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전략자산 전개 반발하고 책임 전가…신냉전 구도 고착 시도
북, 美정찰기 비난 후 ICBM으로 대미 메시지…전승절 긴장 고조
북한이 미국을 향해 담화로 '말 펀치'를 날리다가 미사일 버튼을 누르면서 본격적인 대결 구도를 조성해 나가는 모양새다.

12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10시께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장거리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북한은 과거 하루가 멀다하고 미사일 도발을 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최근엔 '계기'가 있을 때 무력시위를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ICBM을 쏜 것은 석 달 전인 지난 4월 13일 신형 고체연료 ICBM 화성-18형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발사는 고체연료 ICBM 개발이라는 군사적 목적과 함께 전략폭격기 및 핵 추진 항공모함 등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자주 출격한 직후여서 이에 대한 반발로 해석됐다.

지난달 15일 이뤄진 직전 탄도미사일 발사도 한미 연합·합동화력격멸훈련에 반발한 시위 성격이 강했다.

이번 발사도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ICBM 역량을 과시하며 미국을 향한 정찰기 불만을 행동으로 보여주려 한 의도가 짙어 보인다.

앞서 북한은 지난 10∼11일에 걸쳐 김정은 국무위원장 친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국방성 대변인 명의로 미 공군의 정찰기 비행에 반발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11일 오전 담화에서 김여정은 미 정찰기가 북한의 동해상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침범했다고 주장하면서 "반복되는 무단 침범 시에는 미군이 매우 위태로운 비행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군사행동을 시사한 바 있다.

국방성도 10일 오전 담화에서 "미 공군 전략정찰기가 조선 동해상에 격추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위협했다.

이번 ICBM 발사가 미국 정찰기를 향한 직접적인 군사위협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을 향한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되는 이유다.

북, 美정찰기 비난 후 ICBM으로 대미 메시지…전승절 긴장 고조
다만 김여정이 침범했다고 문제삼은 EEZ가 일반적으로 상공 비행의 자유가 인정되고, 북한이 이런 국제법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숨겨진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미 정찰기 활동에 불만이 있다기보다는 이를 빌미로 긴장을 끌어올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을 향한 무력시위와 도발을 통한 긴장 고조를 자신들이 '전승절'이라 부르는 오는 27일 6·25전쟁 정전기념일 이후까지 이어갈 공산이 크다.

북한에서는 이때 열릴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열병식 준비 정황이 꾸준히 포착되고 있으며, 열병식과 대미 도발을 묶어 내부 결속 및 주민 단속 강화를 꾀하면서 미국을 향해 꾸준히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한미 정상의 워싱턴선언 이후 전략핵잠수함(SSBN) 등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강화에 대한 반발도 내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서 비롯된 한미의 확장억제 강화를 오히려 도발 원인으로 지목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전형적인 북한의 행태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대미 대항 의지와 ICBM이라는 대응 수단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내적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며 "전승절에 국한되지 않고 하반기 예정된 전략자산 전개나 한미 연합훈련에 대항하는 반발심을 보여주는 측면도 강하다"고 봤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탄도미사일 발사는 전략핵잠수함의 한반도 기항에 대한 경고라는 성격이 강하다"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주도권은 북한에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도발이 오는 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의식했을 수도 있다.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은 북한도 참여하는 ARF 회의에서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며 국제사회의 대응을 촉구할 예정인데, 북한은 미국의 정찰기 활동 등을 거론하며 긴장 조성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려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은 최근 이어진 '한미일 대(對) 북중러' 신냉전 구도가 이 석상에서도 고착되게끔 하고자 ARF를 앞두고 전략적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특히 중국에 유연한 행동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