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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번역기에 대한 의존도가 날로 커져간다. 신통치 않은 어학 실력을 덮어주고 업무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성능이 진일보하여 사전 검색과 자동번역문장 교열의 노역에서도 해방될 날을 기대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찜찜하다. 결국 결과물을 손봐야 하는 번거로움은 빼고도 엉성한 텍스트 이해에 대한 아쉬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기보다는 소외되는 듯한 느낌, 무엇보다 뇌의 언어영역에 백태가 끼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혹 한줌이라도 남아 있을 외국어 능력의 소실을 막으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접 원문을 읽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응용언어학자 로버트 파우저 박사의 <외국어 전파담>은 고대 세계의 중심 언어였던 그리스어, 라틴어, 아랍어, 한문, 마야어, 산스크리트어부터 오늘날의 영어까지, 세계를 주름잡은 말과 글이 어떤 세계사적 배경에서 어떤 경로로 전파, 보급 혹은 강요, 수용되었는지를 재미있게 보여준다.

특히 근대국가의 형성에서 제국주의의 팽창, 그리고 오늘의 글로벌화에 이르는 흐름을 비교적 상세히 톺아보면서 외국어 전파의 주요 국면을 소개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사례도 포함해서. 이런 역사적 맥락에다 세계 각국의 이중언어 사용에 관한 이야기며 외국어 교수법에서의 강조점 변화 같은 점들도 일러주니, 우리의 외국어 사용 현실, 그리고 어학 능력에 대한 강박적 집착을 조금 거리를 두고 살필 수 있게 된다.
사진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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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저자 자신의 ‘외국어 순례기’가 재미있게 읽힌다. <외국어 전파담>과 <외국어 학습담> 모두 미국인인 저자가 한국어로 직접 썼다. 일찍이 고등학생 때부터 외국어를 익히고자 일본과 멕시코에서 홈스테이를 할 정도로 언어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고, 일본어, 한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일부는 대학에서 가르칠 정도의 높은 수준으로 구사하는 천재성의 소유자이건만, 외국어를 익히는 것은 “끊임없는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특히 <외국어 학습담>에서 자신의 학습 내력과 방법을 소상히 밝히면서 몇 가지 도움말도 제공하는데, “외국어 그 자체보다 배우는 행위에 집중”해보라는 것, 성인학습자라면 학습 동기, 목적과 목표, 과거의 학습 경험을 상세하게 적어보는 ‘외국어 성찰’에서 시작해보라는 조언은 요즘 각광받는 메타인지 학습법과도 통하는 데가 있어 보인다.

외국어 학습의 동기를 바꿔보라는 제안도 진지하게 새겨들을 만하다. 이제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 가도 손안의 번역기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어지간히 다 얻을 수 있는 세상, 외국어 학습의 의미는 영어 구사 능력이라는 ‘생존 무기’를 얻는 데 있지 않다. 그러니 외국어를 정복 아닌 향유의 대상으로, 더 깊은 소통의 도구로 삼아보자는 것이다. 유아기부터 영어 공부에 몰두하는 한국인들에게, 이 겸손한 ‘외국어 순례자’는 다른 배움의 가능성과 기쁨을 가리켜 보여준다.

“외국어에 대한 끝없는 관심의 원천은 바로 소통의 즐거움이었다. 소통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기쁨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외국어와 더불어 살게 해줬다. 내가 말하는 새로운 세상이란, 물론 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의 역사, 문화, 가치관, 생활 습관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 문화권에 속한 개인의 발견과 그들의 생각과의 만남이다.” <외국어 전파담> 6쪽(강조는 인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