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주도적으로 계획·실행…고의성 인정돼"
'캠핑장 민간인 불법도청' 국정원 수사관들 징역형 집행유예
민간인을 상대로 불법 도청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정원 수사관들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김동현 부장판사)는 31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 국정원 수사관 A(46)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1년간의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전 국정원 수사처 과장 B(57)씨 등 3명에게는 모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수사관들이 법률상 허용되지 않은 타인 간 사적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직무의 특성상 피고인들은 이런 위법행위를 조심해야 한다"며 "단순한 과실이나 실수에 의한 범죄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A씨 등은 지난 2015년 충남 서산시의 한 캠핑장에서 '지하혁명조직'의 총화(신규 조직원의 적격성 확인 절차)가 진행된다는 제보를 받고 비밀 녹음장비를 설치해 대화를 녹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제보자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녹음장치를 설치해줬을 뿐 녹음을 주도하지 않았고, 제보자가 참여하는 대화만 녹음할 목적이었기 때문에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당시 작성한 현장 활동 계획이나 녹음파일의 증거능력과 관련된 보고서 등을 고려하면, 비밀 녹음장치의 제작·설치와 녹음 실행을 국정원 내부에서 주도적으로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들은 비밀 녹음장치 특성상 제보자가 참여하지 않는 대화가 무작위로 녹음될 수 있다는 사정을 인식하고 증거능력에 대한 문제를 사전에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필적으로나마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20∼30년 이상 국정원 직원으로 근무하며 다수의 국정원장·국무총리·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모범적으로 공무원 생활을 해온 점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