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약점인 반도체 생산 기술을 보강하는 동시에 자국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전략에 손을 댔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소재 산업을 정부 주도로 재편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6월 24일 일본 정부 주도로 조성한 펀드인 산업혁신투자기구(JIC)는 포토레지스트 세계 1위 기업 JSR을 약 1조엔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JSR의 포토레지스트 세계 시장 점유율은 30%에 달한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회로를 새길 때 필수적인 소재(감광액)다. 한·일 관계가 최악이던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보복 조치로 한국에 수출을 규제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세 개 가운데 하나가 포토레지스트다.

일본 정부에서 조성한 펀드가 JSR을 사들이는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글로벌 반도체 대기업의 투자 규모가 반도체 소재 기업 홀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고 있어서다. 반도체 공정 난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반도체 대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도 급격히 늘고 있다.

TSMC는 올 1월 연간 설비투자액을 최대 360억달러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도 앞으로 20년간 총 30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연간 매출 4088억엔, 순이익 157억엔(2022년 기준)인 JSR이 홀로 쫓아가기는 어려운 규모다.

더 큰 이유는 JSR이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해외에 팔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JSR 시가총액은 약 7000억엔인데 외국인 보유지분이 54%에 달한다.

4조원이면 JSR 외국인 지분을 모두 사들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글로벌 사모펀드(PEF)들이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JIC는 JSR 지분 100%를 사들여 2024년 상장 폐지할 방침이다. 지분 100%를 확보하면 외국인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하게 사업을 재편할 수 있다.

세계 5대 포토레지스트 기업 가운데 네 곳이 일본 기업이다. 반도체업계에서는 JSR이 나머지 일본 기업 세 곳을 인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의 합계 점유율은 72%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