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둔화 中, 키신저 특급환대 지렛대 美에 봉쇄 전면해제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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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유지 속 상황 관리' 미국에 "합리적 대중국 정책 내놔라" 메시지
중국이 반세기 전 극적인 미중 화해를 끌어낸 미 외교계의 거두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에 대해 미 현직 고위 관료들을 뛰어넘는 특급환대에 나선 것을 두고 미국에 중국을 겨냥한 '칼끝'을 거두라는 우회적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간인 신분인 키신저 전 장관의 이번 방중은 토니 블링컨 현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 등 한 달 사이 미국 고위 인사 세 명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한 가운데 이뤄졌다.
키신저 전 장관이 받은 대우는 그가 지금껏 중국을 100차례 넘게 방문한 '중국통'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직' 3명에 비해 훨씬 무게감이 있었다.
외부에 공개된 키신저 전 장관의 첫 일정은 18일 리상푸 국방부장(국방장관) 접견이었다.
외교·경제·글로벌 이슈 등 소통 채널이 속속 복원되는 중에도 군사 대화 재개만은 유독 지연되는 상황에서 미국 국방장관도 안 만나고 있는 리 부장이 키신저 전 장관과 대좌한 것이다.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올라 있는 리 부장은 관계 안정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미국의 일부 인사가 중국과 마주 보지 않은 결과, 중미 관계는 수교 이래 가장 (깊은) 수렁을 배회하고 있다"며 "양국이 상호 의존하는 현실이 경시되고 협력 호혜의 역사가 곡해되며 우호 소통의 분위기가 파괴됐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런 다소 직설적인 표현은 이튿날 있었던 중국 외교라인 사령탑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당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과의 만남에서도 나왔다.
왕이 위원은 '상호 존중'·'평화 공존'·'협력 호혜' 등 세 가지 원칙이 "중미 두 강대국이 정확히 공존할 수 있는 길"이라며 "미국의 대(對)중국 정책에는 '키신저식의 외교적 지혜'와 '닉슨식의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왕 위원의 메시지는 1971∼1972년 양국 관계 정상화 과정을 직접 '소환'한 것이기도 하다.
반공주의자로 유명한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조차 현실주의자 키신저 전 장관과 함께 '중국 봉쇄'를 푸는 정책적 전환을 이끈 만큼, 지금의 미국에도 그러한 태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취지인 셈이다.
중국은 하루 뒤인 20일에는 시진핑 주석까지 직접 나서 키신저 전 장관에게 더욱 공을 들였다.
장소는 1971년 비밀리에 방중한 키신저 전 장관이 저우언라이 당시 총리를 만났던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5동으로 선정됐고, 시 주석은 그를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는 뜻)라 칭하며 "52년 전 마오쩌둥 주석, 저우언라이 총리, 닉슨 대통령, 당신은 탁월한 전략적 안목으로 중미 협력이라는 정확한 선택을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직도 아닌 올해 100세의 전직 원로에 대한 이런 '특급 대우'는 중국이 맞닥뜨린 고민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고위 인사들을 연달아 중국에 보내면서도 그간 쌓아온 고율 관세나 첨단산업 제재 등 조치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 9일 방중을 마무리하면서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과 산업망에서 특정국 배제)을 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일부 전략 기술에서 중국의 접근을 불허하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경제제재 철회 요구를 직접 들은 옐런 장관이 "미국은 우리와 동맹국들의 국가 안보 이익을 수호하는 데 필요한, 맞춤형 조치들을 계속할 것"이라고 재확인한 대목은 '대화는 하겠지만 제재 해제는 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입장을 재확인해주는 대목이다.
미국이 양국의 갈등이 무력 충돌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가드레일' 확보를 목표로 삼으며 전반적인 대중국 포위·견제 정책 변화를 목적으로 삼은 중국의 눈높이에 못 미침에 따라 경제 회복이 더딘 중국으로선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희귀 광물 수출 통제 같은 맞대응 카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중이 서로 칼끝을 겨누면 압박을 더 크게 느낄 쪽은 중국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경기 둔화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내수와 투자 활성화가 필요하고, 이미 20%를 넘긴 청년실업률은 근본적으로 고학력 노동력을 소화할 수 있는 산업 구조 전환을 요구하는 만큼 중국의 마음이 더 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이 언급한 '키신저식 지혜'와 '닉슨식 용기'는 미국이 '안보 이익'처럼 중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빼고 봉쇄를 풀었던 1971∼1972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인 셈이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3일 사설에서 "민간인이 중국 국방부장을 만나 소통할 수 있는데 미국 정부는 그럴 수 없다는 게 유감"이라고 한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의 발언에 대해 "왜 '한 사람의 시민'이 워싱턴의 현직 관리를 뛰어넘어 더 큰 예우와 존경을 받았는지 미국은 정말 모르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환구시보는 "최근 수년 동안 중국에 대한 실용적·이성적인 관점은 미국에서 주변화됐고, 대중국 정책에는 극단적 보호주의와 다양한 원한 정서가 사방에 흘러 다녔다"며 "100세의 키신저가 여전히 중미 관계 안정 촉진과 충돌 방지에서 주목할 역할을 맡는 것은 미국의 외교적 지혜를 계승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 "우리는 커비 조정관이 기자회견에서 '키신저 장관이 돌아오면 그가 무엇을 듣고 배웠고 봤는지 듣기를 기대한다'고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워싱턴이 겸허하고 성실하게 이 100세 노인의 충고를 들어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민간인 신분인 키신저 전 장관의 이번 방중은 토니 블링컨 현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 등 한 달 사이 미국 고위 인사 세 명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한 가운데 이뤄졌다.
