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섭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인터뷰



"정신질환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볼 거란 두려움을 느껴요.

대부분 치료를 받으면서 잘 회복하고 있는데도요.

정신질환 없는 일반인들은 범죄 안 일으키나요? 정신질환은 사회악이 아니에요.

"
신림역 흉기 난동, 서현역 흉기 난동 등 '묻지마 흉악범죄'가 잇따르면서 '중증 정신질환자는 예비 범죄자'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오강섭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정신질환자를 범죄자로 낙인찍는 인식을 절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정신질환이 치료받고 회복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병이고, 오히려 편견과 낙인이 정신질환자들을 힘들게 한다고 했다.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오 이사장을 만났다.

[인턴액티브] "흉기난동 막으려면 정신질환자 입원이 답?"…전문의에게 물었다
◇ "정신질환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의 대상"
오 이사장은 "대부분의 언론이 흉기 난동 사건을 보도할 때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를 부각하고 있다"며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병이기 때문에,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 잇따른 흉기 난동으로 정신질환자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 조현병은 국민의 약 0.9∼1%가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하는 병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모든 정신질환자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치료만 잘 받으면 아무 일 없이 지낼 수 있다.

전문의 32년 차가 됐는데, 여러 번 자살 시도할 정도로 질환이 극심했던 환자도 지금은 너무나 잘 지내고 있다.

그들은 잘 치료받았기 때문에 현재의 삶이 가능한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예비 범죄자라고 낙인을 찍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환자가 너무나 평온하게 치료받으며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일부 치료받지 않은 중증 환자들이 어떤 사건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 최근 흉기 난동 피의자들도 치료만 제때 받았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보나.

▲ 병에 의한 것이라면 치료만 잘 받았어도 일탈행동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조현병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환청이 들리는데 스스로 그게 병인지 모른다.

많은 사람이 나를 공격한다는 피해망상을 겪고 반격하려고 든다.

그래서 정신질환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다.

[인턴액티브] "흉기난동 막으려면 정신질환자 입원이 답?"…전문의에게 물었다
-- 정신질환자가 범죄에 이르는 과정은 무엇인가.

▲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공격성이 있다.

스트레스가 병이 되면 방어기제가 무너지면서 공격성이 자기한테 가거나 타인에게 가게 된다.

자살과 타살의 뿌리는 비슷하다.

최근 일어난 흉기 난동은 공격성이 다른 사람에게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잘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만 너무 부각하면 안 된다.

그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지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한다.

◇ "중증 정신질환 지속 치료 지연시킨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심판원 필요해"
오 이사장은 정신질환 치료가 지연되면 병이 만성화돼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며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심사하는 '정신건강심판원' 설립을 주장한다.

정신과 의사뿐만 아니라 인권 전문가, 사회복지사, 판사 등이 모여 환자의 입원 적합성을 함께 심사하자는 것이다.

-- 중증 정신질환자의 지속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환자 본인이 입원을 거부하면 강제로 입원시키기가 까다로워졌다.

비자의 입원(강제 입원)을 하면 2주 후 입원 적합성 심사 받아 입원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데,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퇴원시키는 경우도 많다.

급성기에 치료가 지연되면 중증이 되고 만성화된다.

이번 기회에 정신건강복지법의 입원 조항을 손봐야 한다.

-- 입원 적합성 심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 환자를 2주 동안 지켜본 주치의가 아니라 외부 병원의 의사가 입원 적합성 심사를 한다.

심사에서 해당 환자가 계속 입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환자가 퇴원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 그러면 누가 정신질환자의 입원 심사를 맡아야 하나.

▲ 더 많은 사람, 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서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심사하는 '정신건강심판원'이 필요하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정신과 의사, 인권 전문가, 판사, 변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모여 환자의 입원 적합성을 심사하는 것이다.

최종적인 판단은 물론 판사가 내리는 게 맞다.

-- 인터넷 커뮤니티 '우울증 갤러리'를 보면, 정신질환자를 다 잡아갈 것 같아 불안하다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하지는 않나.

▲ 주치의가 정신질환자의 중증, 경증, 입원 여부 판단을 결정해야 한다.

