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비대칭 '끝판왕' 차량 수리 시장 혁신하겠다는 이 회사 [그래서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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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투자했다 (13)
한주기 CJ인베스트먼트 책임심사역
한주기 CJ인베스트먼트 책임심사역
한경 긱스(Geeks)의 [그래서 투자했다]는 벤처캐피털(VC)이나 액셀러레이터의 투자심사역이 발굴한 스타트업과 투자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오늘은 한주기 CJ인베스트먼트 책임심사역이 자동차 수리 플랫폼 '닥터차'를 운영하는 오토피디아에 투자한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세상에는 정보가 비대칭적인 시장이 정말 많다. 그 중 '끝판왕'은 자동차 수리 시장이다. 뇌피셜이 아니다. 데이터가 보여주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서 평가한 ‘2021 한국의 소비자시장 평가지표’에 따르면, 자동차수리서비스는 전체 21개 분야 중 꼴찌다. 매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어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필연적으로 거대 플랫폼이나 서비스가 생길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이유다. 차주들이 마주치는 문제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일단 자동차의 어딘가가 고장나거나, 엔진오일 등 소모품을 교체해야 될 때가 있다. 사고가 나서 문이 긁히거나, 범퍼가 찌그러질 수도 있다. 이럴 때 운전자들이 취하는 행동은 다음과 같다. (1) 네이버 카페나 블로그 찾아보기 (2) 유튜브 검색하기. 그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주변에 자동차를 잘 아는 지인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천차만별인 개인의 상황에서 정확한 처방전을 얻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즉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자동차에 대해 무지하며, 고장·사고 등의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정보의 한계라는 벽에 부딪힌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회사가 오토피디아다.
첫 눈에 반했던 만남
오토피디아와의 첫 만남은 지난해 4월이다. 사실 회사는 투자 유치를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이 문제를 풀고 있는 스타트업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리서치를 통해 회사의 존재를 알게 된 뒤 미팅을 요청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토피디아에서 IR을 담당하는 김상연 부대표와 줌미팅을 진행했다. 미팅 이후, 소위 ‘각이 나온다’라는 느낌을 받았다.얼른 김병근 대표를 만나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저녁식사 자리를 요청했다. 김병근 대표와 김상연 부대표가 만나게 된 인연, 김병근 대표가 개발자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KAIST 4총사를 영입하게 된 이야기(결국 공동창업자가 됐다!)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서 ‘이 대표님은 찐이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자동차 수리 시장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때부터 김병근 대표와 김상연 부대표에게 투자 라운드를 열자고 말씀드렸고, 반드시 투자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럼 오토피디아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일까? 정형외과, 산부인과, 안과 등 전문 분야에 따라 전문의가 있는 것처럼, 자동차 정비소(공업사)도 분야별로 전문성이 뛰어난 곳들이 있다.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정보다. 차량의 상태를 진단하고, 해당 영역에 강점이 있는 정비소를 맞춤형으로 추천해주는 게 오토피디아의 사고수리 플랫폼 ‘닥터차’의 핵심 모델이다.
소비자가 문제 있는 차량의 이미지나 영상을 닥터차 앱에 업로드하면, 오토피디아가 보유한 10명 이상의 정비 기능장들이 차량 문제가 무엇인지 꼼꼼히 분석한다. 이후 소비자와 가까운 지역의 정비소들 중 최적의 업체를 선정해 예상 비용까지 함께 추천한다. 비용이 얼마나 나올지, 이 비용이 맞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자동차 수리 시장에서 여간 반가운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모든 과정이 무료다. 수수료가 0원? 자동차 정비소 사장님들도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진단 및 정비소 추천이 무료라면, 당연히 정비소나 공업사 측에서 수수료를 취하는 구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정비소 사장님도 플랫폼 이용료는 없다. 그럼 닥터차는 어떻게 돈을 벌까?
자동차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유통한다. 범퍼, 보닛, 도어, 사이드미러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즉, 닥터차는 단순히 고객과 정비소를 매칭시켜주고 수수료를 받는 일반적인 플랫폼의 구조가 아니다.
사실 자동차 수리 시장의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려는 서비스가 세상에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 서비스들은 소비자와 정비소 양쪽의 만족도가 모두 낮았다. 실제로 기존 플랫폼 사용 경험이 있던 지인들에게 후기를 들어보니 불편한 점이 명확했다.
