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인력 25∼30% 파업 참여한 충남대병원…환자·가족들 불편 토로
입원 환자 퇴원 후 통원치료하고 진료 대기 시간도 길어져

"공공의료 확충하고 불법 의료 근절하라!"
[르포] "통원치료 받다 내가 죽겠어" 파업에 불안 커지는 환자 보호자
폭우가 쏟아지는 14일 오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대전 중구 충남대병원 본관에 들어선 환자와 가족들의 눈길은 큰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1층 로비에는 형광 조끼를 입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충남대병원 조합원 900여 명이 앉아서 파업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충남대병원은 병원 인력의 25∼30%인 900여 명이 전날부터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병원을 방문한 사람들은 이들의 파업과 집회에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거나 불편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진료를 받으러 왔다가 집회 사진을 찍고 있던 30대 여성은 "의료진을 위하는 게 결국은 환자를 위하는 거니까 조금 불편해도 참을 수 있다"며 "이분들 마음도 불편할 것 같은데 얼른 잘 해결돼서 (의료공백이) 정상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내와 병원에 들어서며 이 모습을 바라보던 60대 환자 김모씨는 얼굴을 찌푸리며 "저게 다 뭣들 하는 겨. 환자들 볼모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료진) 없다고 그래서 오늘 내가 또 병원에 왔잖여"라고 성토했다.

김씨는 전날 뇌 검사 때문에 입원했다가 의료진이 부족해 퇴원 후 이날 다시 채혈을 위해 내원했다고 한다.

병원에 사흘간 입원 중이라는 70대 신모씨는 수액 거치대를 끌고 로비로 나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바라봤다.

신씨는 "진료받는 입장에서는 파업 때문에 아직 불편한 점은 없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파업 같은 건 안 했으면 좋겠다"면서 "백혈병 증세로 의심돼 검사를 받고 있는데 파업이 장기화하면 진료를 못 받게 될까 봐 겁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르포] "통원치료 받다 내가 죽겠어" 파업에 불안 커지는 환자 보호자
파업 이틀째인 이날 병원 현장에서는 예상했던 혼선이나 소란이 빚어지진 않았으나 환자와 가족들은 크고 작은 불편을 토로했다.

병원 곳곳에서는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으로 인한 업무 지연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신경외과 진료를 받으러 내원했다는 40대 이모씨는 기존 진료 예약 시간보다 40여 분 늦게 진료를 받아야 했다.

이씨는 "인력 부족으로 담당 간호사가 다른 환자 퇴원 수속을 하느라 늦게 왔다"면서 "어떤 간호조무사는 오후 진료가 예약돼 있던 다른 환자에게 진료 못 하니 내원하지 말라는 안내 전화도 하더라. 엄청 바빠 보였다"고 상황을 전했다.

신경외과 진료실 앞에서 대기 중이던 70대 남성도 "다리 약이 다 떨어져서 다시 약 받으려고 오전 10시 30분에 예약을 잡고 왔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진료가) 한참 늦어질 것 같다고 하더라"면서 "그냥 하염없이 기다려야지 별수 없다"고 말했다.

입원 치료하다 파업으로 인해 퇴원 안내를 받아 통원 치료를 하게 된 환자 가족들은 더 큰 불편함을 토로했다.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88세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통원 치료를 받으러 온 80대 아내는 "어휴 너무 힘들지. 우리 아저씨 휠체어까지 타고 있어서 차에 태우고 병원 오는 것부터가 너무 힘들어. 심지어 오늘처럼 비까지 많이 오는 날은 통원 치료하다가 내가 다 죽겠어"라며 넋두리했다.

[르포] "통원치료 받다 내가 죽겠어" 파업에 불안 커지는 환자 보호자
그는 "남편이 차 타는데 멀미나 죽겠다고 하는데 빨리 모든 게 정상화돼서 편하게 진료받고 싶다"고 덧붙였다.

88세 노모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에 온 50대 이모씨도 보호자의 불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이씨는 "어머니께서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주사를 놔 줄 사람이 없고, 시술할 사람도 없어서 담당 의사 선생님이 다음에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더라"면서 "평소 같았으면 빨리 끝낼 수 있는 진료를 못 하게 되면서 미뤄지니까 그게 보호자 입장에서는 참 답답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병원 관계자는 "기존 예약 및 수술 환자에게는 연기를 안내했으나 신규 환자의 경우 모르고 외래 접수를 하려는 분들이 대기 중인 것으로 안다.

이런 경우에는 진료받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충남대병원 노조 관계자는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의료 인력이 확충돼야 한다"면서 "병원 등과 현장 교섭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전·세종·충남에서는 충남대병원 등 대전지역 6곳과 세종충남대병원, 단국대병원, 천안·서산·홍성·공주 의료원 등 충남 6곳을 포함해 모두 12개 의료기관에서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천안 단국대병원에서도 노조원 1천100여 명 가운데 400여 명이 파업에 들어갔지만, 전날에 이어 이날도 별다른 진료 차질은 빚어지지 않았다.

보건의료노조 산하 127개 지부 145개 사업장(의료기관)은 인력과 공공의료 확충 등을 주장하며 전날 오전 7시를 기해 파업에 돌입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사를 중심으로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약사, 치료사, 요양보호사 등 의료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다.

[르포] "통원치료 받다 내가 죽겠어" 파업에 불안 커지는 환자 보호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