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 사진=로이터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 사진=로이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프랑스의 세계적인 명품 기업 LVMH 본사를 습격했다. 루이비통, 크리스찬디올 등 유수의 명품 브랜드들을 거느린 LVMH는 연금 이슈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저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집중된 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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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국가일수록 '부의 분산'이 아닌 '부의 편중'으로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정부는 보통 큰 정부로 분류됩니다. 복지를 늘리고 규제를 강화하는 등 각종 개입에 나서는 정부를 의미하죠. 하지만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는 규제 그물망을 뚫고 부를 축적해나갈 수 있는 건 대기업이나 초고액 자산가들뿐이라는 주장이네요. 탄탄한 자금력과 각종 인맥을 동원한 로비를 통해서 말이죠.

글로벌 투자사인 록펠러 인터내셔널의 루치르 샤르마 회장이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을 통해 주장한 내용입니다. 포브스가 매년 발표하는 억만장자(순 자산이 10억달러 이상인 초고액 자산가)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억만장자들은 지난 20년 새 급격히 불어났습니다. 숫자(2640명)와 자산 규모(총 12조2000억달러) 모두에서 말이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중 유동성이 지나치게 풍부해졌던 2021년에 비하면 소폭 감소했지만, 어쨌든 20년 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인 것은 분명합니다.

샤르마 회장은 선진국과 신흥국 각각 10개국씩 나눈 뒤 국가별로 자료를 역추적했습니다. 자수성가형 자산, 상속형 자산, 부동산 임대업 등을 하는 이른바 '나쁜 억만장자' 자산, 테크기업 창업 등을 통한 '좋은 억만장자' 자산 등으로 분류해봤다고 하네요. 그는 "부유층에 대한 반감은 비생산적인 불로소득 자산이나 투입한 노력 대비 지나치게 많이 벌어들인 자산을 표적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며 "그 결과 모순적이게도 프랑스, 스웨덴, 스위스, 러시아, 인도 등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일수록 부가 더욱 편중됐고, 그만큼 반(反)부유층 시위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합니다.

프랑스 억만장자들의 총 자산은 5년 만에 2배 가량 늘어 국내총생산(GDP)의 21%까지 차지하게 됐습니다. 이는 국가가 연간 창출한 생산량(부)의 21%가 억만장자들에 집중돼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중 상속형 자산은 85%나 되는데, 이는 전 세계 평균치의 2배입니다. (앞서 프랑스 시위대가 타깃으로 삼았던 아르노 LVMH 회장의 자산은 최근 1930억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스웨덴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웨덴 억만장자들의 총 자산은 GDP 대비 24%에 달해 당당히 글로벌 1위에 올랐구요, 이중 상속자산은 66%에 달합니다.
프랑스 억만장자 비율, 5년새 급격히 늘어났다.
프랑스 억만장자 비율, 5년새 급격히 늘어났다.
신흥국 카테고리를 살펴보면, 공산주의 국가였던 러시아는 어떨까요? 러시아는 항상 '나쁜 억만장자' 자산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였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도 그 비중이 62%로, 글로벌 1위 명성을 이어가고 있네요. 인도는 억만장자들의 총 자산 중 상속 비중이 6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신흥국 가운데 1위에 등극하면서 말이죠.

샤르마 회장은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한 것은 아니지만) 부의 편중을 억제하기 위해 사회적, 정치적 압력을 꾸준히 가하고 있는 한국, 대만 같은 나라나 공산권에서 독립한 뒤 빠르게 자본주의를 수용한 폴란드는 억만장자 증가율이 가장 더딘 편에 속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결하려면 더 큰 정부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 같은 자료를 어떻게 보십니까?"라고요.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