키신저 전 장관이 받은 대우는 그가 지금껏 중국을 100차례 넘게 방문한 '중국통'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직' 3명에 비해 훨씬 무게감이 있었다.
외부에 공개된 키신저 전 장관의 첫 일정은 18일 리상푸 국방부장(국방장관) 접견이었다.
외교·경제·글로벌 이슈 등 소통 채널이 속속 복원되는 중에도 군사 대화 재개만은 유독 지연되는 상황에서 미국 국방장관도 안 만나고 있는 리 부장이 키신저 전 장관과 대좌한 것이다.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올라 있는 리 부장은 관계 안정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미국의 일부 인사가 중국과 마주 보지 않은 결과, 중미 관계는 수교 이래 가장 (깊은) 수렁을 배회하고 있다"며 "양국이 상호 의존하는 현실이 경시되고 협력 호혜의 역사가 곡해되며 우호 소통의 분위기가 파괴됐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런 다소 직설적인 표현은 이튿날 있었던 중국 외교라인 사령탑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당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과의 만남에서도 나왔다.
왕이 위원은 '상호 존중'·'평화 공존'·'협력 호혜' 등 세 가지 원칙이 "중미 두 강대국이 정확히 공존할 수 있는 길"이라며 "미국의 대(對)중국 정책에는 '키신저식의 외교적 지혜'와 '닉슨식의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왕 위원의 메시지는 1971∼1972년 양국 관계 정상화 과정을 직접 '소환'한 것이기도 하다.
반공주의자로 유명한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조차 현실주의자 키신저 전 장관과 함께 '중국 봉쇄'를 푸는 정책적 전환을 이끈 만큼, 지금의 미국에도 그러한 태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취지인 셈이다.
중국은 하루 뒤인 20일에는 시진핑 주석까지 직접 나서 키신저 전 장관에게 더욱 공을 들였다.
장소는 1971년 비밀리에 방중한 키신저 전 장관이 저우언라이 당시 총리를 만났던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5동으로 선정됐고, 시 주석은 그를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는 뜻)라 칭하며 "52년 전 마오쩌둥 주석, 저우언라이 총리, 닉슨 대통령, 당신은 탁월한 전략적 안목으로 중미 협력이라는 정확한 선택을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직도 아닌 올해 100세의 전직 원로에 대한 이런 '특급 대우'는 중국이 맞닥뜨린 고민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고위 인사들을 연달아 중국에 보내면서도 그간 쌓아온 고율 관세나 첨단산업 제재 등 조치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 9일 방중을 마무리하면서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과 산업망에서 특정국 배제)을 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일부 전략 기술에서 중국의 접근을 불허하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경제제재 철회 요구를 직접 들은 옐런 장관이 "미국은 우리와 동맹국들의 국가 안보 이익을 수호하는 데 필요한, 맞춤형 조치들을 계속할 것"이라고 재확인한 대목은 '대화는 하겠지만 제재 해제는 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입장을 재확인해주는 대목이다.
미국이 양국의 갈등이 무력 충돌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가드레일' 확보를 목표로 삼으며 전반적인 대중국 포위·견제 정책 변화를 목적으로 삼은 중국의 눈높이에 못 미침에 따라 경제 회복이 더딘 중국으로선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희귀 광물 수출 통제 같은 맞대응 카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중이 서로 칼끝을 겨누면 압박을 더 크게 느낄 쪽은 중국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경기 둔화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내수와 투자 활성화가 필요하고, 이미 20%를 넘긴 청년실업률은 근본적으로 고학력 노동력을 소화할 수 있는 산업 구조 전환을 요구하는 만큼 중국의 마음이 더 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이 언급한 '키신저식 지혜'와 '닉슨식 용기'는 미국이 '안보 이익'처럼 중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빼고 봉쇄를 풀었던 1971∼1972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인 셈이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3일 사설에서 "민간인이 중국 국방부장을 만나 소통할 수 있는데 미국 정부는 그럴 수 없다는 게 유감"이라고 한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의 발언에 대해 "왜 '한 사람의 시민'이 워싱턴의 현직 관리를 뛰어넘어 더 큰 예우와 존경을 받았는지 미국은 정말 모르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환구시보는 "최근 수년 동안 중국에 대한 실용적·이성적인 관점은 미국에서 주변화됐고, 대중국 정책에는 극단적 보호주의와 다양한 원한 정서가 사방에 흘러 다녔다"며 "100세의 키신저가 여전히 중미 관계 안정 촉진과 충돌 방지에서 주목할 역할을 맡는 것은 미국의 외교적 지혜를 계승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 "우리는 커비 조정관이 기자회견에서 '키신저 장관이 돌아오면 그가 무엇을 듣고 배웠고 봤는지 듣기를 기대한다'고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워싱턴이 겸허하고 성실하게 이 100세 노인의 충고를 들어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