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는 팽이처럼 돌며 솟구치거나 하강하는 양자역학적 성질이 있다. 이를 각각 업스핀, 다운스핀이라고 한다. 스핀을 연구해 산업화를 추진하는 미래 공학을 스핀트로닉스(spin+electronics)라고 부른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단장 이영희 성균관대 석좌교수)은 김필립 미국 하버드대 교수 등과 함께 상온 스핀트로닉스의 핵심 소자로 쓸 수 있는 2차원 자성 반도체를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과학자들은 실리콘 반도체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2차원 자성 반도체를 개발해 왔다. 물질의 자성은 스핀의 방향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스핀 정렬을 조절하면 자성 소재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2차원 자성 소재를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스핀이 풀리며 자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2차원 소재의 굵기는 원자 한 개의 크기에 불과하다.

연구팀은 앞서 2020년 텅스텐셀레늄화합물에 자성 불순물인 바나듐 원자를 주입해 상온에서 강자성을 갖는 2차원 자성 반도체 소재를 개발한 바 있다. 강자성은 외부 자기장이 없어도 자성이 유지되는 성질을 말한다.

연구단은 이번 연구에서 텅스텐셀레늄화합물에 농도 0.1% 바나듐을 주입하면 ‘임의전신잡음’이 생긴다는 것을 처음 확인했다. 임의전신잡음은 반도체 불순물이나 결함 등으로 인해 들렸다 말았다 하는 미세 잡음을 말한다. 음악 볼륨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연구단은 자성 반도체 위아래 쪽에 2차원 신소재 그래핀을 붙여 임의전신잡음 크기를 극대화한 뒤 연구를 지속했다. 그래핀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필립 교수가 이 부분에서 기여했다.

연구단은 이 과정에서 전압에 따라 임의전신잡음 신호가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음전압을 가하면 서로 다른 구역에서 스핀이 같은 방향으로 정렬하며 저항이 커지고, 반대로 양전압을 가하면 스핀이 엇갈리며 저항이 작아졌다는 설명이다.

연구단 관계자는 “전압에 따라 스핀의 방향이 바뀌고 저항을 제어할 수 있는 스핀 스위칭 소자를 구현한 것”이라며 “스핀을 이용해 기기를 켜거나 끄고, 0과 1 논리회로를 구현해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전압 뿐 아니라 자기장이나 온도를 바꿔도 같은 효과를 낸다고 덧붙였다.

이영희 연구단장은 “자성 반도체의 스핀 잡음을 학계에 처음 보고하고 이 신호를 스위칭 소자로 활용한 첫 번째 사례”라며 “2차원 자성반도체를 상온 스핀트로닉스의 핵심 소자로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일렉트로닉스에 실렸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