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 "화장실 나올 땐 다르다"…보호예수·콜옵션 꼼수 활용하는 대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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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보호예수제도 틈 노린 일부 대주주

아무런 제재 없이 374억원의 현금 챙겨
전환사채 콜옵션 활용…승계나 매도용 지분 확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무리 대주주라도 주가가 예상보다 높게 오르면 현금화하고 싶죠."

최근 코스닥 상장사의 최대주주이자 최고경영책임자(CEO)인 A씨는 사석에서 "친인척 등 대주주의 특수관계인들이 주식 일부를 매도해 차익실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회사 경영과 무관한 특수관계인의 주식과 대주주의 주식 매각은 의미가 다르다. 시장에선 회사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대주주가 주식을 매각한 것을 놓고 주가가 고점을 찍었다고 받아들인다.

대주주가 보유 주식을 현금화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기업공개(IPO)나 회사 매각 때 구주 매출로 현금을 만질 수 있다. 구주 매출은 기존 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파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대주주는 주식담보 대출을 통해 일부 주식을 현금화한다. 주식담보 대출의 경우 이자 등의 비용이 발생, 자칫 담보 하락 시 반대매매 등 담보 처분 위험도 있다. 대주주는 보유 지분과 관련해 현금화하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둔다. 일부 대주주는 돈에 눈이 멀어 투자자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기도 한다.

보호예수 약속 어기고 주식 판 대주주…의무와 자발적 차이

IPO 직후 보호예수 기간을 지키지 않고 지분 일부를 팔아치우는 대주주도 있다. 보호예수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다. 상장 주식은 현금화가 쉽다. 따라서 상장과 동시에 최대주주 측이 차익 실현을 위해 지분을 팔 가능성이 높다. 급작스러운 지배구조 변동과 오버행(잠재적 대량 매도물량) 이슈를 방지하고자 의무 보유 기간을 둔다.

투자자들은 보호예수에서 '의무'와 '자발적'의 차이를 알아둬야 한다. 통상 신규 상장에서 대주주 측 지분은 6개월가량의 의무 보유기간이 설정된다. 여기에 자발적 보호예수를 약속하는 것은 상장 당시 주가 변동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단기간 내 최대주주가 차익 실현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강력하게 표명함으로써 공모주 흥행을 노리는 것. 아울러 지배구조 변동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잠재울 수도 있다. 예비 상장사들은 IPO를 통한 대주주의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금융당국은 자발적 보호예수를 지키지 않은 사안에 대해 1년 추가 보호예수 적용 외에 직접적인 제재는 없다는 입장이다. 자발적 보호예수 조치는 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 지배주주 측의 주식 보유와 부양 의지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투자자들도 깊은 신뢰를 보낸다.

일부 대주주는 상장 이후 약속과 다르게 행동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 처럼 행동한다. 2019년 한컴그룹 오너일가 자발적 보호예수 위반에 이어 올 들어서는 윤성에프앤씨의 최대주주인 박치영 대표가 상장 당시 약속했던 보호예수를 지키지 않고 지분 일부를 처분했다.

박 대표는 주당 18만~19만원대에 주식을 팔아 374억원을 현금화했다. 공모가 대비 4배가량의 차익을 챙긴 것이다. 이번에 매각한 지분은 2대주주인 프리미어루미너스사모투자합회사(프리미어루미너스) 측에 넘겼던 지분 중 일부를 콜옵션 권리 행사로 되사와 매각한 것이다. 상장 당시 약속했던 2년 6개월간의 보호예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윤성에프앤씨 주가가 올 들어 공모가 대비 4~6배가량 급등하자 대주주가 욕심을 낸 것이다. 최대주주가 주식을 팔아치우는 것은 불법행위가 아니다. 문제는 상장 당시 약속과 다르게 행동한 점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가만히 앉아 오버행 등의 악재를 맞이하는 상황에 놓였다.

보호예수 약속은 선심성 호의가 아니다. 증권신고서를 통해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사안이다. 보호예수 의무를 위반했지만, 감독기관은 제재가 마땅치 않다는 입장이다. 자발적으로 보호 예수를 약속한 탓에 법률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윤성에프앤씨 대주주는 보호예수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데도 아무런 제재 없이 374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이 때문에 자발적 보호예수 제도 자체가 실효성이 없는 보여주기식 투자자 보호장치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CB 콜옵션으로…승계나 매도용 주식 확보하기도

일부 상장사의 대주주는 머리를 굴린다. 제이스텍이나 유유제약이 그러하다. 전환사채(CB)의 콜옵션을 통해 현 주가보다 싸게 주식을 되사온다. 콜옵션 행사 대상자를 대주주나 오너일가가 대표로 있는 비상장사로 지정하기도 한다. 승계 지분이나 추후 주가가 오를 경우 장내 매도할 주식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다.

제이스텍은 2021년 7월 'SKS-요즈마 신기술투자조합 제1호'를 대상으로 190억원 규모의 1회차 CB를 발행했다. 제이스텍 1회차 CB에는 콜옵션 30%가 책정됐다. 발행 당시 미정이던 콜옵션 행사 대상자는 올 연초 대주주의 특수관계인 '제이스에너지솔루션'으로 결정됐다. 이로써 제이스에너지솔루션은 30% 콜옵션 행사 대가로 권면총액·이자 등 59억원을 치르고 제이스텍 1회차 CB를 취득했다.

전환권 행사 시 제이스텍 지분 86만3636주를 시세보다 14억원가량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권리다. 눈에 띄는 점은 제이스에너지솔루션이 제이스텍 오너 2세인 정모 상무가 50%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 겸 대표로 있는 곳이다. 시장에선 제이스텍의 승계 작업이 연내 본격적인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유유제약도 지난 5월 245억원 규모의 31회차 사모 CB를 발행했는데, 콜옵션 조항이 눈길을 끈다. 콜옵션 조건에 대한 세부 내용을 보면 CB의 30%까지 유유제약 또는 유유제약이 지정하는 제3자에게 매도하도록 청구할 수 있다. 이때 제3자는 '최대주주 및 그 특수관계자'다. 업계에서는 이번 CB가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쓰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대주주 입장에서 메자닌 채권은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꼽힌다. 주가 하락 시기에 전환청구권을 행사해 비교적 적은 돈으로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증여세 등 각종 세금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