 챙기는 꼴이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축구계에서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네이마르 등 슈퍼스타 선수를 영입하고 있지만 투자에 비해 주목도가 아직 높지 않다.
다만 사우디가 석유 외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준비할 시간은 당초 예상보다 길어질 전망이다. 사우디는 더욱 부자가 되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 반대 목소리 때문에 서구 석유 메이저 기업들이 머뭇거린 덕분에, 러시아와 사우디 등은 큰 반사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석유시장 지배력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람코는 현재 하루 1200만 배럴 수준인 최대 생산능력을 2027년까지 1300만 배럴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2030년까지 천연가스 생산량은 50% 이상 늘리는 게 목표다. 크리스티안 말렉 JP모간 에너지 전략 책임자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서방에선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데 5~10년을 생각했다면, 사우디는 20~30년을 생각하고 전략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돈가방 들고 아프리카, 남미 광산에 투자 러쉬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서쪽으로 약 200㎞ 떨어진 크나이구이야 지역에선 아연·구리 노천 광산 건설이 한창이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5년엔 아연 10만t과 구리 1만t 등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 사업에 대해 "이 광산 연간 생산량이 칠레의 하루 구리 생산량의 3분의 2 남짓한 양이지만, 이는 사우디에서 진행 중인 수 많은 프로젝트 중에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19세기까지 오스만제국 변방의 찢어지게 가난한 작은 토후국이었다. 1차 세계대전을 기회로 독립에 성공했고, 1938년 미국 기업들이 석유를 발견하면서 쓸모없는 사막이 '노다지'가 됐다. 석유 덕분에 10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부자 나라가 되면서, 외국인 노동자에게 일을 맡기고 국민들은 사실상 놀고먹어도 되는 수준이 됐다. 그러나 미국에서 셰일 혁명이 일어나고, 유럽에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석유 사용 중단을 추진하며 위기가 시작됐다. 사우디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광물자원을 확보하고 관련 산업에 투자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광물자원 개발에 돈 쏟는 사우디
사우디가 광물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아프리카와 남미 등 전세계 자원 부국의 주요 광산에 투자하는 한편 자국 광물자원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우디 서부의 이른바 '아라비아 쉴드'(아랍의 방패) 지역에 1조3000억달러(약 1700조원) 가량의 광물이 묻혀있다고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개발에 나섰다. 광물자원 개발은 사우디의 미래 계획인 '비전 2030'에 포함된 이른바 '세 개의 기둥'의 하나다. 석유, 석유화학과 함께 광물자원이 핵심 미래산업이란 얘기다. 사우디는 구리 뿐 아니라 우라늄과 인산염 등 다양한 광물자원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부족한 탐사·채굴 기술력은 돈으로 따라잡고 있다. 올해 초 중국 자연자원부와 207억달러(약 27조6000억원) 규모의 10년 계약을 맺고 기술을 제공받아 아라비아 쉴드 지역 자원 종합적인 탐사에 나서기로 했다. 사우디는 지난 7월 일본 미쓰이와 카타르 투자청 등을 물리치고 브라질 광산기업 발레의 구리·니켈 사업부 등 비철금속 부문의 지분 13%를 인수하기도 했다. 국부펀드인 공공투자기금(PFI)과 사우디 광업회사(Ma'aden)은 입찰에서 34억달러(약 4조5000억원)를 내질렀다.
탐사를 시작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도 파격적이다. 사우디 정부는 산업개발펀드를 통해 프로젝트 자금의 최대 75%를 대주기로 했다. 세제 혜택도 주기로 했고, 사업이 대성공해도 '횡재세'는 걷지 않기로 했다. 광물 자원에서 나오는 국가 수입은 특별기금으로 조성해 재투자하기로 했다.
사우디 기업 아일란앤드브라더스는 영국 광산기업 '멕시코 리소스'와 손잡고 사우디 서부의 크나이구이야 등 지역에 140억달러를 투자해 광산을 개발하고, 광물 가공시설을 짓기로 했다. 사우디 서부 해안 얀부 지역에 짓는 아연·구리 가공 공장은 중동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파하드 알레네즈 아일란앤드브라더스의 금속 및 광산 그룹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중국 이외의 유력한 광물·희토류 공급원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졸부 사우디,"다시는 가난한 토후국으로 돌아가지 않아"
사우디 땅에서 구리 등 자원이 발견되긴 했지만 석유만큼의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95%가 사막인 사우디에서 광맥을 발견한다고 해도 외딴 지역이면 인프라를 건설하는 비용 때문에 경제성이 낮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사우디가 자국 내 광물 자원 개발에 매달리는 것은 유한한 자원인 석유에만 의존해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사우디는 석유를 팔아 부자가 됐으나 낙후된 인권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경제적 영향력에 비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과거 부동산 등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이른바 '졸부'로 치부됐던 상황과 비슷하다. 사우디는 소프트파워를 키우려고 남자프로골프 LIV 리그를 창립해 거액의 상금을 걸고 선수들을 끌어모았으나, 결국 미국프로골프(PGA)와 합병하기로 했다. 사우디가 골프계를 접수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일각에선 "재주는 곰(사우디)이 넘고 돈은 왕서방(미국)이 챙기는 꼴이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축구계에서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네이마르 등 슈퍼스타 선수를 영입하고 있지만 투자에 비해 주목도가 아직 높지 않다.
다만 사우디가 석유 외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준비할 시간은 당초 예상보다 길어질 전망이다. 사우디는 더욱 부자가 되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 반대 목소리 때문에 서구 석유 메이저 기업들이 머뭇거린 덕분에, 러시아와 사우디 등은 큰 반사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석유시장 지배력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람코는 현재 하루 1200만 배럴 수준인 최대 생산능력을 2027년까지 1300만 배럴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2030년까지 천연가스 생산량은 50% 이상 늘리는 게 목표다. 크리스티안 말렉 JP모간 에너지 전략 책임자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서방에선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데 5~10년을 생각했다면, 사우디는 20~30년을 생각하고 전략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