일례로 기존 플랫폼들은 역경매로 들어온 정비소들 중 가격이 저렴한 곳을 소비자가 선택하고, 결국 3~4곳을 직접 방문해서 실제 가격을 들어봐야 하는 구조였다. 더구나 실제로 방문해보면 플랫폼에서 제시했던 가격보다 더 비싸진다는 점이 문제였다. 즉, 제시한 가격은 미끼일 뿐이다. 하지만 정비소 사장님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일단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정보 비대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닥터차는 동일한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고 있었다.
정비소 탐방으로 생긴 확신
소비자 인터뷰를 통해 기존 서비스의 한계를 파악했다면, 정비소를 방문해보면서 닥터차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결론적으로, 정비소 입장에서 닥터차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정비소 입장에서 보면, 닥터차는 고객을 유치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어떤 수수료도 지급하지 않지만, 닥터차는 망가진 차를 입고시켜준다. 수입차의 경우 사고수리 평균 비용이 약 300만원에 달한다. 닥터차가 사고 난 수입차를 한 달에 3대만 입고시켜줘도, 정비소 입장에서는 1000만원에 가까운 매출 상승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통상적인 정비소의 규모를 감안했을 때 매우 의미 있는 매출 증가다.
서울 금천구의 한 자동차공업사를 찾아가서 인터뷰를 해보니, 닥터차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무료로 사고차를 입고시켜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다보면 공업사 사장님은 닥터차가 유통하는 부품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다. 일종의 감사 표시다. 어차피 공업사 입장에서는 동일한 자동차 부품을 소싱하는 것이니, 닥터차에서 부품을 사오더라도 손해 보는 것이 전혀 없다. 소비자-공업사-닥터차가 모두 '윈윈'하는 아름다운 구조다. 자동차 수리 시장의 심각한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려는 팀은 많다. 더구나 이 시장이 엄청난 '하이 테크' 기술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접근해볼 수 있는 사업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팀은 지금은 닥터차가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IT 역량뿐만 아니라 업에 대한 높은 이해력과 네트워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닥터차를 창업한 김병근 대표는 20년 넘게 자동차 애프터마켓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업계 전문가다. 김 대표는 닥터차 서비스를 개시하기 전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4만 곳의 자동차 정비소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했으며, 그 중 항목별 우수 업체를 중심으로 제휴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김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특정 분야의 수술을 잘하는 의사들이 있듯이 특정 분야의 정비를 잘하는 정비소가 있다고 한다. 오랜 기간의 경험과 네트워크 없이는 알 수 없는 정보다.
닥터차가 그리는 '큰그림'은
요약하면 소비자가 문제 있는 차량 사진과 동영상을 앱에 올리면 닥터차가 무료로 처방전을 제공하고, 추천한 정비소에 차가 입고되면 닥터차는 필요한 부품을 유통해 수익을 얻는 구조다.하지만 자동차 사고 수리와 부품 유통은 시작일 뿐이다. 이미 1급 공업사를 인수해 '퀀텀모빌리티' 라는 브랜드로 2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직영점을 운영하면서 공업사 운영 체계를 다듬고 매뉴얼화해 가맹 사업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물론 가맹점의 독점 부품 유통은 당연한 수순이다.전국에 공업사·정비소 및 검수센터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중고차 P2P 거래 시장을 조성할 수 있다. 아직 중고차 P2P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는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 자동차 상태에 대한 검증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교한 자동차 평가 시스템에 기반한 차량 진단 및 인증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P2P 거래가 가능할 것이다. 닥터차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 중고차 거래의 혁신을 이끌 날이 머지 않았다. 한주기 CJ인베스트먼트 책임심사역 ㅣ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신영자산운용과 BNK투자증권을 거쳐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에서 기업 분석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이후 2021년 CJ인베스트먼트(옛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에 합류해 투자심사역으로 활동 중이다. 블록체인, AI, 로봇, 사이버보안 등 IT 기반의 테크기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으며, 구조적인 성장 산업을 '톱다운'으로 분석하고 밸류체인 안에서 가장 매력적인 플레이어를 가려내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