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스파이들은 소련 KGB의 꿈을 이룰 잠재력이 있다” [WSJ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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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전문가가 내놓은 섬뜩한 결론
스파이들(Spies)
칼더 월턴 지음
사이먼 앤 슈스터
688쪽│34.99달러
스파이들(Spies)
칼더 월턴 지음
사이먼 앤 슈스터
688쪽│34.99달러
“러시아는 대다수 우크라이나인이 러시아의 사상과 체제에 반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는 통제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음.”
우크라이나 출신 공작원이 영국 비밀정보국(MI6)에 보낸 기밀문서에 등장하는 문구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기 직전의 얘기가 아니다. 그보다 100년 전인 1922년에 보고된 첩보다. 반복되는 역사는 늘 배울 점을 제시하기 마련. 최근 출간된 <스파이들>은 이처럼 지난 한 세기 동안 이어진 첩보 활동의 역사를 살피고, 오늘날 정보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시사점을 모색하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응용역사학을 연구하는 칼더 월턴.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 사이의 ‘총성 없는 전쟁’인 냉전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내린다. 역사학자들은 흔히 냉전 시기를 미국의 반공 기조가 강화된 1947년부터 소련이 붕괴한 1991년까지로 잡는다. 저자는 냉전이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이미 시작됐고,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두 진영의 스파이들이 그림자 속에서 펼친 전쟁의 양상을 보면 그렇다는 설명이다.
"소련은 개별 전투에는 승리했지만 큰 틀의 전쟁에서는 패배했다." 지난 100년간 정보전쟁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다. 소련 정보원들은 서구권 요원들에 비해 방대한 첩보 활동을 벌였지만, 정확한 정보가 지도부의 귀에 도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는 반체제 인사들을 숙청하는 독재 국가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다. 저자는 "소련 내부인민위원부(NKVD·KGB의 전신) 요원들은 스탈린의 생각에 반하는 정보를 보고할 경우 자신들이 고문과 죽음에 내몰릴 수 있다는 위험에 두려워했다"고 말한다. 반대편인 자본주의 진영의 첩보 활동에도 결함이 있었다. 이들 지도부는 각국에 침투한 소련 정보원들의 규모와 심각성을 간과했다. 첩보 활동 자체도 지나치게 '신사적'이었다. '침투를 통한 내부로부터의 국가 전복'을 소련의 주특기로 제시한 저자는 "소련과 러시아 정보 체제는 합법성이나 책임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과 달리, 서방 정부들은 도의적인 관행에 머물렀다"고 평가한다.
지금 러시아의 수장인 푸틴은 어떨까. 저자는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인 푸틴이 "첩보 활동, 은밀한 불법 활동, 암살, 선전 선동 등 KGB 교본에 나온 기술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다만 푸틴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현재 러시아 정보기관은 "대규모 국가 조직 범죄의 매개체"로 거듭났다고 한다. 저자는 "푸틴이 물러나더라도 그의 후임자도 다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책의 논의는 현재 미국의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으로 이어진다. 중국의 첩보 기관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권위주의 체제에 봉사하고, 침투에 강점을 보인다. 특히 사이버전(戰)에 특화됐다. 저자는 "미국의 허술한 개인정보 정책 덕에, 중국은 수많은 유명 인사의 약점을 잡아 협박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있다"며 "이를 통해 미국 내부에서 스파이를 대거 양산할 수 있다. KGB가 꿈꾸던 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셈"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정보전쟁의 핵심은 리더십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서구권은 소련과의 대결에서 사회·정치적 맥락의 승리를 거뒀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되리란 보장은 없다는 것. "국가 지도부는 자신과 상대의 정보 활동의 강점과 약점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정보의 내용은 물론 숨겨진 맥락까지 파악해야 한다. 만용이나 어설픈 직감은 금물이다."
정리=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이 글은 WSJ에 실린 제레미 블랙의 서평(2023년 6월 24일) ‘Spies Review: War in Shadows’을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출신 공작원이 영국 비밀정보국(MI6)에 보낸 기밀문서에 등장하는 문구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기 직전의 얘기가 아니다. 그보다 100년 전인 1922년에 보고된 첩보다. 반복되는 역사는 늘 배울 점을 제시하기 마련. 최근 출간된 <스파이들>은 이처럼 지난 한 세기 동안 이어진 첩보 활동의 역사를 살피고, 오늘날 정보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시사점을 모색하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응용역사학을 연구하는 칼더 월턴.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 사이의 ‘총성 없는 전쟁’인 냉전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내린다. 역사학자들은 흔히 냉전 시기를 미국의 반공 기조가 강화된 1947년부터 소련이 붕괴한 1991년까지로 잡는다. 저자는 냉전이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이미 시작됐고,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두 진영의 스파이들이 그림자 속에서 펼친 전쟁의 양상을 보면 그렇다는 설명이다.
"소련은 개별 전투에는 승리했지만 큰 틀의 전쟁에서는 패배했다." 지난 100년간 정보전쟁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다. 소련 정보원들은 서구권 요원들에 비해 방대한 첩보 활동을 벌였지만, 정확한 정보가 지도부의 귀에 도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는 반체제 인사들을 숙청하는 독재 국가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다. 저자는 "소련 내부인민위원부(NKVD·KGB의 전신) 요원들은 스탈린의 생각에 반하는 정보를 보고할 경우 자신들이 고문과 죽음에 내몰릴 수 있다는 위험에 두려워했다"고 말한다. 반대편인 자본주의 진영의 첩보 활동에도 결함이 있었다. 이들 지도부는 각국에 침투한 소련 정보원들의 규모와 심각성을 간과했다. 첩보 활동 자체도 지나치게 '신사적'이었다. '침투를 통한 내부로부터의 국가 전복'을 소련의 주특기로 제시한 저자는 "소련과 러시아 정보 체제는 합법성이나 책임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과 달리, 서방 정부들은 도의적인 관행에 머물렀다"고 평가한다.
지금 러시아의 수장인 푸틴은 어떨까. 저자는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인 푸틴이 "첩보 활동, 은밀한 불법 활동, 암살, 선전 선동 등 KGB 교본에 나온 기술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다만 푸틴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현재 러시아 정보기관은 "대규모 국가 조직 범죄의 매개체"로 거듭났다고 한다. 저자는 "푸틴이 물러나더라도 그의 후임자도 다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책의 논의는 현재 미국의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으로 이어진다. 중국의 첩보 기관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권위주의 체제에 봉사하고, 침투에 강점을 보인다. 특히 사이버전(戰)에 특화됐다. 저자는 "미국의 허술한 개인정보 정책 덕에, 중국은 수많은 유명 인사의 약점을 잡아 협박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있다"며 "이를 통해 미국 내부에서 스파이를 대거 양산할 수 있다. KGB가 꿈꾸던 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셈"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정보전쟁의 핵심은 리더십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서구권은 소련과의 대결에서 사회·정치적 맥락의 승리를 거뒀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되리란 보장은 없다는 것. "국가 지도부는 자신과 상대의 정보 활동의 강점과 약점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정보의 내용은 물론 숨겨진 맥락까지 파악해야 한다. 만용이나 어설픈 직감은 금물이다."
정리=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이 글은 WSJ에 실린 제레미 블랙의 서평(2023년 6월 24일) ‘Spies Review: War in Shadows’을 번역·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