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교실·화장실 등 일상 공간서 투약…10대 마약사범 역대 최대
'ADHD 치료제' 등 의료용 마약류 급증…"예방교육 실효성 확보" 한목소리

[※편집자 주 = 한때 '마약 청정국'으로 꼽혔던 대한민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손쉬운 온라인 마약 거래, 의료용 마약류의 무분별 처방·소비 등이 확산하며 ''미래세대'인 10대 청소년의 일상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본 취재팀은 심층 취재를 통해 청소년 마약문제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온라인 마약유통 실태 등을 추적해왔습니다.

마약 예방·단속·처벌·치료·재활 등 다양한 마약관련 전문가들도 만나 청소년 마약문제 해법을 모색했습니다.

먼저 국내 각지와 온라인 상에서 취재한 내용을 연속 보도합니다.

]
[미래세대가 죽는다] ①'마약' 그놈의 호기심에…빨간불 켜진 교육현장
이슈팀 = 마약이 청소년들을 위협하고 있다.

주로 성인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거래됐던 마약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온라인상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구매가 가능해지며 청소년 일상까지 파고들고 있다.

고교생이 성인들을 운반책으로 고용해 마약을 팔고, 여중생이 동급생과 필로폰을 투약했다가 적발되는 등 10대의 마약 문제는 더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부모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고자 학원가에서 불특정 청소년에게 마약이 든 음료를 '집중력 강화' 음료로 속여 제공하는 파렴치한 사건도 있었다.

일명 '성지'로 불리는 병원을 돌며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을 구해 투약하고, 이를 주변 학생에게 팔아넘기는 일마저 벌어졌다.

집과 공원, 공중화장실, 학교 교실까지 청소년 일상 공간이 마약에 물들고 있다.

◇ 56% "호기심에 손대"…"몽둥이 맞은 듯" 금단증상 호소
2021년 경남경찰청은 부산과 경남지역 병의원을 돌며 몸이 아픈 것처럼 통증을 호소해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아 판매·투약한 56명을 적발했다.

이들 나이를 보면 고교생 33명을 포함해 54명이 10대였다.

학생들은 한적한 공원, 화장실, 학교 교실에서 펜타닐을 투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펜타닐은 모르핀의 100배, 헤로인의 50배에 이르는 마약성 의약품이다.

주로 말기 암 환자의 통증을 덜어주고자 처방한다.

중독성이 워낙 강하고 부작용도 크다 보니 만 18세 미만에는 처방하지 않도록 안전 사용 기준이 마련돼 있다.

'좀비 마약'으로 불릴 정도로 무서운 마약성 진통제를 한두명도 아닌, 수십명의 청소년들이 나눠 투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건을 수사했던 김대규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장은 올해 낸 한성대 석사학위 논문 '청소년 마약류 범죄 사례연구'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또래 친구의 권유에 의해 호기심에 마약류를 접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부터는 마약류의 특성인 심각한 중독과 금단증상으로 인해 본인 스스로 SNS, 친구 등을 통해 마약류를 구입하게 되고, 직접 병원을 방문해 허위로 처방받아 투약하거나 일부는 같은 방법으로 처방받아 친구, 지인에게 판매하며 범행이 확장됐다"고 전했다.

[미래세대가 죽는다] ①'마약' 그놈의 호기심에…빨간불 켜진 교육현장
이처럼 '호기심'이 범행 동기로 작용한 경우는 범죄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대검찰청이 낸 '2022 범죄분석'에 따르면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14∼18세 소년범죄자 182명 중 103명(56.3%)이 호기심을 범행 동기로 들었다.

이렇게 청소년기에 시작한 마약은 중독 정도가 심해지며 극한 고통을 불러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단 펜타닐 판매·투약 사건에 연루됐던 일부 학생들은 경찰 조사과정에서 '누군가 몽둥이로 자기 몸을 심하게 때리는 거 같다'며 통증을 호소하는 금단증상을 보였다고 김대규 계장은 전했다.

◇ '공부 잘하는 약' 처방 중·고교생 4만명대로 급증
연합뉴스는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2020∼2022년 10대 청소년에게 처방된 메틸페니데이트(ADHD 치료제)·펜타닐 패치(진통제)·펜터민(식욕억제제) 등 의료용 마약류 성분 3종의 현황을 입수해 자체 분석했다.

분석 결과를 보면 3종의 마약성 약품은 의사의 손을 거쳐 처방된 것이지만, 식약처가 제시한 안전 사용 기준을 벗어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부적정 처방에 따른 오·남용을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명 '공부 잘하는 약', 메틸페니데이트 성분 처방은 해를 거듭하며 크게 늘었다.

이 성분을 처방받은 13∼19세 청소년은 2020년 2만8천733명에서 2021년 3만2천728명으로 4천명 가까이 증가했다.

2022년에는 약 9천명이나 늘면서 4만1천471명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13∼19세 처방량은 2020년 약 846만정, 2021년 978만정으로 늘다가 2022년에는 1천177만여정을 보였다.

경기도마약퇴치운동본부장을 지낸 김이항 약사는 "의사가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처방했겠지만, 이 정도로 갑자기 많이 늘었다는 것은 우려가 된다"고 지적했다.

메틸페니데이트의 처방 환자 수·건수·처방량 모두 중·고교생(13∼18세) 연령대에서 대학생(19세)으로 넘어가면서 급감했다.

