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무관심 속 누드달력…호주 女축구엔 있고 한국에 없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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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경력 호주 축구행정가 인터뷰…대표팀 '인지도' 중요성 강조
"한국도 지소연 등 스타 선수 있어…'롤모델' 되도록 힘써야" 24년 전 호주 여자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과감하게 용기를 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스포츠에 쏠리는 관심을 놓치기 싫었다.
이들은 각자 알몸 사진이 담긴 달력을 시장에 내놓았다.
호주여자축구연맹(AWSA)의 워런 피셔 회장도 이 프로젝트를 적극 지지했다.
대표팀은 관심과 돈이 필요했다.
우리나라 아리랑과 같은 국민 민요 '월칭 마틸다'에서 팀의 별칭을 따온 게 1995년이다.
대표팀의 인지도를 조금이라도 높여보겠다고 공모를 통해 '마틸다스'(The Matildas)라는 이름을 받았다.
4년이 흐른 1999년, 여전히 후원은 저조했고 언론 보도도 미미했다.
수당을 받지 못한 채 대표팀 경기를 소화하던 선수들은 뭐라도 하고 싶었다.
일종의 모금 활동인 이 누드 달력 프로젝트는 여자 운동선수의 '성 상품화'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AWSA 이사회 일원이었던 헤더 리드(67) 전 호주축구협회 이사는 이 구상이 탐탁지 않았다.
24년이 지난 지금도 선수들의 '성'을 상품화했다는 생각에 불편하다.
하지만 바닥을 치던 여자대표팀의 대중적 인지도를 단숨에 끌어올린 변곡점과 같은 사건임을 이제는 인정한다.
리드 전 이사는 19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내 우려와 달리 달력이 대단한 충격을 줬다.
마틸다스라는 이름이 세계에 알려졌다"며 "별안간 모든 이가 마틸다스를 이야기하더라"라고 돌아봤다.
그는 40년이 넘게 호주 여자축구에 헌신한 행정가다.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호주축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2018∼2021년 부대표이사직을 포함해 협회 임원으로도 활동했다.
호주 여자축구의 발전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본 리드 전 이사는 아직도 이 달력에 대한 심경이 복잡하다.
사실 선수들이 원하는 수준의 수익은 내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 선수들이 이런 극단적 방법을 쓰지 말았으면 한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리드 전 이사는 이 달력이 '인지도'의 중요성을 보여준 계기라고 짚었다.
리드 전 이사는 "24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가 호주 여자대표팀을 안다.
브랜드의 힘이 계속 강해지고 있다"며 "달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후 선수들이 주류 언론·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더 많이 대중에 노출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호주 여자축구는 이후 꾸준히 성과를 보였다.
2003년 미국 월드컵까지는 출전하기만 하면 조별리그에서 떨어졌지만, 2007년 중국 대회부터 3회 연속 8강행을 이뤘다.
주목할 점은 호주 여자 대표팀이 성적 이상의 '이름값'을 쌓았다는 사실이다.
호주에서는 축구보다 럭비나 호주식 풋볼이 인기다.
그런데 2019년 시장조사 기관 트루 노스 리서치 조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가대표팀으로 뽑힌 건 여자 축구팀이었다.
한 번도 전 세계에서 수위를 차지해본 적 없는 여자 축구팀이 '국민팀'의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리드 전 이사는 "샘 커(첼시), 엘리 카펜터(올랭피크 리옹) 등 선수들이 해외에 진출하면서 끌어오는 주목도도 상당하다.
또 이번 월드컵 유치에 나서면서 대중에 많이 언급됐다"며 "스페인, 프랑스와 같은 강호들을 호주로 불러 평가전도 자주 치렀다"고 전했다.
이어 대표팀이 대중의 눈에 최대한 포착되고, 선수들도 '롤모델'로서 인식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가 꼽은 모범 사례는 모로코의 누하일라 벤지나였다.
벤지나는 이번 호주·뉴질랜드 월드컵 조별리그 한국전에서 히잡을 쓰고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이는 월드컵 사상 최초다.
리드 전 이사는 이를 통해 벤지나가 일부 무슬림 여성에게 롤모델로 '승화'됐을 것이라 봤다.
아울러 월드컵뿐 아니라 개별 선수의 해외 진출 자체도 이를 위한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리드 전 이사는 "호주 국가대표급 선수 중 30명 정도가 해외에서 뛰는 것으로 안다.
예전에는 진출할 리그가 미국뿐이었지만, 이제는 잉글랜드 여자슈퍼리그(WSL)도 커지고 있다"며 "이외 다른 나라도 투자를 늘리는 만큼 기회가 늘어난 셈"이라고 해설했다.
그러면서 한국 여자축구의 간판 지소연(수원FC)을 언급했다.
리드 전 이사는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보여준 축구 스타일, 결의 등에 감명받았다"며 "첼시(잉글랜드)에서 뛴 지소연과 같은 스타 선수들에게 (대중이) 본받을 만한 점이 분명히 있다"고 밝혔다.
리드 전 이사는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 선수가 1천500명가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그는 "한국은 정상급 여자 선수들이 해외에서 뛰지 않나.