일부에서 전문가를 못 믿겠다는 의견도 나오는데, 그러면 앞서 말한 것처럼 전문가를 여러 명 두면 된다.

-- 중증 정신질환자의 정도는 어떻게 구별하나.

▲ 자해·타해의 위험이 있는 사람이 중증이다.

망상이나 환각에 의해서 자기 행동이 좌지우지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누구를 죽여라" 같은 환청을 듣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은 굉장히 중증이라고 봐야 한다.

◇ "정신질환의 치료권도 인권…환자 자립 지원하는 예산 늘려야"
-- 일부는 정신질환자를 "그냥 다 입원시켜라" "치료가 뭐가 중요하냐"고 말하는데.
▲ 그건 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급성기, 중증 환자에게 입원 치료가 필요한 건 맞지만 모든 사람이 장기 입원해야 하는 건 아니다.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서 입원이 필요한지 또 얼마 동안 입원하는 게 좋은지 결정할 수 있다.

[인턴액티브] "흉기난동 막으려면 정신질환자 입원이 답?"…전문의에게 물었다
-- 강제 입원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환자들도 있다.

▲ 자신의 안전권, 치료권도 인권이다.

자유와 인권의 정의도 우리가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아프면 치료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과거에 형제복지원 사건처럼 만성 정신병 환자들이 제대로 된 인권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인권침해를 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러면서 정신병 환자들이 입원하는 만성 병원이 제대로 일하고 있는가 하는 의심이 생긴 것이다.

이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지금은 환자들이 병원에 요구하는 개선사항을 인권위원회로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병원 안에서 정신질환자의 인권이 침해될 가능성은 상당히 적다.

-- 정신질환자가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의료기관 등에서 의무적으로 외래 치료를 받도록 하는 '치료명령제', 환자가 거부하면 그만 아닌가.

▲ 서양은 환자가 치료받지 않으면 찾아가서 약을 잘 먹는지 일일이 확인한다.

우리도 충분한 인력과 제도가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지금 중증 환자를 위해 각 지역에 정신보건센터, 정신건강증진센터가 있는데 문제는 각 기관의 중증 환자 등록률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환자가 거부하면 강제로 등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 정신질환자의 자립을 위해서는.
▲ 복지가 좋은 선진국은 정신질환자의 주거까지도 책임진다.

이 병을 오래 앓다 보면 직장생활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정신질환자의 경제적 문제도 생기니까 그들에 대한 주거나 경제적 지원까지 재활 중 하나로 보고 지원하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이 취직도 시켜주고, 수입도 고정적인 월급으로 받고 주거까지 지원해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자의 자립을 돕는 예산이 너무 부족하다.

◇ "우울과 불안은 당연한 감정…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개선 노력해야"
-- 흉기 난동과 살해 협박이 이어지면서 많은 이삼십 대 여성들이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는데.
▲ 모든 정신질환을 예비 범죄자로 취급하면 안 되고 모든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물론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더 주는 게 더 문제다.

어디든지 사건 사고는 있다.

불이 났다고 해서 가스 불도 안 켜고 밥 안 먹고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나.

그런 것처럼 의연하게 대처하고 잘 이겨내야지, 공포감에 떨기만 하면 안 된다.

-- 흉기 난동 사건이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혐오 사회로 변했기 때문인가.

▲ 전체적으로 그런 건 아니다.

혐오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좋은 사람과 많은 선행이 있다.

길에서 누가 쓰러지면 달려와서 구해주는 선인들이 있다.

그것처럼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기분은 전염성이 있다.

우울한 사람이 자꾸 우울한 이야기를 하면 옆 사람도 우울해진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울하고 화나는 부분도 있지만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고 좋은 사람도 많이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그렇다면 부정적 감정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나.

▲ 우울과 불안이 없는 삶은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나도 어느 순간은 우울할 때가 있다.

적당한 우울함이 때론 생존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우울한 감정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감정을 개선할 수 있는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친구, 가족 등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적당한 운동과 취미생활을 통해서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는 게 좋다.

우울감이 인간이라면 겪는 정상 반응이라는 걸 기억하고, 스스로 벗어나기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권하고 싶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