내신·입시부담을 벗어나며 메틸페니데이트 사용도 줄어든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미래세대가 죽는다] ①'마약' 그놈의 호기심에…빨간불 켜진 교육현장
2022년 메틸페니데이트 처방을 받은 중학생(13∼15세)은 1만9천654명, 고교생(16∼18세)은 1만6천761명이었던 데 반해 대학생(19세)은 5천56명에 그쳤다.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패치)을 처방받은 13∼19세 청소년은 2020년 714명, 2021년 580명, 2022년 383명 등으로 한 해 평균 559명으로 파악됐다.

식약처는 펜타닐을 만 18세 이상의 마약류 진통제 사용이 필요한 심한 통증 환자에게만 사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일명 '살 빼는 약', 식욕억제제 성분인 펜터민은 중학생 연령(13∼15세) 청소년에게까지 처방돼 온 것으로 확인됐다.

2020년 전국 병의원에서 펜터민을 처방받은 13∼15세는 90명, 2021년 73명, 2022년에는 43명이었다.

이들이 받아 간 연간 처방량(개·정)은 최대 수천 정을 넘었다.

식약처는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기준'에서 어린이나 청소년은 비만 치료 시 식사나 운동, 행동요법을 원칙으로 삼고, 식욕억제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안전기준을 제시해왔다.

특히 우울증, 불안, 불면증 등 부작용을 고려해 만 16세 이하에게는 처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펜터민 처방이 여성 청소년에게 집중된 사실도 확인됐다.

2022년 기준 펜터민을 처방받은 13∼19세 여성은 4천646명으로, 남성(641명)의 7.2 배를 넘었다.

처방량으로 보면 6.3 배를 상회하는 수치다.

[미래세대가 죽는다] ①'마약' 그놈의 호기심에…빨간불 켜진 교육현장
◇ 10대 마약류 사범 역대 '최다'…10년 만에 8.3 배
대검찰청의 '2022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작년 사법당국에 적발된 마약류 사범은 2021년보다 13.9% 증가한 1만8천395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나타냈다.

20·30대(1만507명) 비중은 전체 57.1%를 차지하며 2년 연속 50%를 돌파했다.

10대 청소년도 481명(2.6%)으로 역대 최고로 많았다.

마약류 범죄로 단속된 10대 청소년은 최근 10년 새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2013년 58명이었던 10대 사범은 10년 새 무려 8.3 배나 늘었다.

올 4월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이 대검 홈페이지 통계 수치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10대 마약류 사범 중 고교생 연령에 해당하는 15∼18세는 2016년 55명이었으나, 2019년 101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2022년에는 그 수가 5.3 배까지 증가했다.

15세 미만은 2021년까지 한 자릿수에 불과했으나 2022년 41명으로 급증했다.

전체 마약류 사범 증가세는 2023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대검의 '2023년 4월 마약류 월간동향'을 보면 올해 1∼4월 당국에 적발된 마약류 사범은 5천587명이었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29.7%(1천280명) 늘어난 수치다.

이 중 10대는 138명, 20대 1천879명, 30대는 1천567명이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마약류 사범 수가 2만명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세대가 죽는다] ①'마약' 그놈의 호기심에…빨간불 켜진 교육현장
◇ '청소년 마약' 잡힐까…"예방 교육 실효성 높여야" 촉구
그렇다면 청소년 마약 문제에 대응할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마약 관련 전문가들은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마약 예방 교육이 실효성 있게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릴 때부터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호기심의 싹이 자라지 않도록 하고, 또래로부터 권유받더라도 '노(NO)'라고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자세를 예방 교육을 통해 키워야한다는 것이다.

그간 교육 현장에서는 마약 예방 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던 게 사실이다.

흡연이나 음주, 스마트폰 중독 예방 등이 보건교육의 주 테마가 되다 보니 마약 예방 교육은 상대적으로 허술하고,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최근 3년 사이 세상을 놀라게 했던 펜타닐 패치, 식욕억제제 불법 유통·투약 사건에 연루된 청소년들에게 경찰이 마약류 중독예방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 파악해본 결과 단 한명도 교육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답한 점은 이런 상황을 방증한다.

김필여 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마약 예방 교육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면서 "초·중·고는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 사이에도 내용이나 방식에 차이를 두고서 예방 교육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중독범죄학회장인 박성수 세명대 경찰학과 교수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보다 예방하고 나서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더 효과적인 게 아니냐"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 5월 '범정부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추진 상황을 내놓으며 예방 교육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약물 및 사이버 중독예방 교육' 중 약물 중독 예방 교육의 이수 시간을 초·중·고교별로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로 했다.

정희권 교육부 학생보건정책과장은 "(청소년 마약문제의) 심각성을 잘 인지하고 있다.

마약류 중독 예방에서 한축을 담당하는 예방 교육이 실효성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현장과 소통하고, 전문가 의견을 들으면서 개선 지원해가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정부 대책과 별도로 마약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작년 11월 이태규 국민의 힘 의원은 학교장이 매년 학생 및 교직원을 대상으로 마약류 위험성에 대한 예방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학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급격히 확산하는 청소년 마약류 중독을 막기 위해 청소년 마약중독 예방 교육 실시 의무 등을 담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냈다.

(양정우 구정모 이상서 기자·이건희 인턴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