'축구의 나라'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곳인데, 내가 받은 인상과는 (현실이) 너무 다르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 여자축구는 호주와 양상이 다르다.
2015년 최초로 월드컵 16강에 올랐지만, 이후 선수 수는 점차 줄어드는 터라 회의론도 고개를 든다.
조소현(무소속)은 1-1 무승부로 끝난 독일전을 이틀 앞둔 지난 1일 "월드컵 16강 진출로 성적을 냈을 때 선수 규모가 1천700명 정도였던 것 같은데, 더 줄었다"며 "이게 현실이다.
성적을 내도 상황이 달라질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리드 전 이사는 여자축구의 어려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호주축구협회가 주창하는 '동일 상금' 등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호주는 전 세계적으로 월드컵 상금이 남녀 선수들에게 같은 액수만큼 배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은 남녀 축구의 시장성 격차가 엄연한 만큼 시기상조라 본다.
리드 전 이사는 단순히 현재 시장성만 생각해 '행동'을 망설인다면 변화도 없다고 했다.
그는 "아직 여자 축구 시장이 크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있다.
반면 남자축구는 발전의 한계 지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며 "(영국, 프랑스 등에서) 여자축구가 50년가량 금지되지 않았다면, 지금 어느 정도로 커졌을지 상상해보라"라고 지적했다.
잉글랜드축구협회 등은 축구가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다며 1920년대 경기장 사용을 금지했다가 1970년대가 돼서야 이를 해제했다.
리드 전 이사는 호주 여자축구의 성공이 '시장'에 구애받지 않는 사고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호주축구협회는 2018년 정관을 개정하면서 이사회 인원 구성을 남성(40%), 여성(40%), 제3의 성(20%)으로 구성하도록 했다"며 "대한축구협회도 여자축구에 투자, 지원할 때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여자축구 발전이)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이를 위해 싸울 만한 사람들이 한국에도 충분히 있다.
스스로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낼 스타 선수들과 함께 변화를 시작해보라 권하고 싶다"며 "스포츠는 사회를 반영한다"고 덧붙였다.
누드 달력 이후 24년간 내실을 다진 호주 여자축구는 결국 '대박'을 쳤다.
잉글랜드와의 이번 월드컵 4강전이 호주 전역에서 700만명이 넘은 시청자를 끌어모아 2001년 집계 이후 최다 기록을 썼다.
현장도 흥행에 성공했다.
호주가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치른 3경기 모두 전 좌석이 동났다.
아일랜드와 개막전, 덴마크와 16강전, 잉글랜드와 4강전 모두 최대 수용 관중인 7만5천784명이 찾았다.
/연합뉴스
"한국도 지소연 등 스타 선수 있어…'롤모델' 되도록 힘써야" 24년 전 호주 여자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과감하게 용기를 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스포츠에 쏠리는 관심을 놓치기 싫었다.
이들은 각자 알몸 사진이 담긴 달력을 시장에 내놓았다.
호주여자축구연맹(AWSA)의 워런 피셔 회장도 이 프로젝트를 적극 지지했다.
대표팀은 관심과 돈이 필요했다.
우리나라 아리랑과 같은 국민 민요 '월칭 마틸다'에서 팀의 별칭을 따온 게 1995년이다.
대표팀의 인지도를 조금이라도 높여보겠다고 공모를 통해 '마틸다스'(The Matildas)라는 이름을 받았다.
4년이 흐른 1999년, 여전히 후원은 저조했고 언론 보도도 미미했다.
수당을 받지 못한 채 대표팀 경기를 소화하던 선수들은 뭐라도 하고 싶었다.
일종의 모금 활동인 이 누드 달력 프로젝트는 여자 운동선수의 '성 상품화'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AWSA 이사회 일원이었던 헤더 리드(67) 전 호주축구협회 이사는 이 구상이 탐탁지 않았다.
24년이 지난 지금도 선수들의 '성'을 상품화했다는 생각에 불편하다.
하지만 바닥을 치던 여자대표팀의 대중적 인지도를 단숨에 끌어올린 변곡점과 같은 사건임을 이제는 인정한다.
리드 전 이사는 19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내 우려와 달리 달력이 대단한 충격을 줬다.
마틸다스라는 이름이 세계에 알려졌다"며 "별안간 모든 이가 마틸다스를 이야기하더라"라고 돌아봤다.
그는 40년이 넘게 호주 여자축구에 헌신한 행정가다.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호주축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2018∼2021년 부대표이사직을 포함해 협회 임원으로도 활동했다.
호주 여자축구의 발전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본 리드 전 이사는 아직도 이 달력에 대한 심경이 복잡하다.
사실 선수들이 원하는 수준의 수익은 내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 선수들이 이런 극단적 방법을 쓰지 말았으면 한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리드 전 이사는 이 달력이 '인지도'의 중요성을 보여준 계기라고 짚었다.
리드 전 이사는 "24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가 호주 여자대표팀을 안다.
브랜드의 힘이 계속 강해지고 있다"며 "달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후 선수들이 주류 언론·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더 많이 대중에 노출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호주 여자축구는 이후 꾸준히 성과를 보였다.
