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조절장애 줄인 '분조장' 일상어 돼
우월한 지위 확인되는 순간 약자에 분노 폭발 '갑질 횡포'
[성난 사람들] ①"네가 뭔데"…순간 분노 못참고 '욱'
과거 정신과 병원에서나 썼을 법한 분노조절장애라는 '증상'은 이제 일상에서도 낯설지 않다.

'분조장'이라는 줄임말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누구나, 어디서나 겪을 수 있는 만연한 현상이 됐다.

그만큼 사소한 일에도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고 타인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이 빈번해졌다는 뜻이다.

조절되지 못한 분노는 학부모와 교사, 아파트 입주민과 경비원, 식당 손님과 사장 등의 관계에서 상대보다 우월한 지위가 확인되는 순간 '갑질 횡포'로 표출되곤 한다.

서울 성북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6년차 교사 A(29)씨는 연합뉴스에 "학교폭력 가해 학생을 지도했다는 이유로 화가 난 학부모로부터 폭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당시 학교까지 찾아온 아이의 아버지는 객관적 사실을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남자애들이 서로 싸울 수도 있지, 교사가 야비하게 지도하냐", "맞은 아이가 졸렬해서 조금 울었던 거 가지고 편파적으로 지도하지 말라"며 고성을 질렀다고 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돌봄전담사인 허모(55)씨도 "다짜고짜 큰소리로 명령하고 화를 내는 학부모들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주로 고령인 데다 고용 형태가 취약한 경비원, 미화원, 관리소 직원 등 아파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향해 화풀이하는 이른바 '약강강약'(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습성)도 흔하다.

직장갑질119가 면접조사를 통해 지난 3월 발표한 '2023 경비노동자 갑질 보고서'에 따르면 68세의 한 아파트 청소 노동자는 한 입주민이 청소 상태를 지적하다가 자신의 멱살을 잡고 관리사무소로 끌고 가는 일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일이 너무 많아 속이 답답하고 불면증이 생겨 약을 처방받고 있다"고 했다.

오전 8시께 분리수거 때문에 차를 옮겨달라고 연락했다가 아침잠을 깨웠다는 이유로 입주민에게 욕설을 듣고 삿대질을 당했다는 69세 경비원의 사례도 있다.

쓰레기통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려 '쓰레기통에 버려달라'고 말했더니 "경비원이 청소하는 건데 왜 뭐라 하느냐"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성난 사람들] ①"네가 뭔데"…순간 분노 못참고 '욱'
손님을 '모셔야'하는 식당과 카페도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환경이다.

지난달 20일 경기 수원시의 한 커피숍에서는 한 40대 남성 고객이 점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다며 컵에 담긴 스무디 음료를 점주의 얼굴에 부어버리는 일이 있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식당의 룸 공간에 노크하지 않고 들어갔다는 이유로 남녀 손님 2명이 욕을 퍼부었다는 사연이 지난달 10일 올라왔다.

작은 일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 심각한 형사 사건으로 번지기도 한다.

지난해 8월 서울 노원구의 한 식당에서 지인과 술을 마시며 정치 이야기를 하던 A씨는 상대가 유튜브에 댓글을 쓰는 것과 관련해 다투게 되자 철제 의자로 그의 머리를 내려쳤다.

특수상해로 기소된 A씨는 결국 지난 4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법원에 분노조절장애 등과 관련해 치료를 꾸준히 받으며 재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지난해 5월 전남의 한 아파트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B씨는 지나가던 50대 여성 C씨가 "흡연 장소에서 담배 피워주세요.

"라고 말하자 화가 나 '씨XX아'라고 큰소리로 욕하며 C씨의 등을 걷어차고 주먹으로 얼굴을 두 번 때렸다.

옆에 있던 C씨의 15세 아들에게는 "네가 아들이야? 개XX야"라고 욕하며 얼굴을 15차례 때리고 발로 차 골절 등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혔다.

B씨는 자신이 범행 당시 분노조절장애 등으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충동적으로 발생한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불안감을 야기한다"며 징역 1년4개월을 선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