2003년 미국 월드컵까지는 출전하기만 하면 조별리그에서 떨어졌지만, 2007년 중국 대회부터 3회 연속 8강행을 이뤘다.
주목할 점은 호주 여자 대표팀이 성적 이상의 '이름값'을 쌓았다는 사실이다.
호주에서는 축구보다 럭비나 호주식 풋볼이 인기다.
그런데 2019년 시장조사 기관 트루 노스 리서치 조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가대표팀으로 뽑힌 건 여자 축구팀이었다.
한 번도 전 세계에서 수위를 차지해본 적 없는 여자 축구팀이 '국민팀'의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리드 전 이사는 "샘 커(첼시), 엘리 카펜터(올랭피크 리옹) 등 선수들이 해외에 진출하면서 끌어오는 주목도도 상당하다.
또 이번 월드컵 유치에 나서면서 대중에 많이 언급됐다"며 "스페인, 프랑스와 같은 강호들을 호주로 불러 평가전도 자주 치렀다"고 전했다.
이어 대표팀이 대중의 눈에 최대한 포착되고, 선수들도 '롤모델'로서 인식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가 꼽은 모범 사례는 모로코의 누하일라 벤지나였다.
벤지나는 이번 호주·뉴질랜드 월드컵 조별리그 한국전에서 히잡을 쓰고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이는 월드컵 사상 최초다.
리드 전 이사는 이를 통해 벤지나가 일부 무슬림 여성에게 롤모델로 '승화'됐을 것이라 봤다.
아울러 월드컵뿐 아니라 개별 선수의 해외 진출 자체도 이를 위한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리드 전 이사는 "호주 국가대표급 선수 중 30명 정도가 해외에서 뛰는 것으로 안다.
예전에는 진출할 리그가 미국뿐이었지만, 이제는 잉글랜드 여자슈퍼리그(WSL)도 커지고 있다"며 "이외 다른 나라도 투자를 늘리는 만큼 기회가 늘어난 셈"이라고 해설했다.
그러면서 한국 여자축구의 간판 지소연(수원FC)을 언급했다.
리드 전 이사는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보여준 축구 스타일, 결의 등에 감명받았다"며 "첼시(잉글랜드)에서 뛴 지소연과 같은 스타 선수들에게 (대중이) 본받을 만한 점이 분명히 있다"고 밝혔다.
리드 전 이사는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 선수가 1천500명가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그는 "한국은 정상급 여자 선수들이 해외에서 뛰지 않나.
'축구의 나라'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곳인데, 내가 받은 인상과는 (현실이) 너무 다르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 여자축구는 호주와 양상이 다르다.
2015년 최초로 월드컵 16강에 올랐지만, 이후 선수 수는 점차 줄어드는 터라 회의론도 고개를 든다.
조소현(무소속)은 1-1 무승부로 끝난 독일전을 이틀 앞둔 지난 1일 "월드컵 16강 진출로 성적을 냈을 때 선수 규모가 1천700명 정도였던 것 같은데, 더 줄었다"며 "이게 현실이다.
성적을 내도 상황이 달라질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리드 전 이사는 여자축구의 어려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호주축구협회가 주창하는 '동일 상금' 등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호주는 전 세계적으로 월드컵 상금이 남녀 선수들에게 같은 액수만큼 배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은 남녀 축구의 시장성 격차가 엄연한 만큼 시기상조라 본다.
리드 전 이사는 단순히 현재 시장성만 생각해 '행동'을 망설인다면 변화도 없다고 했다.
그는 "아직 여자 축구 시장이 크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있다.
반면 남자축구는 발전의 한계 지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며 "(영국, 프랑스 등에서) 여자축구가 50년가량 금지되지 않았다면, 지금 어느 정도로 커졌을지 상상해보라"라고 지적했다.
잉글랜드축구협회 등은 축구가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다며 1920년대 경기장 사용을 금지했다가 1970년대가 돼서야 이를 해제했다.
리드 전 이사는 호주 여자축구의 성공이 '시장'에 구애받지 않는 사고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호주축구협회는 2018년 정관을 개정하면서 이사회 인원 구성을 남성(40%), 여성(40%), 제3의 성(20%)으로 구성하도록 했다"며 "대한축구협회도 여자축구에 투자, 지원할 때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여자축구 발전이)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이를 위해 싸울 만한 사람들이 한국에도 충분히 있다.
스스로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낼 스타 선수들과 함께 변화를 시작해보라 권하고 싶다"며 "스포츠는 사회를 반영한다"고 덧붙였다.
누드 달력 이후 24년간 내실을 다진 호주 여자축구는 결국 '대박'을 쳤다.
잉글랜드와의 이번 월드컵 4강전이 호주 전역에서 700만명이 넘은 시청자를 끌어모아 2001년 집계 이후 최다 기록을 썼다.
현장도 흥행에 성공했다.
호주가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치른 3경기 모두 전 좌석이 동났다.
아일랜드와 개막전, 덴마크와 16강전, 잉글랜드와 4강전 모두 최대 수용 관중인 7만5천784명이 찾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